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 사랑이란 이름의 우화의 강

붓꽃 에스프리 2007. 2. 22. 19:05

 

요즘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는 말이 세월이 너무나도 빨리 간다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할말이 없다. 가는 세월을 어떻게 잡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는 반문이 뇌리에 스쳐갈 때는 차라리 침묵이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너도 나도 다만 옆으로 제쳐놓고 살아가는

것 뿐이란 사실을 인지할 때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전세계적으로 이상기온에 시달리고 있는 절기라 봄이 오고 있는지 겨울의

잔영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를 분별하기가 퍽이나 애매모호 할 때에 직장 길

건너편에 일년 내내 묵묵히 서있는 노목 한 그루가 나에게는 유일한 절기변화의

상징물이다. 신호등 앞에 정차된 자동차 안에서 잠시 시선을 裸木에 주노라니

저만치 텅 빈가지 위에 연 초록 새순이 바라다보이는 것이 아니던가. 아 비로소

봄이 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상념의 나래가 걸쳐지고 있었다. 순간 생명의

신비로움에 저절로 감탄사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며 가슴에 파문이

일었다.

 

우리 인생도 그와 같이 일회성이 아닌 순환 될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늙었다가 다시 젊음으로 재생된다면 좀더 한번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참되고 보람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까를 생각할 때 그 답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과 완성의

마침표로 치부한다면 억지일까?

 

삶과 죽음 그 경계선에 서면 누구나 인간은 겸손하여지며 모든 세상사가

얼마나 덧없으며 물질의 부나 권력이나 명예나 권력조차도 얼마나 덧없는

사실인가를 인지하게 되리라. 우리 인간에게 존재의 의미와 생의 가치관을

부여하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알파와 오메가는 혹자는 종교인 신앙을

우선적으로 앞세운다면 누군가는 물질의 부와 권력의 향유와 명예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인간으로서

한 개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개척하였고 자신 스스로에게도 충실한

삶을 살아왔으며 주변에 덕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라면 가장 우리 인간에게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존재의식에 대한 알파요 오메가일 것이다.

 

단연코 존재의식에 관한 한은 각개인마다 갖고 있는 가치관과 시각이

부여하는 가치와 의식의 기준을 어디다 두고 있으며 추구하는 가 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실한 사랑과 그 사랑을 통한

의식과 일상생활의 승화이다. 아니고서야 죽음 앞에서 우린 어떤 것으로

부터도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없다. 돈을 많이 벌어 놓았으니 죽어도

행복하니 담대하게 죽겠노라 나 명예와 권력을 휘어잡았고 즐겼으니

이제 죽어도 좋다라는 사람은 세상에는 없다. 다만 죽음이 필연이요

숙명이니 받아드려야 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따스한 햇살과 춘풍이 살살 불어와 볼을 스치고 지나가고 나뭇가지에는

연 초록의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 불현듯이 겨울에 사용하던 두꺼운

머플러를 정리하여 서랍에 넣고 엷은 머플러를 걸치고 숲 속에 오솔길이나

강변 산책로를 누군가 진정 깊은 내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 누군가와

함께 산책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정녕 봄이 오긴 오고 있는가보다.

 

그리움 또한 연 초록의 새싹처럼 쏘옥 쏘옥 자라나는 시간들 속에

시골 강가에 둥지를 틀고 있던 카페 창밖으로 미루나무가 서로 등을

맞대고 고적하게 서있던 앞으로 잔잔한 물결을 이루며 서로 어우러져

흐르던 강물의 흔들림과 고요가 주는 평안과 잔잔히 흐르던 카페안의

음악들이 그리움과 추억으로 머물던 시간들이 아련히 아지랑이 처럼

피어오른다.

 

최근 블로그에 올린 글중에서 스쳐가는 분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작품중에 하나는 단연 인생을 진정 치열하게 저 낮고 낮은

바닥부터 온몸으로 살아온 시인 김신용의 [도장골 시편<민달팽이>]

이었다. 은둔의 오솔길 이 작고 작은 블로그에 자그마치 30명도 넘는

분들이 발길을 딛고 현대시학 2007 1월호 권두시로 실린 작품이자

6회 노작문학상 수상작인 <도장골 시편, 민달팽이>를 읽는 큰 관심을

보였다. 왜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가장 토속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제목의 상징성 때문은 아니었는지 하는 추측을 하여본다.

