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정부감사가 막을 내린 어제 그 동안의 긴장이 풀린 탓일까
퇴근하고나니 피로가 밀물처럼 한 순간 밀려온다. 모든 일 옆으로
제쳐놓고 샤워 후 잠자리에 든 간밤 달콤하고 깊은 잠을 자고 나니
창밖에는 가을아침 햇살이 눈이 부시게 나뭇가지 하나 위에도
찬연하다.
아………………이 눈부신 햇살이여………
아………………생의 아름다움이여…………
아………………눈부신 햇살의 가을빛이여…..
아직도 티비 뉴스는 온통 화재이야기로 가득하다.
지중해성기후인 우리 동네의 건조함과 계절풍은 乾期가 되면 위험천만
하기 그지없다. 스쳐가는 강풍에 전기 줄이 불꽃을 일으켜 잡풀과 숲에
떨어지면 그대로 대형화재가 되는 곳 가끔 정신이 나간 악동이나 미친
사람들이 방화를 하여서 평생 동안 일궈놓은 남의 귀한 삶의 보금자리를
통째로 화마에 빼았기는 절망과 아픔을 안겨주는 일이 있는 곳이 특별히
지중해성기후를 갖고 있는 지역의 원치 않는 정황일 때가 가끔 있다.
사계가 있는 지방이나 지역과는 달리 뚜렷한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지역의 특성상 마로니에 낙엽이나 노란 은행잎이나 붉게 불든 단풍잎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계절의 노스탤지어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임재범이 불러주는 “비처럼 음악처럼”이 아니어도 좋다.
다만 한 잔의 따듯한 향기 나는 커피 위에 가을을 담아낼 수 있는 풍성한
서정과 영혼의 향기와 낭만이 있다면 이 한 계절 가을이란 이름으로
영혼의 붓질을 하고 계절의 우수와 고독을 음미하기에 충분하다
굴락을 집필하였던 알랙산더 솔제니친, 세기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와
한 시대를 풍미하다 69세란 짧은 생애를 맞추고 떠난 아방가드 계열의
현대음악과 마지막 낭만파로 말러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구 소련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콘체르토가 어울리는 날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러시아가 배출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맥심 벤게로프의 연주로
영혼의 자작나무 숲 사이로 흘러나오는 듯한 청아함과 엷은 우수의 빛을
즐김도 행복한 가을이란 이름이 손에 쥐 켜 주는 작은 행복이 아닐 까…
사람들은 흔히들 말을 한다.
은퇴 후 여행도 다니고 못다한 작은 일상들을 즐겨보고 싶다고 그러나
그 누가 내일 아침에도 눈부신 햇살과 더불어 태양이 다시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고 장담을 할 수 있으랴?
그 누구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라고 말을 전하여주고 싶다.
밤사이 안녕이라고 힘든 일상에도 늘 아름다운 미소를 얼굴에
담고 다니던 직장에 찾아오던 마케팅을 하던 젊디 젊은 그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다는 소식이 어제 전해져 왔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가슴을 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난한 나라 필립핀에서 이민을
와서 그렇게 잘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던 심성이 고운 우리 세대의
딸 정도의 연령에 있는 그녀가 이제 학교도 맞추고 더 좋은 직장으로
전직을 하려던 차에 죽고 말았다. 인생은 예측불허라고 이런 것이다.
일상의 여유와 여백도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면 영원으로 매 순간
귀속되며 흘러가는 시간과 세월도 결코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
다만 흘러 갈뿐이다.
한잔의 커피 잔 위에 여백 작지만 우리를 충분히 하루 24시간 중에서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매개체가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잔잔히 차분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그리움 담아 잉크 묻어나는 편지나
이메일도 써서 그리운 이에게 보내보고 잠시 수화기를 들어 그리운
음성과 음성의 랑데뷰도 하고 또 주어진 하루를 각자 서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한 권의 시집도 오랜만에 손에 들어도
보고 저녁식사 후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동네어귀 산책도 하여보고
돌아와서는 오렌지 주스라도 한잔 따라서 나눠 마시는 작은 일상에도
행복은 있다.
행복이란 크고 화려하며 우아한 크리스털 포도주 잔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첩첩 산중에 아름다운 집 한 채를 짓고 있는 <찬바람 부는
언덕>의 에스프리 계리 아우님이 올리신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라
강원도 인제
야트막한 산들로 둘러 쌓인 곳이 아닌 첩첩 산으로 둘러 쌓인 산들의
정기가 한 곳으로 모아진 곳에 작고 아담한 보금자리가 완성되는 날
집주인은 겨우내 먹고 살 양식을 집안 한켠에 잘 준비하여 두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곳 폭설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지붕 밑까지 차 올라
온 천지가 설국이 될지도 모르는 대자연만이 함께 침묵 속에 스쳐가는
바람소리와 들짐승등과 풀벌레 소리만이 가을의 서곡과 겨울의
서정으로 와 닿음직하여 산수화 한 폭에 담음직한 곳 그 자체만으로도
한편의 서정시요 산수화가 되고도 남는다 하겠다.
공해나 아귀다툼과 애증의 강물도 흐르지 않는 맑고 고운 산골 가을의
초입에 서면 구절초 향 가득하고 잉크 빛 하늘에 하얀 물감 풀어 더욱
더 깊고 아름다운 서정과 우수를 담아낼 수 있는 빛 바랜 프러시안
불루나 맹거니스 불루 같은 하늘빛과 향연을 펴 칠 수 있는 곳이다.
