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바람을 동반한 겨울비가 추적이며 메마른 도시의
보도 위에 내리고 있다. 바람은 차지만 공기가 상큼하다. 스모그가
가득히 자리하고 있는 기포 위에 겨울 비는 내리어 세상의 온갖
더러운 욕망과 욕정 위에 차가움으로 매를 들어 둘러 메친다.
겨울 비로 말끔히 세척된 맑고 깨끗한 바깥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 때의 느낌은 상큼하며 문득 어둔 밤 하늘가에 인생이란
플랭카드를 매달아 놓는다. 세찬 겨울바람에 펄럭인다. 인생도
그렇듯이 펄럭일까?
하루의 일과를 맞추고 돌아와 말끔히 샤워를 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가난한 영혼과 마주하고 앉아 리스트의 리골레토 편곡을 따듯하며
맑고 청아한 Jorge Bolet의 연주로 들어본다. 추적이는 빗소리와
더불어 그의 연주는 그윽하기 그지없고 겨울 비와 함께 하는
피아노 연주는 더없이 아름답고 차분하여서 좋다. 역으로 순간
낯선 이름의 연주자를 만난다. 다름아닌 호주를 대표하는 지난해
안타깝게도 아직도 한참 살아야 할 나이 오십 중반에 생을 마감한
인도 태생의 Geoffrey Tozer의 연주는 예리하다 못해 너무나도
완벽해 가슴이 시려온다.
호주에 독보적인 피아니스트 Geoffrey Tozer가 있었다면 캐나다에는
Glenn Gould 가 있고 미국에는 Van Cliburn이 있었고 프랑스에는
천재성을 인정받고도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난 바이올리니스트
Ginette Neveu가 있었다. 모두가 한 시대를 풍미한 뛰어난 음악가들로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지극히 사랑을 받던 인물들이다. 예술은 철저한
자신과의 싸우는 고독한 수도자와 같은 여정임에 틀림없다. 그 고독의
산물을 즐기고 칭송하는 것이 인간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다.
물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보편적인 평범 가운데 문학과 예술이
창작되어 대중 앞에 자리매김을 한다면 희소가치가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감각과 재능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일주일 내내 내린 겨울비 토요일 오후 이제서야 창밖은 눈부신
햇살로 청명하고 맑고 높은 하늘을 보여준다. 한잔의 향기 나는
귀한 커피를 리스트가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사중창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딸이여>를 편곡한 것을
Jorge Bolet의 연주로 듣는 것은 살아있는 존재 앞에 큰 기쁨이요
영혼의 충만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이요 안식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람마다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은 다르니 누군가는 휠드로 나가
골프를 친구들과 어울려 침으로 현대생활의 스트레스와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행복을 느낄 수 있겠고 누군가는 어느 곳인가에서
봉사생활을 하고 누군가는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하여서 땀을 흘릴
것이고 누군가는 좋은 명품 차에 명품으로 걸치고 치장함으로
행복을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고급식당에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식사를 함으로서 행복을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산을 오르고
누군가는 낚시를 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하고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나가고 누군가는 글을 쓰고 캔버스 앞에서 붓질을
하며 창작을 함으로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이렇듯이 각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준과 시각과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행복이란 상당히 주관적인 시각이 더 큰 것임에
틀림이 없다. 작은 것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의 갖고 싶은 부귀영화와 모든 명성과 권력을 손에
쥐고도 진정한 행복을 내면에 충만하게 느끼지 못하여 갈망하는
영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세상사요 이치이다.
그저께 비가 추적이는 날 정신과 전문의 이신 C 선생님을 만났다.
젊은 날 세계를 동서로 다 다닐 만큼 다니신 그분 스키와 정구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 난데없이 영혼의 허함을 느끼시는지 음악대학에
유학을 온 젊은 학생들을 그룹으로 초청하여서 자리를 마련하였다고
하시면서 근무처에 오셔서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 데 가자고 하신다.
“할아버지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젊은 사람들이 좋아 할까요…
뭔 소리를 하노…. 아니 그네들은 한창 나이인데 선생님은 육십을
넘기셨는데 요즘 젊은 이들 하고 대화가 통하겠느냐고요….
“나 요즘 트럼펫 레슨 받는다…그 약한 몸으로 그 악기를 다루실 수
있으시겠어요…젊은 선생님이 괜찮다 하드라… 저 근무 중이라
못 갑니다..그래….언제 우리 한번 만나서 소주나 마시면서 이야기
좀 나누자…… 대체 뭐 통하는 사람이 있어야 대화를 하제…
만나는 사람은 그렇게 많으신데 왜 그러세요…야….만난다고 뭐
다 마음이 오가노……뭐 마음이 통하여서 비가 오거나 바람 부는 날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고 그리움에 못내 문득 전화를 걸어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 정도를 만난다는 것이
뭐 어데 그리 쉽노………더욱이 요즘 같은 세태와 세상에….
그래 나 간다…비 오는 데 운전조심 하셔서 학생들 데리고 가서
좋은 시간 갖도록 하시구요…이메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가고 출근시간에 먼 곳으로 문득 그리움에
전화를 하였다. 문득 그리우면 자깅을 하다가도 운전을 하고
가면서 음악을 듣다가도 바람 부는 날 비 오는 날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한다는 사람에게 그동안 쉴 틈도 없이 바쁜 일상에서
안부를 전할 겸 전화를 하였다. 왜 전화가 안 되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가니 패기만만하고 열정 가득하던 젊은 날과는 달리
내면에 허함과 허기를 세월의 성상이 높아질수록 깊이 느끼는가
보다. 그래 누군가 절실한 그리움과 절실한 감성과 일상의
내면을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가
보다.
더 쉽게 풀이하면 내면적으로 허하고 외로워지는 것이다.
퇴근길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래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들은 것을 기억한다. 나이가 들면 홀로됨과 외로움을 받아드리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하신 그 말씀의 깊이를 자식들도 다 가정을
이루고 떠나고 배우자 가운데 한 사람은 먼저 떠나고 하는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라는 간단한 말씀이었지만 시사하는
바는 깊고 명료하다. 현대인들은 보다 문명화되고 핵가족화
되고 산업화되면서 근본적으로 바뀌어가는 주거형태나 삶의
유형의 급격한 변화 앞에서 그 어느 때 보다 고독하고 외롭다.
그래 누군가 자신을 토해내고 진지하고 따듯한 가슴과 배려와
더불어 정감 어리고 사랑으로 들어줄 수 있는 좋은 인생의
지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대 이름은 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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