그런데다 1주일 휴가 기간 동안에 우리 직장에 온지 채 1년도 안된 독일계 백인 동료 브렛이 난데없이
자기 집이 있는 모르몬교도 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정착한 미국의 역사를 한 페이지 장식하는 유타주
남부 그림같이 아름다운 소도시 세인 조지 집 가까운 곳에 직장을 얻게 되어 현 직장을 사직하고 떠난다는
소식을 전해와 그 밤은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백인이지만 백인답지 않은 자세로 늘 성실하고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실력 있는 직원이었다.
베풀 줄도 알고 동료들도 잘 도와주는 우리 부서에서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떠난다니 순간
외로움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그와는 참 서로 친하게 지낸 사이로 지난가을에는 그의 부인이 네덜란드에
사는 한국인 친구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의 부인은 필리핀 출신으로 미국화된 사람이다.
다음날 휴가를 맞추고 돌아가니 직장에서 들 브렛이 떠났다며 다들 서운하다는 말을 한마디씩 했고 그가
얼마나 일을 잘하고 좋은 사람이었는지 또한 다들 한마디씩 했다.
그가 없는 부서는 텅 빈 느낌이었다. 다들 뿔뿔이 흐트러지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근무시간은 공허했다.
정을 주지 말아야 하 것만 사람이 서로 함께 근무를 하다 보면 죽이 맞으면 정이 쌓이게 되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그동안 서로 정이 들 대로 들고 서로의 사정상 헤어짐이 생각처럼 말처럼 쉽지가 않다.
집 가까운 곳으로 직장을 얻어 떠나니 그 점에서는 잘된 일로 축하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작별을 해야 함은 못내 서운하다고 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가고 기다리는 이메일은 은퇴 수속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에서 오지 않고 있어 조금은
답답한 심정의 요즘이다. 의도치 않게 나는 요즘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고 직장이나 출근하고 쉬는 날은
자고 싶을 때 자고 남은 시간은 온라인으로 신문이나 읽고 유튜브 뒤져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그도 지치면
또 자고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캐나다나 시카고나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도 하지 않은 지가
몇 달이다. 내 안에 침잠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렇다.
신문을 읽는 것도 머리가 아프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한탄만 나오고 희망이 안 보이는 느낌이다.
지구촌 어느 한구석 평안한 곳이 별로 없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다시 준동하여 상선을 납치 기도하고
아프리카 중동 난민들은 프랑스에서 영국 해협을 불법으로 건너기 위해 보트를 타고 가다 400명이
붙잡히고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오다 바다에 빠져 죽고 탈수로 죽었다는 기사로 가득하다.
역으로 미국 동남부 훌로리다주 아래 카리브 해에 프랑스 식민지 시절 흑인 노예들이 세운 작은 섬나라
헤이티에서는 권력을 갖은 자들이 부패로 서민들이 고통을 받다 못해 전직 경찰이 갱단 두목이 되어 죽고
죽이고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 난리다. 그런가 하면 미국 국내는 연일 남부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오는 자들로
미 전국이 난리다.
텍사스주가 쳐놓은 철조망을 집단으로 멕시코 쪽에서 수백 명이 날카로운 철조망을 뜯어내고 넘어오며 텍사스
국경수비대를 때려눕히고 연일 바이든의 국경 무방비 정책으로 지금 미국은 뉴욕의 경우 넘어온 그들로 특정
지역의 거리는 무법천지가 되어 길거리에서 온갖 물건을 길거리에 펴놓고 판다고 난리고 강도질에 도둑질에
그야말로 아마겟돈이다.
