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퇴근하자 마자 문득 아주 오래전에 샀던 20세기의 대지성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위에 자서전을 한 페이지라도 읽고 싶었다. 오래 되어 표지 색이 다 누렇다.
사르트르 하면 치열한 좌파적인 사상과 가치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의 영원한
인생의 동지 시몬 드 보봐르를 빼놓을 수 없다. 죽어서 이 두 사람은 같이 파리의 그 유명한
몽파르나스에 있는 공동묘지에 합장되어 있다.
사르트르가 20세기 최대의 요한 세바트스티안 바흐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 이자 대가요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지성 가운데 한 사람인 독일과 프랑스의
철학자요 신학자이며 작가요 또한 의사인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 큰아버지의 딸의 아들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생의 외경> 그의 명저를
기저로 하여서 195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면 그의 조카 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사람으로서 유명하다. 작가란 어떤 기관에도 소속 되어서는 아니되고
자유로워야 한다라고 믿었던 사람이다.
사르트르는 마르크스주의자 였다.
뭐 그렇다고 한국사회 좌파라고 자칭하는 자들 같은 인간쓰레기들이 숭앙하는 북한 김일성
그 일속들과 같은 그런 유형의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살아 생전 사라트르는 영원한 지성의
동반자 시몬 드 보봐르와 함께 쿠바에서 그 유명한 체 게바라와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도
있는 지성이다. 체 게바라 또한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의과대학을 다니던 나름대로 대단한
아이큐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가끔은 이런 전혀 이단적인 지성들을 만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꼭 어떤 틀에 박힌 사람들 보다 더 인간적이란 생각이다.
퇴근하고 예전 글방을 기웃거려 보았다.
한시절 문학에 열병을 앓던 시절이 있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사이버 상으로 사이버 문단에서 밤을 새워 가며 시를 쓰던 때 만났던
문우들은 다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하면서 블로그 글을 애독하는 한분의 특별한
부탁으로 목로주점 아우님의 옛글을 찾아 나섰다. 그 글방은 나에게는 두번째 글방이었다.
한국사람이 모이면 꼭 있는 이간질과 질투와 시기와 모함 그리고 몇번의 필화사건으로
나는 영원히 그 글방과 결별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글방 그곳도 다를 것이 별반 없었다.
이번에는 해외 구라파부터 북미에 사는 한국인들의 이간질과 질투와 시기로 뿔뿔이
흐트러지고 글방 자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손을 놓고 말았다.
목로주점 아우도 글을 그 글방에 올리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고 나 또한 손을 놓은지
오래 되었고 내 모든 열정이 담겼던 수없는 글들을 밤을 새우고 새워 모두 미련없이
삭제하고 떠나왔다. 그리고 이번은 나만의 은둔을 하여야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블로그였다. 블로그를 열게된 동기는 단순하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내 어른과 소통할 방법을 강구한 것이 블로그였다. 서로의 그리움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장 즉 공간으로서의 순기능에 중점을 두고 시작하였다. 어언 7년이란
세월이 햇수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 블로그는 나의 독백공간이다.
누구처럼 파워 블로그가 되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요
누구처럼 뭔가를 과시하려고 시작한 것도 또한 아니며
누구처럼 인기 블로그가 되려고 시작한 것은 더 더욱이 아니었다.
모두가 내 성정과 성격과 개성과 가치관과 개인철학과는 너무나도 먼것들이다.
사이버란 특성을 갖고
가면을 씌우고 악화를 양화로 만든 다든가
위선과 가식으로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늑대가 된다든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나는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다. 내 인생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먼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순수하고 정직하고 보편타당성을 갖고 있으며 합리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강인하고 부드러운 내재된 힘을 갖고 살아가는 과묵하나 따듯하고 사리분별이
분명하며 애틋하고 자상한 사람들이 아름답다. 아니면 냉철한 이성 위에 뜨거운
가슴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인간적이다. 이런 순수하고 착하게 세상을 올곧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무례하지 아니하며 절대 겸손하며 이지와 지성을 아끼거나
소박하게 들꽃 향기처럼 맑고 고운 심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약사를 하는 어는 50대 여성이 한국에서 우리 미국에 그룹으로 여차 여차하여 여행을
오게 되어 겪는 아줌마 부대 가운데서 초를 처서 다른 여행자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한
상식이하의 난체 하는 것 또는 과시욕에 빠진 여성들의 천태만상에 관한 일고 느낀
바가 많아 글을 퍼다가 볼로그에 극소수의 벗님들과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지만 타인의 글을 함부로 무례하게 퍼나르는 행위는 자제함이 옳아 생각에
머물고 말았다. 남의 글을 퍼다가 자기가 쓴 것처럼 철면피 같고 뻔뻔스럽고
낯짝이 두꺼운 인간쓰레기들도 있는 세상이 아니던가.
