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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 독백

붓꽃 독백 - 백학의 그리움과 눈물은 강물처럼 흐르고

붓꽃 에스프리 2011. 4. 8. 14:08

 

 

백학을 부른 러시아의 전설적인 국민가수

Losif Joseph Davydovich Kobzen의 최근 모습

 

유대계 러시아의 국민가수이자 현재 러시아 국회의 의원인

모래시계의 배경음악 "백학"을 부른 러시아 국민의 영웅인

Losif Joseph Davydovich Kobzen의 젊은 날의 모습

 

 

 

러시아 문학과 예술의 그 장대함

그리고 우아함의 극치를 어떻게 필설로 다 설명이 가능할까?

 

모래시계가 어떤 영화인지 알수는 없지만 그 유명한 한국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너무나도 잘알려진 러시아의 유명한 노래 백학을 부른 Losif Joseph Davydovich Kobzen은

1937년 구 소련연방이었던 현재의 우크라이나 Chasiv Yar 인구 2만명도 안되는 아주 작은

광산촌에서 유대인 부모에게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노래에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던

그는 수많은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서 수상을 하고 스탈린을 위한 음악회에서도 노래를 부르곤

하였지만 그는 그당시 구소련연방에서 가장  인기를 얻었던 분야인 광산지질학을 공대에

진학하여서 하게 되었다.

 

2차 대전후 그는 군대에서 드디어 1956년 음악의 스승을 찾아 나서게 되고 정식으로

모스크바에서 1958년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Gnessin 음대에 들어가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게 되고 작곡가 Arkady Ostrovski에게서 곡을 받고 데뷰한다. 그리고

여성 작곡가 Aleksandra Pakhmutova 곡으로 1962년 첫 LP판을 취입하였다.

그후 그는 폴란드 국제 음악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출세가도를 달리고 부를  쌓게

되고 현재까지 세번의 결혼을 하였다.

 

그는 러시아의 국민가수로 그가 쌓은 부와 명성에 걸맞게 그는 수없는 러시아의 고아원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서 수많은 기부를 하고 사회에 혁혁한 사회적 공적을 쌓고 현재는

러시아 국회의 의원직을 갖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그는 지구촌 구석 구석을 방문하고 수많은 공연을 하였다

옐친 시절에는 정적들의 음모로 우리 미국에 입국비자를 거절 당하기도 하였었고

우리 미국의 가수 후랭크 시내트러가 마피아의 두목과 알고 지낸 것처럼 같은 맥락의  

러시아 마피아 관련설에 휘말리기도 하였었다. 그는 러시아 마피아 간부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부인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재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이다.

그의 행적이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도 많다.

한국 가수나 국회의원들 가운데 이런 인물이 있을까 싶다.

 

현재도 살아 있는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이자 가수인 백학을 부른

  Losif Joseph Davydovich Kobzen의 러시아 Donetsk에 세워진 동상

 

 

여하튼 그가 누가 되었든 이곡은 러시아인들에게도 너무나도 유명한 곡으로 이곡을

듣는 청중들의 눈가에 맺히는 눈물이 대변하는 것은 한국인에게 <그리운 금강산>이나

<보리밭> 정도의 국민의 정서를 담고 있는 곡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심수봉이 불러 한국인들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또 다른 러시아 노래로 알려진

<백만송이 장미>는 본래는 러시아인이 작곡한 것이 아닌 구소련연방에 강제로

병합된 동구의 작은 나라 라트비아인이 작곡한 곡으로 비련의 이야기 이다.

 

이곡들을 난데없이 하나 가득 러시아어를 비롯하여서 일어 한국어로 올리게 된

연유는 뫼닮 선생님이 일주일간의 힘든 시간을 보내신 후에 건강을 회복하셔서

북한산을 오르시고 바위를 칠순에도 타시고 돌아오신 포토에세이 배경음악으로

올리셨었다. 그 포토에세이를 대하면서 배경음악으로 넣으신 <백학>을 들으면서

복받치는 왠지 모르는 서글픔에 눈물이 와락 쏟아졌었다.