바이든을 찍어 주었던 사람들도 바이든의 이런 국경 무방비 상태의 허용으로 인한 미 전국의 대도시들이
불법으로 넘어온 중남미의 갱단들과 범죄자들로 하여금 중산층 동네에 빈집털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 어떤 정신 나간 50이나 60은 넘었을 법한 양아치 모습을 하고 온 전신을 명품 재킷에 구치 바지에
롤렉스시계에 들고 다니는 클러치 백에 포쉐인지 벤츠를 타고 코리아 타운에 정신 나간 미친 인간이 대낮
20-30대 흑인 권총 강도에게 10만 불 즉 한국 돈 1억 원에 상당하는 것을 금품과 돈을 빼앗겼다고 순간
유튜브를 보니 KBS 아메리카 기사로 올라왔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러고 다니는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인간이
있다. 미국의 대도시에서 명품을 걸치고 지하철이나 버스나 공공장소를 나가는 것은 과거와는 달리 요즘
같은 시국에는 극히 위험 천만한 일이다. 어저께 이발을 하러 가서 멕시코 출신의 이발사에게 어느 정신
나간 인간이 글쎄 명품으로 전신 을 휘감고 나가 흑인 강도를 만나 10만불 어치를 빼앗겼다고 하니 내가
아는 사람은 지하철에서 흑인 여자가 망치로 머리 귀 뒤를 패고 구치 안경을 빼앗아 달아났고 그 사람은
기절해 병원에 실려가 뇌수술을 하고 불구자가 되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10만 불을 빼앗겼다고 하니 대뜸 이발사 호세가 하는 말이 범인은 흑인이지 한다. 그럼
누구겠어 그쪽 애들이 대부분 그러지 하고 말았다. 미국 대도시의 범죄자는 절대다수 흑인들과 중남미
출신의 스페인어권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물론 다른 인종들도 악질도 있고 도둑놈들도 있다. 그러나
진짜 잔악 무도한 범죄자의 경우 백인들일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시애틀이란 곳에서는 인도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집 한 채를 월세 400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세를 놓았는데 처음 한 달만 첫 달 마지막달로 낸 보증금으로 대체하고 나머지 지난 8개월째 8만 불 즉
8천만 원이 넘는 집세를 내지 않고 법을 악용하고 나가지도 않아 주인이 견디다 못해 동네 백인 주민들과
인도인들 그중에 한 명은 한국인이 들고일어나 피케티를 들고 그 집 앞에서 사기꾼 나가라고 항의 데모를
하는 것이 유튜브에 며칠 전 올라왔다. 한국인의 탈을 쓴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이런 악질도 가끔 있다.
신문을 보는 것조차 요즘은 끔찍하고 끔찍하다. 그리고 차를 타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차 문을 잠그고
시동을 걸고 타기 전에도 주변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위의 일련의 사건의 경우 피해 당사자인 양아치처럼
생긴 한국인의 경우 차 문을 잠그지 않았고 흑인은 운전석 반대편의 차 문을 확 열고 총을 드려 밀고 움직이지
말라며 클러치 핸드백을 빼앗아 차를 타고 도주한 것이다.
물론 미국이라고 다 이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안전하고 아니고다. 그리고
안전한 이웃과 동네에 살아도 항상 주변에서 못 본 낯선 사람은 눈여겨보아야 하고 수상하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된다. 흑인이 사는 곳에 백인들은 절대 살지 않는다. 스페인어를 하는 사람들 또한 흑인들과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흑인들이나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 동네는 대도시에서는 대체적으로
폐허가 되고 갱단들이 판을 치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미국의 대도시를 가게 되면 뉴욕이나 시카고나 LA나 애틀랜타나 다 흑인들과 스페인어권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지역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서울의 경우 강남이나 한남동은 부촌 그리고 있는 사람들 사는 데 안산은
외국인들 많이 사는 데 위험한 데 이런 식으로 미국도 프랑스 파리 같은 곳도 매한가지다. 가령 강남이나
한남동 같은 동네에서 흑인들이나 스페인어 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거나 서성이면 그 지역 주민들인 백인들은
수상하다 여기고 경찰을 부르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그들 생각으로는 안산 거리를 서성이어야 할 사람들이
왜 한남동 강남에 있지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이의 집이 있는 산 바로 아랫동네도 주민들이 백인들과 동양인 특히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상류층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곳에는 흑인이나 다른 인종은 볼 수 없다. 이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 터키 옆에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 한국 사람들이 주로 많이 사는 동네 중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 베트남이나
인도 사람들이 주로 많이 사는 동네 대도시의 경우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게 각 지역마다 구분되어 있다.
11월 대선에서는 바이든과 트럼프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우리 위층에 사는 중남미 출신의 월터도
나도 이번에는 국경을 잘 지킬 수 있고 불법 침입자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트럼프를 찍으려고 작심을 하고
있다. 평생 민주당을 찍어주었지만 이번만은 공화당을 후원하고 싶고 공화당 후보를 찍어주고 싶다.
불법 침입자들로 뉴욕은 물론하고 대부분의 대도시들이 골치를 섞고 있는 것이 재앙 수준의 현실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벌써 3월 22일 월말이 되어가고 있다. 곧 4월이 되겠다 하는 마음에 4.19 때 팔순을
넘기신 윗분은 대학생이셨고 나는 겨우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무정한 세월 60세만
되었어도 하는 아쉬움이 남는 칠순을 막 넘긴 이 시점이다.
