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브라 마이후 : Ombra mai fu(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저녁바람이 후레임을 하여야 할 유화 작품 위에 마지막 영구보존 스프레이를
뿌리는 동안 골목길을 할 트고 휑하니 스쳐 지나간다. 봄이 오는 길 연초 정월이
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도 중순이다. 어제 저녁 그리움 끝에 오랜만에
찾아간 K 선생님 사무실 그리고 나눈 두 잔의 옅은 커피를 함께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소박하시고 세상을 올곧게만 살아오신 선생님의 배려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을 갖고 돌아온 길 선생님의 연세에는 희망은 없다 하시며 희망이라면
내세의 희망이 아니겠느냐고 하신다. 신앙으로의 귀의를 상징하는 것이 많은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 중에
하나가 아닌가도 생각된다.
잠시 들린 레코드 가계 멘델스존 교향곡 <스카티쉬>가 지독히도 듣고 싶어
그 음악에 기대어 지난달인가 전전달인가 하루를 보내셨다는 아우님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현대문학 3월호 한 권과 함께 들고 돌아왔다. 잠시 만나고 훌쩍
바람처럼 떠나간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와 온종일 문학과 인생을 온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아쉬움 속에 영원으로 귀속하여 어느 나무 밑에 묻힌
대쪽 같은 선비 형의 시인 오규원 추모 특집을 읽고 있었다.
때론 만나보지도 못한 시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제자들의 추억담 속에
담긴 그분 생전의 모습을 그려보며 얼마나 깊은 사랑을 냉철한 이성 한가운데
갖고 있었나 생각하며 다음으로 읽게 된 것은 불멸의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불운한 일생을 접하며 그가 남긴 수 없는 자화상에 대한 평론을 어제 오늘
휴무하는 가운데 독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온종일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린 오늘 하루와는 달리 어제는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창가에는 눈부신 금빛 햇살이 자리하고 인생은 살아 볼만
하며 아름답다라는 메시지를 각인시켜주는 그런 시간들 이었다. 순간 나는
사이버 오솔길을 찾아 갔다. 세상의 클래식 애호가들이 아니어도 누구나
한번쯤은 들었거나 즐길 수 있는 편한 곡 헨델의 그 유명한 일명 <라르고>가
사려 깊으신 주인분의 배려로 기다리고 있었다. 카운터 테너, 바리톤, 콘트랄토의
형식으로 그 중에서도 나는 마치 주기도문 같은 바리톤을 무려 한자리에서
거의 20회에 가깝게 듣고 거의 온종일 그 음악에 기대어 살면서 아름다웠던
시간여행이란 필름을 되돌려 감아보았다.
그리움을 키워주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슴에 켜켜이 담고 살아가는 분들의
필명과 이름들을 하나 하나씩 마음의 백지 위에 추억이란 몽땅 연필
끝자락에 침 한번 발라서 그리운 이름을 꾹 꾹 눌러 써본다. 순간 수화기를
들으니 그리운 분의 음성이 지구 저편에서 그만의 특유한 억양으로 향기로운
한잔의 차 향처럼 들려온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영혼이 맑은
분의 사색의 오솔길을 홀로 산책하며 그분의 오솔길 나뭇가지 위에 걸쳐진
어제의 그 바리톤으로 흐르는 < 옴브라 마이후 : Ombra mai fu(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일명 <라르고>를 조용히 가슴에 담고 있다.
편지가 문학의 형태의 하나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서간문은 불멸의 화가요 가장 불운하였던 반 고흐가
동생 Theo와 주고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톨스토이의 서간문
또한 잊을 수 없는 작품이지만 3 - 4년 전에 보내드렸던 메일을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으신 분 불현듯이 그리운 날이면 다시 읽어보고 읽어 본다는 메일
그 메일을 보내준 손길을 일상으로 살아가며 늘 기억이란 문자 위에 영혼의
물을 주어 추억으로 정으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길어내고 있으시다는 분의
음성이 저 멀리서 긴 여운을 남기며 메아리 되어 들려오는 순간 나 역시
오래 전 그분이 보내준 메일을 나의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가 들춰보았다.
그 안에는 간결하고 함축된 깊은 정이란 인간내면의 수채화 하나가
있었다. 그 잔잔한 감동 늘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 생의 마지막
까지 너를 일상으로 함께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고 살아가고 있씀에 결코
잊을 수 없노라는 수화기 너머의 아련한 너무나도 아련한 언어의 흐름은
차라리 그 자체가 하나의 산문이요 시라면 그리고 유화의 한 폭이라면
어떤 문체로 색감으로 끌어 내어야 할까 싶었다.
인생은 유한하다.
우리 인생에는 무한대는 결코 없다.
때가 되어 이 지상에 출생이란 이름으로 온 날이 있다면 가는 날 또한
필연코 있다.
수화기를 놓고 고 오규원 시인의 추모특집을 현대문학 3월호에서 읽으며
그를 추모하는 문학인들의 글속에서 독일문학에 거성 후리드리히 횔덜린을
만난다. 반 고흐만큼이나 불행하였던 시인은 살아 생전에 시집 한 권
제대로 출간도 하지 못하였다. 반 고흐와의 동질성은 광기와 천재성과
살아 생전에 세인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가난과 정신병과 사투를 벌린
사실이다.
이렇게 봄날의 쓸쓸함이 스쳐 지나간 한 주위에 지조와 기개가 높았던
선비로서 차가운 이성 위에 불 같은 깊은 내면의 사랑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었던 진정 참신한 이 시대의 한 기억하고 싶은 시인의 이름 오규원
그리고 내 영혼 저 깊은 곳에 오늘도 초지일관 변함없는 영혼의 향기로
도도히 그리고 유장하게 흐르는 그 커다란 하나의 흐름의 맥이 되어
일생을 함께 진솔하게 시공을 초월하여 흘러가는 분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분들의 향기를 내 영혼의 백지 위에 하나 둘 채색하여 다시 음미하여
보는 시간을 갖는다.