 

아마도 선생님의 여위신 모습과 인생이란 것을 생각하며 만감이 교차하여서

그런 것 같다. 이제 회복을 하시고 건강을 되찾아 가시고 계시다. 문득 원인 모르는

그리움이 모든 것을 향하여서 다가오는 이저녁 그리고 밤이다. 문득 백학을 찾고

싶었다. 모두 모아서 여기에 내려놓는다. 자그마치 6시간이나 걸리는 긴 작업이었다.

 

이 모든 곡들을 주의 깊게 감상하는 누군가가 그저 내 인생에 스쳐가는 하나의

바람 같아도 무관하고 상관이 없다. 다만 인생에는 진정성 있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깊고 심오한 강줄기 같은 하나의 그리움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며

서로에 대한 가슴 뜨겁고 시린 삶과 존재의 상징이며 아름다움 미학이다.

 

누가 내 인생의 진정성 있는 그리움이 되었든 아니든 무관하고 상관없다.

영혼과 영혼 사이에  진정성과 농도가 깊을 때만이 서로의 영적 교감으로 가능한

일이다.....언젠가 우리 모두 이슬처럼 한 세상을 살다가 이 긴 여정을 맞추고

떠나겠지만 그동안이라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에틋하게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축복이 있다면 그 또한 인생의 대단한 일이다....

 

꼭 부귀영화만이 인생의 대단한 일이란 생각은 세속적인 허망한 가치관의

부질없는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에서 한 모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을 할 수 있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서슴없이 말을

할 수 있는 삶의 향기와 에스프리....고귀하다.

 

배움에는 끝도 없고 나이의 제한도 없다.

그것이 돈이 나오는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우리의 영육을 위한 이지와

지성의 자양분이 되는 고귀한 인간의 정신 앞에 고개를 숙인다.

 

백학이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곡이라면

백만송이 장미는 비련의 슬픈 연가이다....

뭔가 내용을 알고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러시아인의 정서가 아마도 한국인의 정서와 통하는 것이 많은 가 보다.

그 동토의 땅 우리민족의 슬픈 역사가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는 연해주부터

중앙아시아 까지.............백학도 백만송이 장미도 우리의 고려인 선조들

영혼 앞에 눈물로서 영혼 깊이 마음 깊이 바치고 싶다.....러시아인들 만이 아닌.....

 

 

 

 

 

 

 

 

 

This is a beautiful and moving song from the Soviet era in honour of fallen veterans.

It is elegiac, and it is one of the most beautiful songs I have ever heard.

Dmitri Khvorostovsky sings it with the Moscow Chamber Orchestra and

The Style of Five accompany him.

 

Thinking of those who fell back than and those who still fall nowadays

in the blood-soaked battlefields, see their faces and think of the void caused

by their loss makes me come close to tears. I have no doubts this is the most

beautiful war song I've ever heard! And I've heard to many great war songs.

But this one brings lirically the sadness of the loss like only a few do.

 

위에 두 영문 문장의 내용은 위에 클립에 달린 것이다.

백학은 러시아 전몰장병들을 위한 엘레지적인 곡이다.

왜 청중들이 이곡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지 이제서야 그 의미를 알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들 가운데 누군가 전쟁에 나가서 죽었거나 가슴 아픈 슬픔이 가슴

깊이 있는 사연들 일 것이다. 아니면 또한 노래의 서정에 같이 울고 마는 그런

막연한 그리음과 애절한 마음들...................

 

뫼닮 선생님께서 이번 산행 후 올리신 포토에세이와 배경음악으로 올리신 백학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되어서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 동기부여를 하는 감성의 파고를 일으켜 주신 뫼닮 선생님을 깊이 생각하는

이 순간이다.  이 지상에 전쟁과 피흘림과 살육이 없는 평화만이 공존하는 축복이

있기만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북한의 여가수가 러시아어로 부른 <백만송이 장미>를 놓고 참 많이 망설였다. 

