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저녁시간 진지하게 현재 한국 청소년들이 갖고 살아가는 사회문제 작지도 않고
아주 크고 심각한 학교내에서의 왕따 문제가 갖고 오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무너진
교권과 무너진 가정에서의 상실된 부모의 권위에 대하여 가족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는 이랬다.
자식을 기르면서 사랑의 매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학대 수준이 아닌 하나의 채찍으로서 그리고 경각심의 수준에서 가르침을
위하여서 왜 잘못인가를 이야기 해주고 그래서 매를 맞아야 함에 대하여서 말이다.
우리가 자라면서 아버지 어머니 대신 형들과 언니들에게 잘못하면 혼도 나고 가벼운
매도 맞아 가면서 자라던 시절을 이야기 하였다.
또한 우리들이 지금 20대 중반을 넘긴 조카 아들 아이들을 손수 기르면서 잘못하면
따끔하게 야단도 치고 잘못에 대하여 설명해가며 사랑의 매를 들어 가면서 준엄한
아동보호법이 있는 이땅에서도 기르던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어느 수준의
가벼운 체벌은 필요하다는 것을 논하였다.
지금 자라서 성인이 다 된 아이들도 자기들이 우리에게서 배우고 가르친대로 제 사촌
조카들을 돌보며 양육에 엄격하게 참여한다. 그래서 옛부터 결혼에서 혈통과 가문과
가풍을 따지는 것이란 생각이다. 이제 살만큼 산 나이가 되니 그 모든 것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사람은 유유상종이다.
학교도 사회도 온라인에서도 비슷한 사람들 끼리 모여서 어우러져 살아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계층이란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간사회에
엄히 존재하는 것이다.
영어에 Monkey see Monkey do란 말이 있다.
원숭이가 본대로 행한다는 말이지만 전달하는 의미는 보고 배운대로 행한다는 말이다.
어린아이들이 집안에서 부모들이 하는 언행과 처신을 보고 배운대로 가르친대로 그대로
한다는 말이 된다. 그만큼 가정교육과 가풍은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조카 아들 둘을 그 아이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어 양육하게 되었던 흘러간
세월이 있다. 지금은 대학을 다 졸업한 20대 청춘으로 사회인들이지만 그래도 늘
그 아이들과 내가 진지한 인생문제를 놓고 상반된 의견이 돌출 될 때면 늘 내가 하는
말이 있다. 너희들은 마이 보이 이기에 그러면 안 된다라고 내가 너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으니 하면 안 된다 이다. 마이 보이는 보통 아버지가 아들을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면 호칭하는 하나의 표현이다. 마이 보이란 어휘가 갖는 의미는 깊다.
그 말 한마디면 아이들은 돌출된 반대의 의견이나 이견에서도 한번은 깊이 생각하게
되고 찔끔한다. 마이 보이란 표현이 갖는 힘은 그만큼 크다. 물론 가정 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삶의 영역에서는 준엄한 위치다. 내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으니
사회에서도 윤리와 도덕에 어긋나는 처신이나 행동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불의에 대하여 당당히 맞서고 똑부러지게 할말 조리 있게 감정을 앞 세우지 말고
이성적으로 하나는 이렇고 둘은 이렇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권리주장을 하는 것이나
직장생활에서 보기 싫어도 참는 법이라든가 이런 것에 대한 것이나 매너와 에티켓에
대하여 늘 생활 가운데서 가르치고 또 가르쳐 왔다.
한번은 작은 아이가 중학교 때 그 당시 흑인빈민가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한
반사회적인 음악 쟝르 힙합과 랩 음악을 듣고 싶다는 이야기를 어느날 하였다.
그래 들어도 되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무조건 안 된다 다가 아닌 왜 그 음악을
들으면 안 되는지를 설명하여 주고 단호히 너는 그런 음악을 들으면 안된다고
노우를 하였다. 물론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늘 지켜보았다. 아이들 표정만
보아도 문제가 있씀을 알 수가 있다.