옴브라 마이 후: Ombra mai fu(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맞다 그 그리운 영혼들의 나무 그늘 아래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생의
그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그렇게 파란 하늘 밑에 눈부신 햇살처럼 맑은
영혼의 향기로 수채화 한 폭을 그리는 마음이고 싶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깊은 자아성찰과 서로에 대한 존재가치의 나눔과
열정이 아닐까……………………………
문학인이면 한번씩 집고 넘어가는 횔덜린을 시인 김지하는
아래와 같이 노래하고 있다.
횔덜린 - 김지하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시인의 뇌 속에 내리는
내리는 비를 타고
거꾸로 오르며 두 손을 놓고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어둠을 어둠에 맡기고
두 손을 놓고 거꾸로 오르며
내리는 빗줄기를
거꾸로 그리며 두 손을 놓고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고향 - 횔더린(Holderlin, Friedrich
뱃사람은 즐거이 고향의 고요한 흐름으로 돌아간다.
고기잡이를 마치고서 머나먼 섬들로부터
그처럼 나도 고향에 돌아갈지니,
내가 만일 슬픔과 같은 양의 보물을 얻을진대.
지난날 나를 반기어 주던 그리운 해안이여,
아아 이 사랑의 슬픔을 달래 줄 수 있을까.
젊은 날의 내 숲이여 내게 약속할 수 있을까,
내가 돌아가면 다시 그 안식을 주겠노라고.
지난날 내가 물결치는 것을 보던 서늘한 강가에
지난날 내가 떠 가는 배를 보던 흐름의 강가에
이제 곧 나는 서게 되리니 일찍이 나를
지켜주던 그리운 산과 산이요, 내 고향의
오오 아늑한 울타리에 에워싸인 어머니의 집이여
그리운 동포의 포옹이여 이제 곧 나는
인사하게 될지니, 너희들은 나를 안고서
따뜻하게 내 마음의 상처를 고쳐 주리라.
진심을 주는 이들이여,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안다.
사랑의 슬픔 그것은 쉽게 낫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의 위로의 노래 부르는 요람의 노래는
내 마음의 이 슬픔을 고쳐 주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하늘의 불을 주는 신들이
우리에게 신성한 슬픔도 보내 주셨나니,
하여 슬픔은 그대로 있거라. 지상의 자식인 나는
모름지기 사랑하기 위해 또 슬퍼하기 위해 났니라
독일의 시인. 슈바벤의 네카 강변 라우펜 출생. 수도원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784년 덴켄도르프의 수도원 부속학교, 88년에는 튀빙겐대학 신학과에 들어갔으나,
어머니의 희망인 신학 공부보다는 고전 그리스어·철학·시작(詩作)과, 그리고 헤겔·
셸링 등 뛰어난 학우들과의 교유에 열중하였다.
졸업 후 동향 선배 실러의 주선으로 가정교사가 되었으며, 그런 관계로 예나에도
거주하였는데, 괴테·실러 등은 자기와는 이질적(異質的) 존재임을 깨닫고 I.칸트,
특히 J.G.피히테 철학의 추상적 세계에는 몸담아 있을 수 없어 고향으로 도망쳐
돌아갔다.
96년 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 곤타르트가(家)의 가정교사가 되었는데, 그 부인
주제테와의 만남은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횔덜린은 그녀에게서 그리스적인 미(美)와
조화의 화신을 발견하였고, 그녀도 그의 순진한 심정을 보고 서로 경애(敬愛)하였다.
그녀는 디오티마(Diotima)라는 이름으로 서간체 소설 《히페리온:Hyperion》 및
그 밖의 많은 시편(詩篇)에 등장하였으며 그 작품은 모두 불후(不朽)의 것이 되었다.
3년 후 비련의 이별을 하고 함부르크·고향·슈투트가르트·하우프트빌·보르도 등지를
방랑하였는데, 1802년경 정신착란 증세가 생기고 1806년부터는 완전히 폐인이 되어
36년간 튀빙겐의 목수 치머 일가의 보호를 받았다.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나오지 않았지만 횔덜린 특유의 작품은 단편으로
끝난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Der Tod des Empedokles》(1797∼99)을
비롯하여, 프랑크푸르트 시대 이래의 시작품(詩作品) 《디오티마 Diotima》
《디오티마를 애도하는 메논의 탄식》 《하이델베르크》《빵과 포도주》
《귀향(歸鄕)》 《라인강》 《평화제(平和祭)》 《유일자(唯一者)》 《파트모스》
등의 걸작이 있다. 이들 작품에서 풍겨오는 것은 잃어버린 황금시대에 대한
한탄, 자연과 인간의 재생에 대한 원망(願望), 현재의 암흑시대에서 신들을
두려워하고, 그 재림을 믿으며 신들의 말을 노래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예언적 시인의 사명감이었다.
'붓꽃 독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꽃 독백 - 바람에 온 세상이 흔들리고 나부끼는 날에 (0) | 2007.03.28 |
---|---|
알림 - 잠시 쉬었다가 돌아 오겠습니다 (0) | 2007.03.16 |
붓꽃 독백 - 반 고흐를 생각하며 아우님께 (0) | 2007.03.12 |
시인의 창가에 앉아서 (0) | 2007.03.09 |
솔잎향기 가득한 봄 오솔길의 초대 (0) | 2007.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