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크리스마스 정신과 참사랑의 길

붓꽃 에스프리 2007. 12. 24. 07:20

여러분들의 평안하시고 강건하시고 행복한 성탄절을 기원합니다.

 

 

그저께는 온종일 하늘이 잿빛 옷으로 갈아입고 우거지상을 하고 있었다.

어제 만 65세가 되신 위에 분을 모시고 외출한 공원에는 흩뿌리는 가랑비에

젖어 어깨가 축 늘어진 포플러 나뭇잎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낙상을 하여 물기 가득한 빛 바랜 겨울 잔디 위에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고요가 감도는 젖은 공원 그리고 내리는 가랑비 위에 시야 속으로

들어오는 정경은 계절의 상념으로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이제 인생 60중반을 넘어서시는 윗 분의 가슴에도

파문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름날 같은 장소에 드리웠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며 잠시 겨울 비 내리는 공원의 오솔길을 함께 산책하는

동안 침묵을 지키신다.


기우는 하루 끝에 어둠이 내리고 비가 멈추더니 밤이 깊어 가랑비

내리던 빗장 열린 겨울공원의 서정은 어느 사이에 저만치 물러가고

바람이 쌩쌩 불어와 창문과 모든 사물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사정없이

뒤흔든다. 어느 분의 영혼의 산책길을 나서보니 동지 날을 이야기

하고 있어 이제 진정 12월 한 해의 마지막 끝자락이구나 싶었다.

그뿐이랴 시인의 오솔길에서는 독일의 대표적인 위대한 시성

횔덜린의 생애와 발자취를 추모하며 또 다른 동양 3국의 중견시인인

조정권 선생님이 남기신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시문학의 정신이

담긴 <튀빙겐으로 가는 길>이 실려있었다.

 


<
튀빙겐으로 가는 길>은 조정권 선생님의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이요
제목이기도 하다. 문득 왠지 모르는 그리움을 안겨주는 튀빙겐이란

이름 살아생전에는 베토벤 이상으로 정신착란으로 힘든 생애를 살다간

시인 횔덜린 그의 비극적인 생애를 생각하여 보았다...

 

 

즐거운 이브와 크리스마스가 되시기를 여러분 모두에게 기원합니다. 



옛 조상들이 우리 후대에게 남겨주는 동지 날이란 계절의 서정과

어찌 이리도 잘 어울리는 시인의 오롯이 빛나는 詩魂과 문학산책이던가.

잠시 시인의 상념이 담긴 메시지를 가슴에 담아본다.

흐린 날의 빗장을 열어 젖히는 한 편의 시 '튀빙겐 가는 길'

횔덜린의 삶의 궤적을 느껴보고자 여행을 계획하였던 선생의 가슴에

새로운 세계가 손을 뻗어 왔었던 것이 아니었었나 생각을 하게 합니다
.

이 시가 발표되었을 때 한 시인의 고백에 의하면 자신은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었고 그만그만한 눈 높이에 머물러 있던 여러 시인들의 가슴에도
반성과 성찰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계기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

이 세상이라는 소통 불가능한 대상과 교호하지 못하고 유폐되어

한 생을 정신착란과 고립으로 일관하였던 비극적 삶을 살았던 시인 횔덜린,

그의 시는 그의 삶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구원의 메세지를 담고 있어
더욱 빛나는 그의 시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그랬습지요, 서울의 하늘은 잿빛! “

 

 

고향 - 횔덜린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뱃사람은 즐거이 고향의 고요한 흐름으로 돌아간다.

고기잡이를 마치고서 머나먼 섬들로부터

그처럼 나도 고향에 돌아갈지니,

내가 만일 슬픔과 같은 양의 보물을 얻을진대.

 

지난날 나를 반기어 주던 그리운 해안이여,

아아 이 사랑의 슬픔을 달래 줄 수 있을까.

젊은 날의 내 숲이여 내게 약속할 수 있을까,

내가 돌아가면 다시 그 안식을 주겠노라고.

 

지난날 내가 물결치는 것을 보던 서늘한 강가에

지난날 내가 떠 가는 배를 보던 흐름의 강가에

이제 곧 나는 서게 되리니 일찍이 나를

지켜주던 그리운 산과 산이요, 내 고향의

 

오오 아늑한 울타리에 에워싸인 어머니의 집이여

그리운 동포의 포옹이여 이제 곧 나는

인사하게 될지니, 너희들은 나를 안고서

따뜻하게 내 마음의 상처를 고쳐 주리라.