문득문득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칠순을 넘긴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내게 남겨진 시간이
살아온 날보다는 훨씬 작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며 어느 사이에 내가 이렇게 늙었지 하는 심정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머지 않아 은퇴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어저께는 연방 세무국으로 2023년도 세금 8천 불
넘는 것과 올해 예정된 세금 4회분 중에서 첫 번째 것 $3100을 온라인으로 보냈다. 합계 천만 원이 넘는 세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보냈다.
휴가 동안 한 일은 19세기 일본 사회를 그린 영화 <Sekai no Okiku>와 인도 영화 <Angamaly Diaries>를
본 것이 전부다. 프랑스 영화부터 보고 싶은 영화가 몇 편이 있지만 아직은 시간이 있어도 마음이 허락되지
않아 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의 밥상> <인간극장> <세계 테마기행>이 요즘은 힐링을 시켜주는 영혼의
안식처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드라마를 보고 싶은 것이 있지만 영어 자막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해하고 싶어 중국어를 유튜브를
이용해 독학하려니 사성이 제일 힘들고 어렵다. 일본어라면 쉽게 습득을 하겠지만 불어 발음만큼이나 중국어
사성은 너무나도 어렵다. 요즘 나는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중국어와 일어 그리고 스페인어 어휘와 쉬운
문장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스페인어는 학부에서 한 학기를 공부하였지만 다 잊어 먹어 다시 배우고 있다.
쉬운 말은 지금도 할 수 있다.
내 인생에 남은 시간들을 헛되이 낭비하고 싶지 않다. 비록 기억력이 젊을 때만 하지 못하고 까먹는 한이
있어도 매일 몇 단어씩 일어도 중국어도 스페인어도 독학 중이다. 하여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다른 한편으로
습득하고 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은 생각에 따라서는 즐거운 일이다.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 중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딸까지 낳고 중국인 시부모님 근처에서 사는 한국
여성이 중국 시댁 가족들과 능통하게 모국어처럼 중국어를 하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 뉴욕에서 이란 출신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의대 진학을 목전에 두고 한의학에 빠져 한국으로 와서
한국어 능력 시험을 합격하기 위해 사자성어부터 한 문부터 한국어를 공부하고 부산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한 최초의 외국 국적 한의사로 합격한 <인간극장 날아라, 한의사 나비>의 주인공 나비 같은 대단히
두뇌가 명석하고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청년도 있다.
외국인으로 한의사가 되기로는 그가 두 번째이지만 첫 번째 외국인 한의사 되는 사람은 한국으로 귀화하고
한국인이 된 관계로 실제로는 어저께 우연히 발견하고 내리 5편을 보게 된 인간극장의 주인공 나비가 외국
국적자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국가고시도 합격한 그가 비자 문제로 고민을 하는 데 아직은 한의사의 경우
예외가 없어 일반 의사들처럼 인턴이나 레지던트 자리를 얻어 국내 체류가 허락되는 경우가 없어 그는 고민
끝에 외국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전형에 서류를 제출한 상태였다.
그런 그의 여동생은 뉴욕에서 이미 레지던트 생활을 하고 있는 의사라고 하며 아들 졸업식을 보러 뉴욕서
날아온 아버지의 말로는 자식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한 것이 아닌 본인들이 선택한 길을 존중했는데 두 자식이
모두 의학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자가 명문 뉴욕대학교 동문이라고 한다.
영어도 모르고 미국에 건너와 뉴욕 대학교와 대학원을 아버지도 맞추고 미국에 정착해 살게 된 미국 시민이다.
11년 전 나비가 한의학에 쉼 취해 어느 날 뜬금없이 한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낯선 나라로 밑도 끝도
없이 간다고 하는 아들이 걱정이 되어 극구 반대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나비의 성취와 미래를 위해
그 누구보다 후원한다고 인간극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비가 한국에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게 되고 그의 꿈을 성취하게 될지 꼭 앞으로 알고 싶다. 내가 지나온
길을 생각하며 나비의 인생 이야기는 깊은 감동이었다. 나비 아버지는 올해 나이 66세로 참 인자하고 착한
모습이었다. 세상에는 착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사악한 악마 같은 인간들도 많다.
이란계 미국인 나비의 꿈이 꼭 이루어져 한국의 의과대학의 의대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가
바라는 대로 양의사 이자 한의사를 병행하야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고통을 덜어주는 좋은 의사가 되는
나비가 되기를 모르는 이방인이지만 기원한다. 일주일만 지나면 또 4월이라 생각하니 흘러가는 시간과
세월이 덧없다. 4월이면 꽃도 피고 따듯한 봄날이 열리리라. 인생에서 격한 파도를 경험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의 인생을 깨닫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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