서양냄새 물씬 풍기는 파스타나 치즈와 소비뇽 백포도주나 적포도주
캐버넷이나 피노 느와가 아닌 질그릇 뚝배기에 김장김치 반 포기
썰어 넣고 여름내 햇살로 목욕시켜 말린 호박 꼬재기에 두부와 청국장
풀어 넣고 보글 보글 끓인 청국장과 걸죽한 막걸리가 어울릴듯한
찬바람 부는 언덕의 정기가 담길 한옥이 자리할 산골의 집 한 채
눈이 내리면 대금으로 연주된 음악 하나 걸쳐 놓고 구절초 향 가득한
차 한 잔 나누어도 좋을 만한 산골의 집 그러다 클래식이 잔잔히
흘러도 좋음직한 서까래 사이로 파란 가을 하늘이 보이는 건축현장이
전해주는 계절의 풍성한 서정과 감각이 있기에 이 가을날 하루도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다.
건강을 장담하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사색의 발상이 없다.
세월이 흘러 늙어가는 육신에 대한 절망과 좌절을 딛고 있는
그대로 자연의 순리를 진실로 받아드리고 지혜롭게 대처하며
살아가는 방법도 우리에게는 절대 필요한 조건들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기에 더욱 더 필요하다.
노인의 질투는 청소년이나 젊은 이의 질투 못지 않으며
노인이 되면 주변의 더 많은 따듯한 시선과 가슴이 담긴 관심과
사랑과 배려를 요구하게 되며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하여서는 아니 될 일이다. 작은 일상의 무관심과
일에도 쉽게 서운함을 느끼며 삐치는 일도 늙어가는 과정과
한편 노인들의 모습이다.
성질고약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있는 성깔 그대로 다 부리고
안하무인이며 매너 없고 자화자찬이나 늘어 놓고 척하는
당신이라면 노인으로서 인격적인 대우를 기대하지 말라……
자애롭고 솔직담백하며 소박하고 인간적인 마음의 폭이 넓고
겸손하며 필요치 않은 말은 많이 하지 않는 당신….
풋풋한 내면의 향기와 따듯한 영혼의 시선과 창문을 갖고 있는
당신……
한 수 더 떠 때와 장소를 분별하여 대화를 매너 있게 이끌어
나가는 당신………
이성과 감정을 절제할 줄 알며 소박한 한 잔의 커피를
나눌 줄 아는 당신………
이성이 제 기능을 하는 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 매너와 에티켓을 지킬 줄 아는 당신…………
조금 상대를 안다고 상대가 친근감의 의미로서 당신에게 특별히
허락하지 않는 한 함부로 반말지거리에 매너 없는 막말을 하지 않는
당신……………
한 인간으로서 살아오는 동안 경험한 인생과 전문분야를 누군가와
더불어 함께 긍정적인 의미로서 나눈다는 생각에 앞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교훈적인 의미가 담긴 대화나 글의
뉘앙스를 이끌어나가지 않는 당신…………
늙어가는 과정과 여정은 그리 만만치 않다.
참으로 때론 우리가 스스로 의식을 하든 아니든 못하든 어려운
일이다. 병마와 육신의 쇠잔함과 더불어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를 때 더욱 더 그렇다.
우리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의 삶만이 진정한 의미로서
존재의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소변을 못 가리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병마로 감정과 이성의 절제가 통제불능일 때는
살아 있어도 살아 있다 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얼마나
필요한지는 구태의연하게 낱낱이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가슴으로
느끼고 배려하고 서로를 보듬고 살아갈 뿐 인생은 너무나도 짧다.
20세의 청년이 중년이 되고
20세의 청년이 장년이 되는 세월 그 누구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다만 세월에 순응하고 주어진
일상을 성실하고 충실하게 살아갈 뿐 다른 왕도가 있으랴……
산맥을 넘어온 바람에 싱그런 철새 깃 소리가 묻어나는 때
선명하게 가을 물든 잎새 흩날리며 썰렁한 들녘에 서 있는 한 그루 괭나무,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의 숨결 온몸으로 느끼며 파란 하늘 향하여 거침없이
뻗치는 가지 끝
섬세한 실뿌리 땅속 깊이 뻗치며 최초의 위치를 붙들고 있는 나무,
사람과 함께 수직으로 지상에 서 있지만, 나무는 지금 잔잔한 초록색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석탄기의 시간을 살고 있다. 내가 체험 할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다. 내가 체험할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는 나무, 지난
세월을 자기의 형태로 표현하는 나무, 옹이 돋아난 아름드리 거친 둥지
어루만지며 우러러보는 우듬지, 하늘에 번지는 실가지가 튀기는 엷은
햇빛 금가루,
아득한 지평선 위에서 목쉰 바람 소리 지르고 있는 잎 진 겨울나무
몸매의 나무랄 곳 없는 균형. 아름답다. 목숨이 겪는 저마다의 이력이
만드는 형태는 아름답다. 능소화빛 아침노을이 은빛 가야산 능선을
멀리 물들이는 때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계절을 기다리며 천년을 혼자
서 있는 한 그루 괭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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