 

진심을 주는 이들이여,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안다.

사랑의 슬픔 그것은 쉽게 낫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의 위로의 노래 부르는 요람의 노래는

내 마음의 이 슬픔을 고쳐 주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하늘의 불을 주는 신들이

우리에게 신성한 슬픔도 보내 주셨나니,

하여 슬픔은 그대로 있거라. 지상의 자식인 나는

모름지기 사랑하기 위해 또 슬퍼하기 위해 났니라.

 

 

그렇다 시인의 독백이 말을 하고 있듯이 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사후에서야 독일문학에서 위대한 서정시인으로서 인정을 받고 칭송 받을 수

있었다. 천재는 그래서 고독하고 외롭고 때론 세상 필부들의 짧은 사유의 숲을

넘어 위대한 정신을 글과 예술로서 승화시키는 위대함 앞에 설 수 있는 것인가

 

크리스마스 성탄절이란 만인의 공휴일이 상업화되어 세속의 나락으로

근본적인 정신을 상실한지는 퍽이나 오래되었다. 우연히 몇 일전 만난

시 한편 등 뒤의 사랑이 역설하고 있듯이 우리는 단 한치 잠시 영원이란

시간 위에 뒤를 돌아보는 여유도 없이 오로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에 놓인 목적 그 목적이 무엇이든 그것만을 위하여서 달려온 것이 아닐까?

 

말로는 그지없이 화려한 수사와 미사여구 루이 뷔통으로 휘감고 치장하고

언행은 일치하지 않으며 생색이나 내거나 어깨에 힘이나 싣고 거들먹거리는

허세 앞에서 허우적대며 때론 남에게 상대적인 상실감이나 상처를 안겨주지

않았는지 그리고 일상의 한 편린을 살아오지 않았나 스스로 우리 모두

뒤돌아 보아야 할 시간이다.

 

누군가 낮은 곳에서 따듯한 말 한마디 사랑한다는말을 듣고 싶어

이 순간에도 아파하고 고독과 외로움과 소외와 각종 질병과 불행과

시련과 역경으로 힘겨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간신이 땅이라도 짚고

일어나 긴 심호홉 한번이라도 하며 자신의 주변을 뒤돌아볼 수 있는

여백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상처받은 영혼들을 우린 이기적인 인간의

본질을 앞세워 얼굴 한번도 돌려보지 않고 성공가도만을 위하여서

살아온 것은 아닌가 물론 개개인마다 정의하는 인생의 성공이란 의미는

무수히 다르다.

 

어떤 사람은 성공이란 금권력이라면

어떤 사람은 명예요

어떤 사람은 부귀영화요

어떤 사람은 자기 희생 위에 타인의 행복을 앞세워 살아가는 봉사정신이요

그 정의는 모두가 다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미국의 백만장자 Kansas city의 래리 스튜어트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가 살아생전에 가난한 이웃들을 찾아 다니며

철저히 신분을 감추고 건네준 100불짜리 그가 올해초 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가 1979년부터 작년까지 28년간 겨울이 되면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100달러를 아무 대가 없이 이렇게 내준 돈은 자그마치 총 130만 달러

( 12억원)에 이른다.” 돈이 많아서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그의 위대한

나눔의 정신과 이웃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살아있는 산타클로스의

정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벌어 부를 축적하면 대우받는

이웃이나 가장이란 수식어가 담고 있는 윤리의식과 도덕부재 정신의 흔적을

뉘앙스로 담고 있는 축과는 그 획을 달리하고 있다 하겠다.

 

록펠러 가문의 영광이 얼마나 더러운 미국 역사 속의 부의 축적이었던가는

역사가 말을 하고 있다. 비록 그 가문에서 주지사가 배출되고 세계적인 록펠로

재단을 세워 사회에 아직도 기여하고 있다 하여도 대한민국의 부와 근대화의

아버지 고 박정희 장군 그리고 대통령이 그의 위대한 위업에도 불구하고

늘 수식어로 따라 붙는 독재자란 오명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부의 축적도

권력의 쟁취도

명예의 성취도

모두가 정직하고 깨끗한 이상과 윤리의식과 도덕관에서 출발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이지와 지성도 부귀영화도 명성도 권력도 가문도 존경 받을 수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란 수식어가 담고 있는 말의 뉘앙스는 상당히

애매모호한 윤리와 도덕부재의 상징이 아닐 수가 없다. 그것은 아니다.