 

우리 인간은 죽어서 진정 어디로 가고 있는가?

죽음이란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인생과 직장과 학교 교육을 통한 경험과 같이 체험하여서 나눌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기에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서로를 감싸고 이해를 도모하고

배려와 사랑으로 나눔의 정신과 더불어서 서로에게 진실한 모습으로 함께

하며 살아가야하는지 모른다.

 

인간의 존재 그 본질 자체는 절대 고독이다.

홀로 태어나서 죽음도 홀로 맞이하는 것이 절대 진실이다.

 

때론 헤일 수 없는 수많은 역경과 시련과 마주치고 가슴과 영혼은

만신창이가 되어 살아가며 절망과 좌절속에 그래도 살아야 하는

진실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오뚜기처럼 다시 현실과 땅을

딛고 일어서 주어진 자신의 몫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 인생의 묘미와 기쁨과 환희와 슬픔과 타인의 고독과 외로움은

물론 고통을 헤아릴줄아는 지혜를 터득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진솔한 자아성찰을 통하여서 보람된 삶을 이끌어 나아가고 영위하는

지혜를 얻는다. 그리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리라……그러나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하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 또한 절대다수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영국출신의 팝 가수 탐 죤스 그의 허스키한

음성으로 들려주는 노래들 <Delilah, Release Me, I'll Never Fall

in Love Again, Kiss> Timi Yuro 백인 여성이것만 그녀의 음성은 허스키

하다 못해 남성 가수로 착각을 하였었다. 그녀가 부르는 곡중에서도

<I apologiz>를 미치게 듣고 싶다는 직장상사 그녀가 부르는 또 다른 곡

“Thank You For Calling”의 시작부분의 전화벨 소리와 가사는 또 어떻고

사람들은 누구나 다 너나할 것 없이 추억을 먹고 사나보다. 그리고

가는 세월 또한 황우장사는 물론 나폴레옹 같은 영웅도 막을 수가

없지 않던가.

 

이 험한 세상 강인한 정신과 맑은 영혼으로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산골이나 한적한 강가에 피어나는 들꽃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극단의 이기주의로 치고박고 타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주고 말장난으로 타인의 영혼을 교살하고 덕을 배신으로 갚는 세상이

이 험한 세상의 한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나 들꽃 같이 맑고 고운

영혼들도 우리 이웃으로 공동체안에 더불어 존재하고 있씀도 잊어서는

안된다. 빛과 소금은 어느 시대고 상존한다.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도

잘 찾아 보면 우리들 곁에도 심심치 않게 있다. 사랑과 위로와 기쁨을

찾기전에 그대가 먼저 사랑하라 그리고 배려하라 그리고 감싸라.

 

그대 누군가를 진솔하게 다가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결단코 상대를 그대는 철저하게 존중하고 지켜줄 의무가

있다. 불필요한 상대 신상이나 사생활에 관한 질문을 하지마라 다만

배려와 존중과 사랑으로 세상의 질투와 시기와 모함으로부터

철저하게 상대의 사생활이나 신상에 관한 것을 지켜줄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세월과 진솔한 마음과 언행과 자세는 잔잔한 교류속에 두물머리처럼

우화의 강으로 함께 흐르며 저절로 마음의 문은 서로가 서로에게

누구랄 것도 없이 열린 것이요 서로에게 진솔한 위로와 사랑이 될 것이다.

말을 아끼는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은 아름답다. 서로에 대한 인격존중과

지속적인 잔잔한 관심과 배려없이 아름다운 사랑이나 우정과 인간관계

설정의 꽃은 결코 피어날 수 없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왜 사는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가치를 각자에게 부여하며 보람된 것인가는 각자의 시각과

가치관이 좌우한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잔잔한 그리움 하나쯤은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영혼이 아름답지 않을 까. 피어나는 자목련을

혼자보기 아까워서 사진을 찍어 메일로 보내주는 마음 같은 배려가

감동이요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