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산책로
휴무한 그저께 잡식동물이 된 날이다.
늘어지게 한숨 자고 일어나 커피를 내려서 한잔 마시고 마종기 시인의
시집 한 권을 들고 뒤척이던 아침시간 저녁나절은 잠시 사무실 문
마음대로 부담 없이 자유롭게 열고 들어가고 마음대로 나올 수 있고
부담 없이 커피 마실 수 있는 아버지 같은 분의 사무실로 마실을 갔다.
커피 팟에 남은 커피를 마시니 신선한 커피를 마셔야 한다며 70을 넘으신
분이 비서 제쳐 놓으시고 손수 새로 내리시고는 자신도 한잔 들고 오시면서
다시 신선한 커피 한잔 마시라고 권하신다.
퇴근시간이 되니 집으로 함께 가서 와인 한잔 같이 마시자고 하신다.
순간 비서가 전화기를 건넨다. 마나님께서 고등학교 동창부부가 방문한다고
집으로 오라고 호출을 하신다. 순간 가는 길에 병원에서 환자 좀 보고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러지 말고 시내서 만나자고 제안을 하신다.
퇴근길 “야, 너도 같이 오늘 우리 집에 가서 와인이나 마시자” 하신다.
“얼굴 보았으면 되었지 가긴 뭘 가요. 더욱이 마나님 고등학교 동창부부를
만나는 자리에 합당치 못한 자리에요” 그리고 떠나온 자리 귀가하여
샤워를 하고 <샘에게 보내는 편지>, 황순원 선생님의 손녀 황시내의 산문
<황금 물고기>와 김신용의 시집 <개 같은 날들의 기록>을 몇 페이지씩
잡식으로 시작한 독서 그 중에서도 특별히 김신용의 그 격렬하고
핏빛 어린 시집을 읽고 난 후 왜 그리도 속이 후련한지 시원하다 못해
가슴이 별안간 뻥 뚫리고야 말았다.
왜일까?
세상의 가장 어두운 음지의 처절한 현실을 고발한 도시빈민계층의
일상에서 태동한 문학이라서 일까? 1983년 박노해가 노동자 시인의
효시였다면 시인 김신용은 엄밀히 따져서 박노해 같은 노동 시인으로
분류될 수 없는 도시빈민이란 환경적인 한계상황에서 길어 올린
처절한 몸부림 그 혈흔의 현실고발이란 적나라함이 주는 간접적인
매조키스트적인 요소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시인 김신용은 그 동안 2007년도 최우수 시작품에 선정된
그의 신작 <도장골 시편>을 통하여서 환골 탈퇴하여 그만의 새로운
한 단계 성숙되고 원숙미 넘치는 시어와 시 정신으로 승화된 모습으로
도시빈민계층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한계성을 벗어나 독자들은 물론
시문학의 중심부에 현재 우뚝 서있다.
가을이 깊이 물들어가고 있는 시간 위에 세월의 강물은 우주의 생성
이후 늘 그래왔듯이 오늘도 유구하게 도도히 역사의 수레바퀴가 되어
우리 인생의 궤적과 더불어 막힘 없이 물 흐르듯이 흘러가고 있다.
이 가을도 이제 제법 가을비와 더불어 깊어 가는 듯 하다.
슈베르트의 연가<An die music>가 아니어도 가을은 홀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스스로 가을이란 이름으로 나무 가지 가지마다 햇살 줄기 줄기마다
물들이며 스스로 소멸과 동시에 열매를 맺는다. 시인들의 시어로서
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의 오선지 위에서 화가의 화폭 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필부의 가슴과 사색의 창가에서 가을의 풍성한 서정과 감성의
수확은 물론 넓은 들판에서 우리가 일용할 양식 하나 하나까지도 열매로서
보답을 한다. 이 얼마나 위대한 대자연의 순리이며 진실인 가…
Schubert Playing Piano by Gustave Klimt
목로아우님의 사색가운데 이 가을에 찾아온 오스트리아 비엔나 근교
바움가르텐에서 7명의 자녀가운데 두 번째로 출생한 20세기 화단의 기린아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 눈부신 에로티시즘과 빛나는 황금빛의 향연과
슈베르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도 슈베르트는 지독한 바람둥이
이었나 보다 매독에 걸려 결국 생을 마감하는 과정에 이른 그가 아니던 가.
그런 그를 흠모하던 클림트 역시 같은 오스트리아 에로티즘의 대가인
화가 이곤 쉴레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화가 중에 한 사람이다.
이곤 쉴레의 그림들은 에로티즘의 적나라함으로 점철되다 못해 자신의
자위행위까지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 시대의 이단아가 아니던 가. 그런
에로티즘을 한 단계 빛나는 여성의 성을 빌려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가
바로 1897년 4월 3일에 조직된 기존 비엔나 순수미술계에 반기를 들고
분리되어 나온 진보적인 시대의 반항적인 화가들의 집단인 <비엔나 알트
누보> 운동의 기수 클림트다. 그런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피아노를 치는
슈베르트> 역시 색감에 있어서 눈부시다.
목로주점 아우님의 사색대로 가난한 작곡가요 피아니스트인 슈베르트는
뛰어난 감성 어린 음악적인 재능과 더불어 인간적인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대중 속에 고독한 존재였는지 모른다. 그 시대상으로 보아 귀족들을
위한 봉사차원의 여흥과 그들만의 시간에 초대하여주는 것만으로도 감지
덕지 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음악가인 그는 귀족가문들의 뭇 여성들 한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외롭고 고독한 인간적인 한계를 난봉꾼 역할로서
소화시킨 나머지 매독의 제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by Gustave Klimt
나치 독일은 에로티즘의 대가인 클림트의 그림들을 몰수하여 비엔나
국립미술관에 소장시키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난 후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는 본래 소장자인 The Bloch-Bauer
가족들과 오스트리아 정부와의 오랜 법정싸움 끝에 반환 끝에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800만 불에 낙찰되는 당시 세 번째로 높은 경매 가로
뉴욕의 어느 재단으로 팔려갔고 구스타프 클림트는 1911년 로마에서
열린 그림전시회에서 “죽음과 삶”이란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후 그의
어머니 애나는 1915년 사망하고 그도 3년 후 2월 6일 1918년
중풍으로 비엔나에서 사망하였다.
비엔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불현듯이 말러 교향곡이 듣고 싶은지
모르겠다. 클림트도, 말러도,샤갈도 이 시대 사실주의 화풍의 대가
영국의 루시안 후로이드(정신분석학자 후로이드의 손자) 모두가
공통적으로 유대계란 공통분모 때문인가 보다. 재계는 물론 문학과
예술 철학 그 어느 분야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두뇌집단이 바로
유대계가 아닐까 싶다. 작가 노먼 메일러,가수 바바라 스트라이샌드,
영화배우 폴 뉴먼, 아더 밀러, 멘델스존 모두가 유대인의 후손들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비가 흩뿌리고 지나간 대지 위에 낙엽은 지고 우리의 젊음도
저만치 흘러가고 있다. 풍성한 가을이여 신이여 축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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