그런 음악은 가사가 모두 폭력과 섹스와 마약과 연관되어서 안되고 다음으로
너는 인종적으로 흑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음악을 생활화 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을 단호히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허락한 음악은 클래식과 재즈, 올디, 뉴에이지
음악이나 건전한 내용들로 구성된 R & B과의 곡들 이었다. 주로 우리는 아이들을
학교 교향악단과 지역의 청소년 교향악단에 참여 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늘
아이들을 지켜보고 학교생활에 대하여 식탁에서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름이면 야외음악당에 데리고 다니면서 어려서 부터 클래식 음악을 생활화
시켜 주었다. 아이들은 그대로 자라서 그대로 보고 가르친대로 대학에 가서도
자기들 보다 못한 환경에서 성장한 친구들을 클래식 음악회등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들이 경험못한 분야에 경험을 하게 기회를 배려하면서 살게 되었다. 가정교육은
이렇게 중요한 영향을 인격형성에 미친다는 사실을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빈센트 밴 고흐 작품 전시회를 가족들 모두 같이 가서 하루를 보낸 일등 모두가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할 나이가 되어서 그런 교육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한 인간의 인격을 형성하는 가 하는 것은 더 말을 할 나위가 없다. 그렇게
배운 아이가 결혼을 하여서 딸을 낳고 아들을 낳아서는 자기가 배운대로 3세인
자식들을 또 양육하고 있다. 그래서 가정교육은 모든 교육의 기본이 되며 인격
형성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다.
가난해도 정직하고 품위를 지켜야 한다면 부자라도 겸손하고 근면검소하며 남을
배려할줄 알고 좋은 매너와 에티켓으로 상식선을 지켜 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대우를 어느 곳에서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르쳐야 마땅하다.
누군가 자기들을 저녁초대를 한 자리에 뜬금없이 초대되지않은 다른 가족들이나
친구를 데리고 가서 상대에게 부당한 저녁값을 지불하게 한다 거나 하는 무례한
처세 같은 것을 하면 안 된다는 것 초대받지 않은 장소에 불쑥 나타난다든지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 가르치지 않으면 어서 배우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잘못을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 어른들 죄가 죄인줄 모르는
아이들을 양산하는 것이다.
부모와 교권의 위엄이 무너진 가정과 사회가 잘 될이 없고 국가 기강이 설 수가 없다.
내 자식이 귀하면 오냐 오냐 하며 기르고 소리 한번 따끔하게 지르지 않고 기르는
아이들 부모나 교사를 알기를 우습게 알고 그야말로 속된 표현으로 개코처럼 생각한다.
뉘집 개가 풀 뜯어 먹는 가 하는 식으로 아이들이 뻔뻔하다. 물론 허구헌날 앞뒤도
없이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교육은 절대로 있어서는 아니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가 나면 옳지 않은 일에 이렇게 화를 낼 수도 있다라는 수준의 고성은
필요 하다면 필요하다.
풀어 놓아 기르는 아이들 따끔하게 한번 야단도 치지 않고 기르는 아이들이 30대가 되고
40대가 된 작금의 시대 앞에 아이들의 비극을 누굴 탓하랴 모두가 자업자득 이라면 무모한
언론매체들의 넘쳐나는 선정적인 섹스 이야기들이나 프로그램들과 각종 부 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상행위와 방송과 기사들과 각종 첨단 제품들의 비인간화가 촉매작용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가장도 학교도 사회도 병들어 가고 있고 국가의 기강은
무너지고 법집행을 하는 인간들이란 불의와 타협해 각종 비리 사건과 정치모리배들과
연관되어 정치 검사와 판사들로 넘쳐나고 형량은 솜방망이가 되어 시민들을 절망시킨다.
젠츠 여검사 사건만 보아도 그렇다.
그러니 막 되어먹은 아이들 젊은 청춘들 어른들이 넘쳐나는 무례하고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움 조차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회가 형성되고 그리고 오늘날 같은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와 학내 문제들이나 꽃 같은 어린 청소년들을 자살로 내모는 것이다.
한숨 자고 자고 일어나서 이 한밤의 독백이 참 제목을 이렇게 <사랑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라고 해놓고 이야기의 주제가 생각과는 달리 삼천포로 쭈욱 빠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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