정의는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라면 윤리의식과 도덕도 한 가정이든 사회든

국가든 대동소이하다. 누군가는 굳건히 반석 위에 정의도 사회윤리의식도

기업윤리도 가정윤리도 세워야 하고 도덕도 세워야 한다. 아니고서야 세상은

모두 일류지향과 명품지향의 사회와 가정과 개인윤리로 치달아 인간성

그 순수 자체를 상실하고 만다. 일류가 있다면 상응적으로 그를 뒷받침하는

그 반대편도 공존하는 여백이 있어야 가정과 사회와 국가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겸손은 다 어디서 출발하는 가 그리고 정직은 어디서 출발하고 가정윤리와

사회윤리는 어디서 출발하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가도를 위한

교육이나 사회의식의 흐름은 결코 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서 바람직하지 않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배부른 돼지 보다는 작지만 조금 부족하더라도 진정한 인간 내면의 존재가치 부여와

정신적인 순결과 성찰을 병행하며 자신을 뒤돌아 보는 삶을 살아가는 너 그리고 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형과 동생 언니와 동생 삼촌과 조카

그리고 우리란 공동체 의식이 필요한 새파란 시대정신과 윤리의식과 직업의식과

사회의식과 가정윤리와 도덕관과 개 개인의 윤리의식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싶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는 것이 결코 아닌 더불어 함께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이지와 지성과 윤리관과 도덕윤리가 필요한 것이 크리스마스란 본연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과연 우리는 등 뒤의 사랑 그 배고파하는 영혼들을 생각하여보았던가?

내 자식만 내 부모 내 가족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에 가치관의 초침이

멈추어 있지는 않은가?

 

 

 

                                     등 뒤의 사랑

                                                         오인태

 

                                                                

 

                                     앞만 보며 걸어왔다.

                                     걷다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고개를 돌리자

                                     저만치 걸어가는 사람의 하얀 등이

                                     보였다. , 그는 내 등 뒤에서

                                     얼마나 많은 날을 흐느껴

                                     울었던 것일까. 그 수척한 등줄기에

                                     상수리나무였는지 혹은 자작나무였는지,

                                     잎들의 그림자가 눈물 자국처럼 얼룩졌다.

                                     내가 이렇게 터무니없는 사랑을 좇아

                                     끝도 보이지 않는 숲길을 앞만 보며

                                     걸어올 때, 이따금 머리 위를 서늘하게

                                     덮으며 내가 좇던 사랑의 환영으로

                                     어른거렸던 그 어두운 그림자는

                                     그의 슬픔의 그늘이었을까. 때때로

                                     발목을 적시며 걸음을 무겁게 하던

                                     그것은 그의 눈물이었을까.

                                     그럴 때마다 모든 숲이

                                     파르르 떨며 흐느끼던 그것은

                                     무너지는 오열이었을까.

                                     미안하다. 내 등 뒤의 사랑

                                     끝내 내가 좇던 사랑은

                                     보이지 않고 이렇게 문득

                                     오던 길을 되돌아보게 되지만

                                     나는 달려가 차마 그대의

                                     등을 돌려 세울 수가 없었다.

 

 

사랑방 회원 모두 여러분들의 평안과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먹고 마시는데 밤을 지새우는 성탄 이브와 크리스마스가 되기보다는

우리들의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과 역경과 시련과 좌절과 참혹한

절망의 고독과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가난한 영혼들을 위한

사유와 성찰이 있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곧 나란 존재 가치 앞에서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이며

곧 자신을 사랑하는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마크 샤갈의 그림을 보십시요...

 

 

Marc Chagall - Dreamer, 1945 

 

 

두 연인과 생선과 과일바구니 곧 우리 영혼의 양식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메세지가 담겨있지 않나요.............

 

주어진 현재에 우리는 감사할 조건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둘러보면 하나 하나 우리 모두가 감사할 조건들 입니다.

우리의 현존하는 존재와 건강함도........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따듯한 가슴과 영혼의 울림조차도 모두가

감사할 조건들 입니다.....

 

성탄절 그리고 세모 그리고 새해 모두 축복된 시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기원하며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행복하세요...............언제나……

 

 

 

 

광주 외곽 아름다운 영혼의 숙소에 소장된 이해인 수녀님이 필립핀에서 갖고 오신 대나무 고해상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고린도 전서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