물론 미국 국적자요 국민이요 시민으로 살아가는 이방인 임에도 불구하고

뿌리가 한국이란 사실 앞에서 이데올로기와 외삼촌이 전사하신 한국동란을

떠올리며 참 많이 망설였다.

 

허나 단순히 예술이란 것과 아름다운 국제적인 노래란 사실만 놓고 어느 일본인이

유튜브에 올린 것을 싣는 데 결론을 내렸다. 행여 가슴에 가로치는 분이 계시다면

양해와 이해와 용서를 구하며 이데올로기와 무관함을 거듭 언급하고 싶다.

 

왠지 모르게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서글프다.

아니 더 솔직하게 목울대가 뜨거워지고 울컥 눈물이 난다.

우리 한민족에게도 분단조국이 아닌 통일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Losif Kobzon의 백학/Cranes 70세 기념 크렘린 궁 기념공연, 2007 년

 

 

      

     

        백학을 시로 쓴 시인 가마즈토브의 젊은 날      

 


      

        

       

      

        백학을 쓴 시인 가마즈토브를 보면 어린시절

        한국영화배우 <마부>에 주연 김승호란 분이

        생각난다.

 

 

      

 

 

이 노래는 중앙아시아 Dagestan 의 민족시인 감자토프 (Rasul Gamzatovitch Gamaztov, 1923∼2003) 의 詩에서 유래되었다. 현재 다게스탄 공화국은 러시아

연방에 속한 나라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체첸 공화국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주로 Caucasus 산악지대에 위치 하고있다. 이 지방 출신인 감자토프는 1940년

2차 세계대전(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했고, 지옥같은 전장서 겨우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거기서 죽어간 전우들을 생각하며 시를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백학이다.

 

감자토프가 히로시마를 방문했을때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학을 받쳐 들고

있는 원폭 피해자 사까끼 사다꼬의 동상을 보고 영감을 얻어 다게스탄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하나인 Avar語 (Alarodian Northeast-Caucasian係 語 or

Nakh-Dagestan係 語)로 쓴 시를 모스크바에서 발간되는 'Novy Mir' 라는 월간

문학 잡지에 발표하였다.

이 시에 주목한 유태인 혈통의 배우겸 가수인 Mark Naumovich Bernes가 노래말로

개사하고, 1969년 우크라이나 출신의 Yan Abramovich Frenkel 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지금의 백학이 탄생하였다. 베르네스는 세계 2차대전의 전쟁과 관련된 가슴사무치는

노래들을(Tyomnaya noch,1943)불렀고 1965년 구소련의 '인민 공연예술가' People's

Artist of the USSR(Народный артист СССР)로 지명된 연예인이었다.

 


1969년 베르네스가 처음 부른 이 곡은 순식간에 소련 가요계를 휩쓸며 대단한 인기를
얻었고, 전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러시아어 노래의 하나가 되었다.

감자토프는 '레닌'상을 수상했으며 '다게스탄의 인민시인' 칭호를 얻었다. 유명인사가

된 그는 다게스탄 작가연합의 의장으로 활동했으며,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등지를

여행하였다. 그는 모국어인 Avar 語로 시를 썻으나 이 언어의 사용자는 통털어 50-60만 정도에 불과하다. 주로 사용되는곳은 다게스탄 공화국의 동부및 남부지역으로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터어키의 일부 지역 그리고 소수에서 체첸지역 등지에서

용될 뿐이다.

이후 백학은 전사한 병사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되어 구 소련의 2차대전 기념관들에는

날아가는 학의 그림을 새겼고 또 몇 군데에는 노랫말 귀절을 같이 새겨 놓은 곳도 있게

되었다.

 

자료출처 - 디카기행 http://blog.joinsmsn.com/sungjooc

 

 

 

 

 

 

This in an invincible song….. I first loved it when I was in love with beautiful Elena..…

When I was in my 20s…..when it was 1980s……when I was walking with her on

Moscow boulevards in late summer twilights……when an ice-cream was 20 kopek

……and when we both had no more than 20 rubles in our pockets. And

 I….I ….I still love the song, love it very much….and… do you still love it L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