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가을날의 안단테

붓꽃 에스프리 2007. 11. 3. 20:03

안양 중앙공원 10월의 마지막 주

 

 

11월도 어느덧 이틀째 지금쯤 찬바람 부는 언덕에도 아침조석으로

찬 기운 등골을 타고 내리며 깊은 가을이 드리우고 있지 않을지

<겨울나그네>를 작곡한 슈베르트도 182811월 비엔나에서 <겨울나그네>

마지막 오선지를 마무리하고 그의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의 <겨울나그네>만큼

이 지구촌의 수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사계절을 넘나들며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연가도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와 더불어 그리 흔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가을도 서서히 지는 낙엽 위에 깊어가며 그 모습을 서서히 감추어

가고 있다. 내일 모레 일요일이면 썸머 타임이 해제되어 한 시간이 늦춰져

모국과의 시간차이가 16시간에서 17시간으로 바뀐다. 하루 일과를 맞추고

귀가하는 시간도 자연적으로 늦춰져 어둠이 내린 후에야 대부분 직장인들이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집에 도착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다음달이면 12월 한해도 다 간다 싶다.

가슴 한켠이 휑하니 허무의 끝을 잡고라고 하여야 옳을까

아니면 유행가 제목처럼 이 밤의 끝을 잡고라고 하여야 옳을까

가는 세월 앞에 발걸음이 짐짓 멈춰진다. 황우장사인들 가는

세월을 잡을 수 있으랴. 그 어느 누구도 가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다

하니 세월이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대로 함께 흘러갈 수밖에 별도리가

있으랴 싶다.

 

이게 왼 일 캐나다 서부 숲 속 산간지대 빈터님네 통나무집 동네는

벌써 그것도 딱 맞춰서 11 1일 날 첫눈이 내렸다고 신고가 들어왔으니

겨울이 그리 멀지 않다 싶다. 온갖 들꽃들과 산새들과 각종 들짐승들로

가득하고 통나무집 앞 개울물이 눈이 녹은 물로 범람하여 작은 강을

이루던 그녀의 통나무 집에도 가을은 여지없이 내리더니 어느새 겨울

신고를 하였단다. 한 사나흘은 소란의 정원에서 러시아 음악에 묻혀

살다가 오랜만에 오늘은 휴무 날 타운을 나가 11월호 문학사상을

들고 오다 보니 아니 이게 왼 일 표지 화가가 잠시 한눈을 팔았나

김남조 선생님을 분탱이 아줌마로 그려놓아 얼굴이 부시시하다 못해

영 이것은 아니다 싶다.

 

스물여섯에 첫 시집 <목숨>을 낸 이후 열여섯 번째 시집 <귀중한 오늘>

출간한 노시인은 아직도 그 얼마나 완숙한 청순함이며 수줍음 이던가.

슈베르트의 연가 <겨울나그네> 그것도 신세대 테너 Ian Bostridge

피아니스트 Leif Ove Andsnes의 연주는 한층 더 사랑의 시인, 생명의

시인 그리고 정념의 시인이라 불리 우는 여류시인에게 어울리는 예술의

배치인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 병을 몸살처럼 연례행사로 앓는 영혼들에게 러시아 연가나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나 오중주 아니면 브람스 곡들 또한 가을이란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을 까. 섯불리 가을 병을 앓으면 앓지 않는 것만도

못하니 아예 가을의 향기와 서정으로 확실하게 익사하거나 혼절함은

어떨까? 철저하게 자신 앞에서 고독과 마주하고 앉거나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저녁이 내리는 빈 들판이나 낙엽지는 숲으로

그대의 그리움이 지고 흐르는 강가로 텅 빈 가을 바다 모래사장으로

나아가 그리운 이름들을 하나 둘씩 별 헤는 마음으로 되 짚어보기를

하는 것이다.

 

한잔의 향긋한 커피잔 위에도 소주잔에도 막걸리 잔에도 빈대떡과

더불어 그 나름대로의 향긋한 인간미와 낭만과 인생의 가을빛이

담겨져 있지 않을까?

 

꼭 우아한 포도주 잔이어야 하거나………

거위간 요리나 화려함의 극치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 가

인간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인간적일 때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허름한 선술집에도 펑퍼즘하고 유행 지난 합바지에도

구멍난 청바지에도 자신만의 개성과 향기가 담겨 있다면 누가 뭐라든

누구의 눈치를 의식할 필요 없이 그것만으로도 자유 함이 아닐까.

단 지나친 혐오감을 유발하지 않는 다면……철 지난 빈 가을바다

모래사장에도 빈 들판에도 사유는 얼마든지 이지와 지성으로 혹은

인간의 순수와 소박함 그 자체만으로도 가능하다.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역설하지 않았던가.

아무나 가을 병과 서정에 그 계절의 향기에 익사하던가……

그대여 두려워 마시라

익사하세요……

가을 속으로 더 늦기 전에 낙엽 지는 날에……

인생은 웃고 살고 사랑하고 아끼고 배려하고 살기에도

짧으나니 싫어는 할지라도 미워하지는 말라

 

대소변을 지리는 날………생의 꽃잎은 지나니

그 실존의 의미는 빛 바래 상실하나니……

우화의 강물은 흘러가리…………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영혼의 창가에서 배려란 이름으로….



윤동주의 서시

 

정호승  

너의 어깨에 기대고 싶을 때
너의 어깨에 기대어 마음 놓고 울어보고 싶을 때
너와 약속한 장소에 내가 먼저 도착해 창가에 앉았을 때
그 창가에 문득 햇살이 눈부실 때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뒤늦게 너의 편지에 번져 있는 눈물을 보았을 때
눈물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어이 서울을 떠났을 때
새들이 톡톡 안개를 걷어내고 바다를 보여줄 때
장항에서 기차를 타고
가난한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갈참나무 한 그루가 기차처럼 흔들린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인가
사랑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