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산책길을 함께 걸어주겠다는 아우를 생각하며. - 石耳
간이역
떠나간 기차처럼
스쳐간 시간들이 그리움 되어
팽개친 짐짝처럼 외로움으로 남았다
반겨야 할 사람 없어도
저 끝 철길 따라
기적 울리며
그냥
스쳐가도 좋으니
열차래도 보이면
이 외로움 덜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시가 되어도
기다리는
열차는 오질 않고
부산 UN군 묘지에서
장미를 보면.. - 石耳
장미를 좋아하는 아우가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다 스스로 담장을 높이 처놓구선
늘 외로워 하며
장미를 가꾸는 아우인지라
장미가 자라는 계절이면 어김없이 생각이 난다.
어쩌면
이 장미 보담 더 아름다운 장미가 그의 담장을 장식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장미는
이름 모를 어느 외국 병사의 비석 옆에 피어있던 것이다.
장미와
전쟁과
병사의 무덤에
오버랲 되어 떠올려지는 한 아우가 나에게 있다.
내가 허물 수 없는 그 담장 안에서
그는 지금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David Hockney - Nichol's Canyon
20세기 세계문학사의 한 축을 이루는 T.S. Elliot는 자신의 명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시심을 읊었다. 그 한 줄의 시심이 세계문학사는 말을
할 것도 없고 세계운동권의 신앙고백처럼 인용되었고 인용 되고 있다.
문학이란 열병을 앓거나 지성이란 고뇌의 좁은 골목길을 스쳐가는 양심이라면
한번쯤 누구라도 읊어 보았을 엘리엇의 황무지 안에 담긴 시대의 우울과
가난과 지성에 기대어 창작해낸 그의 불후의 명작을 만났을 것이다. 그 명시를
출판하는데 조건 없는 애정 어린 관심과 도움을 주었던 어네스트 헤밍웨이와의
우정은 문학사에 빛나는 에피소드 중에 하나이다. 가난한 문학의 동지요 벗을
애정 어린 우정으로 돌보아 주었던 헤밍웨이 그 또한 비극적인 권총자살로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고 말았지만 이 두 문학의 거성들은 오늘도 우리 곁에서
함께 지성의 숲을 거닐고 있다.
5월이 장미의 계절이라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계절의
정취가 서성이어야 마땅하지 않을 까?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이성과 절제란 제어기능을 시기 적절하게 사용할 때라면
가장 슬프고 아픈 것은 이성과 절제를 상실하고 감정을 앞 세울 때 이다.
휴무하는 동안 어제는 먼 이역 어느 항구도시에 살고 있는 한 아름다운 그리운 이의
장미향 가득한 그리움이 서성이는 그의 사색의 간이역에 놓인 낡고 오래된 의자에 앉아
한 시절 그와 함께 스쳐간 시간들을 되짚어 보았다. 그리움을 이대로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 것으로 행복하다는 그분의 말들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때론 만나고 나면
갖고 있던 그리움의 여운이 사라져버리고 인간이 인간에 대한 실망과 배신으로
만나지 않고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선에서 머무는 것 보다 더
못한 때가 많다며 인생을 사실만큼 살아오신 분의 말씀이 이대로 그리움을 갖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나기 전이나 만났을
때나 만나고 난 후에나 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성과 품성과 향기에 있어서
변함이 없어야 하는 진실된 언행과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소양과
매너와 에티켓이 아니겠느냐고 반문을 하였다.
사람들은 때론 현실감각을 잃고 현실을 부정하고 마치 자신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을 할 때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존재 앞에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러한 사실은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않은
사람이나 근본적인 인간의 조건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고 바라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운명의 수레바퀴 안에서
주어진 자기 몫만큼만 행불행을 떠나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근심과 고뇌를 혼자만이 짊어지고 가는 것도 아니요………
세상의 모든 권력과 돈과 명예를 자기만이 손아귀에 쥘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세상을 자기만이 홀로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세상의 행복과 비극을 혼자만이 갖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몫만큼의 행복과 불행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되어 있다.
