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독백 -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으면서

붓꽃 에스프리 2009. 7. 31. 08:39

 

 

 

2주간의 휴식을 직장동료들은 휴가라고 부르는가 하면 나는 휴무라고

우긴다. 보통 매년 가는 휴가를 최소한 4주간은 가는 것이 전례였기에

그렇다. 뜻하지 않게 주변환경에 갑작스런 변화가 지난 여름 독립기념일부터

발생하여 어디를 마음 놓고 발걸음을 옮길 여백이 없어 자숙하고 일상에

적응하고 조용히 지낸다. 늘 그렇듯이 직장생활과 더불어 남은 시간은

스튜디오에서 작업과 독서와 클래식과 벗하며 문학과 예술을 껴안고

묵묵히 주어진 일상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살아간다.

 

가끔 진정 그리운 이들과 한 두통 전화로 소식을 주고 받고 그리움을

나누면서 이렇듯 시간이 나면 생각을 정리하여 문자화하고 더 짙은

그리움이 밀려오면 진정 그리운 이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면

수화기를 드는 순간 내리라 하고 상대는 전화를 다시 이쪽으로 한다.

그동안 쌓인 이지와 지성에 배고픔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다.

 

어찌 인간이 빵만 먹고 돈 버는 일에만 온 신경을 다 쏟고 살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 설령 그것이 냉혹한 일상의 현실일지라도 인간에게 있어서

어떤 형태로든 아름다움이 없다면 살았다고 산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지낼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이란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현상과 물질이나 어떤 특정한 대상만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정 그리고 우정도 모두가 무형의 아름다움이다.

 

어둠은 때론 죽음을 상징한다면 또한 밤을 상징하기도 한다.

밤은 그 어둠만큼이나 무겁고 그 깊이에 있어서 깊다.

밤이 있기에 불빛과 별빛이나 달빛은 더욱 더 찬연하게 빛나는 것이다.

어둠이 없다면 불빛과 별빛도 달빛도 빛을 발할 수가 없듯이

음이 있으면 양이 상대적으로 존재하여야만이 그 균형이 맞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깊은 밤은 모든 동식물이 휴식을 취하고 안식을 하는 시간이고

모든 활동은 일상적으로 대부분 정지되어 있는 상태이며

교통체증도 줄어들어 차량소통도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사람들과

새들도 모두가 잠이 들어 있는 시간이다. 정적 속에 고요하다.

이 시간만큼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깊이 감지 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자신을 뒤돌아 보고 깊이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밤에 쓴 글과 낮에 쓴 글은 그 느낌에 있어서 뉘앙스에

큰 차이가 있는 지도 모른다.

 

토스티의 로망스 곡 理想(이상)을 조앤 서더랜드의 소프라노로

듣고 있노라면 영혼 깊은 곳에 평안과 평화란 글자가 크게 새겨진다.

밤이슬을 먹음은 한 송이 흰 백합 꽃 같은 향기롭고 청아함이

더욱이 새벽녘 창 밖에서 지저귀는 이름도 모르는 여명을 준비하는

새의 울음과도 같아 귀가 즐겁고 마음과 정신도 즐겁고 기쁨으로

잔잔히 채워지고 행복을 선사한다.

 

아름다움은 누구나 다 영혼 깊은 곳에 소유하고 있으며 느낄 줄 안다.

다만 끝없는 가꾸는 마음과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아름다움은 끝없는

행복의 샘물이다. 그러나 그 조차도 가꾸지 않는 다면 무용지물이다.

휴무하는 동안 손에 드는 책장은 법정 스님의 저서와 빈센트 밴 고흐의

서간문이다. 시간이 늘 부족해 만나지 못했던 지성들을 만나는 나만의

오붓한 시간의 여백이다.

 

남들 다 치는 골프, 남들 다 갖고 있는 모바일 전화 일명 핸드폰,

남들 다 보는 텔레비전은 일상에서 제외 된지 아주 오래된 이야기 이다.

문명의 이기가 주는 편리함과 안전함도 많다면 더불어 일상의 즐거움도

많다면 일종의 구속 아닌 구속이란 생각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가끔 뉴스를 시청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바보상자의 노예로 전락하는

시간이면 마음의 양식이 되는 양서 한 페이지라도 더 읽고 싶다.

인생은 유한하며 주어진 시간은 영원한 것이 아닌 제한된 영역에 있다.

 

이 모든 문명의 이기가 없던 시절에 정신적인 풍요와 행복과 충만은

더 많았다는 것은 현대인에게 주지의 사실이다. 아이고 어른이고

모두가 목걸이 처럼 차고 다니거나 손에 들고 다니는 핸드폰 이것이  

편리함 이라면 한 편 여백이 아닌 서로간에 구속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보 당신 지금 어디 있어? , 너 지금 어디 있니 뭐하니?” 시시콜콜

삶의 여백이 없는 모습이다. 정 위급한 생과 사의 문제가 아니라면

일반전화로 집과 직장으로 연락을 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인 David Souter 그 역시 연방대법원에서 유일하게

손전화 핸드폰을 갖고 있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않는 지성이다.

조용히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고 싶어 스스로 내려오는

사람 얼마나 남들은 정상에 올라가고도 더 오르고 싶어 안달을 떠는 데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이런 지성들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이웃과 더불어 이해와 공존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진정한 의미의 배려와 정과 사랑으로 살아갈 때만이 가꾸어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정이 넘치는 일상으로 가꾸어 나갈

때만이 삶은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벌써 7월도 마지막이다.

유수 같은 세월의 모습에 인생도 덧없이 흐름은 자연의 법칙일까

흐르는 토스티의 로망스 "이상"처럼 행복하신 여러분들의 8월을

기원합니다...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여러분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