다만 개개인이 살아온 환경 즉 가정의 가풍과, 교육배경과 사회배경과 더 나아가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고 가는 교류에 의하여서 품성과 인성이 형성되고
그 색깔에 따라서 개개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인류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향기 나는 모습은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옳고 그름은 물론이요
명징한 사리판단과 자신의 한계를 깊이 있게 인식할 줄 알고 냉철한 이성의
절제와 감정을 제어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불쌍하게 생각할 줄 아는
따듯한 가슴과 소박하면서도 내면의 깊이 있는 우아함과 인격의 품위를
지니고 객관적으로 사물과 생활주변의 일상들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와
기본적인 예의와 에티켓을 지키며 주변의 인물들과 사회공동체에 생산적이며
명예로운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사기수법도 고도로 지능화 되어 진화되어 각종 신종
전화사기범들로 인한 말을 할 수 없이 많이 발생하는 한국사회나 우리
서구사회나 한치 차이요 인성의 말살로 십대들이나 다른 세대들의 범죄행위도
건전한 사고와 가치로 살아가는 시민들을 경악시키는 경우는 다반사요
지구촌은 인간이 만들어낸 각종 공해와 쓰레기로 넘쳐나고 그에 상응하는
자연재해와 인간 공해도 범람하다 못해 양심 있는 과학자와 공동체에게
위험수위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가장 선봉에 서있는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하겠다. 수자원의 고갈과 자원고갈로 인류문명은 몸살을
앓고 있다.
석탄으로 움직이던 기차를 기다리던 앞서간 세대들의 간이역은 어쩌면
영원한 그리움의 에스프리인지 모른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우리 모두가
돌아갈 수 없는 역사의 뒤안길 배를 줄이고 보리 고개를 넘기며 가난으로
무작정 상경을 하여 구로공단으로 청계천 다락방 봉제공장으로 떠났던
누나와 누이들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의 지하 막장과 병실로 피비린내 나던
베트남 전쟁터로 맹호부대와 백마부대 군가를 목청 돋워 부르며 전후의
가난 속에 유엔의 원조물자와 구호단체의 옷들을 얻어 입으며 고아로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온몸으로 생존을 위하여 살아야 하였던 시절을 살아온
대표적인 지성이 있다면 이 시대의 우직한 표상 김신용 시인이 아닐까 싶다.
이제 그분들은 50과 60고개 70 고개 80고개 인생의 성상을 넘어 서 있다.
그분들의 피와 땀방울이 없었다면 이 시대의 근대화나 현대 한국은 존재
불가능하다. 그분들의 2세와 3세들은 한국사회에서 지구촌 각 인류공동체에서
각기 다른 문화와 국적으로 소속된 사회의 시민의 일원으로 오늘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죽엄 앞에 서보라 혈액순환이 딱 멎은 그 순간의 창백한 그 얼굴을 보라.
존재가 얼마나 허무한가를 느끼기도 전에 존재의 허무감은 일순간 혈관을 타고
역류하듯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차가운 물처럼 전신에 흐를 것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권력도 명예도 부귀영화도 존재의 의미 조차도 상실하고 만다.
때론 쥐어박고 싶은 일은 허접스러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돈에 노예가 되어
윤리와 도덕조차도 시궁창처럼 여기는 인간들이 도박과 포르노 광고를 무작위로
댓글과 교감게시판에 올리는 일이다. 꼭 그래야만이 되는 것인지 그런 인간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죽음 앞에서도 그런
짓을 하지 못해 어찌 눈을 감을 것인지 의구심이 일다 못해 연민을 느낀다.
잠시라도 댓글과 교감게시판을 닫고 허접함을 신경 끊고 있고 싶어 닫았었다.
통하기를 신청하는 방문자분들에 한 하여서 블로그를 열고 싶은 극단의
생각도 하였었지만 특별히 지성의 벗 <목로주점> 아우님과의 교감을
고려하여서 불편함을 고려하여서 다시 댓글과 교감게시판을 열어 놓는다.
도박이나 포르노나 경마나 기타 사행성 내지는 부도덕한 광고 게재와는
이에는 이 칼에는 칼로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맞설 것이며 어떤 본인의 글에
허접스런 광고가 게재되는 즉시 해당 쓰레기 시궁창 글의 삭제와 동시에
해당 본인의 글에 댓글을 금지할 것이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그렇게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차단시킬 것이다.
그 동안 블로그를 하면서 방문자 분들의 지역을 분석하여보면 서울 경기 부산이
가장 많고 단 한 지역만이 아직까지 블로그를 열은 이후 방문자를 맞이 할 수가
없다. 다름 아닌 제주도에서 접속하여 방문하는 분이 없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오늘도 얼굴도 성도 이름도 모르는 블로그 애독자들을 생각하며 제주도 분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블로그를 방문하는 분들이 가장 아끼는 시인 중에 한 분은 2007년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여성시인 나희덕씨란 사실과 가장 관심을 갖는 글은 <죽기전에 꼭 봐야할
인류의 걸작 미술품 20점> 이다. 행복한 일상과 건강을 비는 마음이고 싶다. 이 작고 보 잘 것 없는 블로그가 방문하시는 분들의 일상에 마음과 영혼의 작은 쉼터와 위로가 되기를 기원한다.
Willem de Kooning(1904 - 1997) - Untitled X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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