그글안에 요점이 있었다면 제발 어디를 가던 누구와 만나던 돌출행동으로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는 무례한 짓이나 상식이하의 작태는 하지말고 살자다. 더는 잘난척좀
하지 말고 제발 알아도 모른척 있어도 없는 척 세계일주를 다 하였어도 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초치지 말고 뭔가 내마음에 안들어도 남을 생각하여서라고 자제할 것 이런
것이었다. 척하는 것도 때로는 정신과적으로 일종의 질병이다. 알고 보면 인생 별것도
아닌데도 그렇게 인간들은 잘난척을 하고 싶어 때론 몸부림을 치고 발광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나 하고 육두문자 몇자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아주 고상한척하고 그럴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필요도 있다.
즉 인간적인 모습 화나면 때론 자신의 감정에 솔직담백하게 욕도 하고 그런 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가식없는 모습의 하나다. 일평생 욕을 해본적도 없고 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시각이나 마음도 충분히 수용가능한 생각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면 속여 가면서 까지 뭔가 참다보면 그런 것이 쌓이고 쌓여 정신적인 병으로
발전도 될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심리학적인 관점과 정신과적으로 간과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욕을 하라는 것도 아니며 욕을 하는 것이 자랑 또한
아니다. 아름다운 언어로 살아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은 논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물정이나 이슈나 인생살이를 놓고서
자기관점에서만 바라보고 모든 세상사람들이 자기 같이 하기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효란 것을 놓고 논리를 펴는 한 방사선과 의사의 글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가상하지만 그 사람의 생각과 논리가 세상모든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때론 환경적으로 다 처지나 수준이 다르기에 적용이 될 수 없는 진실과 사실을
식자인 그는 간과하고 자기가 하는 것만이 세상의 최상의 선으로 속단과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결론은 함부로 나의 인생의 가치관이나 시각이란 잣대로 다른
세상 사람들의 삶과 인생살이를 속단이나 재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얼마나 큰 오류요 착각인가 하는 것이다.
붓꽃이 늘 주장하는 "사랑"만 해도 그렇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어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뉘앙스는 언제나 또는
많은 경우 색안경감이다. 아니 색안경을 쓰고 먼저 결말을 내놓는다. 가장 흔한
비극이 먼저 섹스 즉 성으로 연결시키거나 연관시켜 생각하는 큰 오류와 생각의
한계와 순수성의 상실이다.
그렇기에 세상에 넘치고 범람하는 가장 천박하고 싸구려 어휘가 있다면 단연
<사랑>이라고 말을 하고 싶다. 역으로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고귀하고 신성한 어휘 또한 <사랑>이다. 문제는 가치관과 그 가치관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라면 어휘가 갖고 있는 뉘앙스의 출발점이 무엇이냐가
관건의 하나다.
왜 사랑한다는 말은 틀에 박혀서 옴짝 잘싹도 못하여야 하는 가 하는 것이다.
생각이 순수하고 시각과 이해하는 관정과 가치기준이 지극히 건전하고
지고 지순하다면 남녀노소나 성과 무관하게 사랑이란 언어가 갖고 있는 의미나
뉘앙스나 의미는 지극히 고상하고 아름답고 가슴시린 언어의 에스프리 즉
깊은 내재된 영성과 정신의 정수가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사랑이 없다면 그 어떤 존재적 의미도 없다.
그대로 속된 표현으로 꽝이며 무저갱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 의미 자체가 없는 것이다.
존재적 가치의 상실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한다는 말 조차 왜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살아가며 해야
하는 가 하는 의구심이다. 진정 웃기는 짬뽕이 아닐 수가 없다. 즉 사회학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틀 사회속에 일반적인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관습이나 행태와
이해점의 시각이 문제가 될뿐이다.
구리반지가 금반지가 될 수는 없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순수한 의미에서 좋아한다는 말도 될 수 있다.
순수한 의미에서 아낀다는 말도 될 수 있다.
순수한 의미에서 배려한다는 말도 될 수 있다/
순수한 의미에서 그리워하고 보고싶어 한다는 말도 될 수 있다.
순수한 의미에서 차이점도 인내하며 참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말도 될 수 있다.
사랑이란 언어의 의미는 지극히 순수의 발로라면 지고한 가장 높은 차원에 있는
상대의 영혼을 순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가장 영적인 좋아 하는 마음과 아끼는 마음이다.
이 작은 나의 독백 공간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고 가장 재미없는 곳이다.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는다 .
누구에게 보여주려거나 과시하려고 시작한 공간이 처음도 마지막도 결코 아니다.
다만 작은 소시민이 이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의 독백을 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이 아주 작은 영혼의 오지 은둔지에서 흐르는 독백으로 하여금
살아가노라면 누구나 하고 겪는 일상에 지친 영육과 마음 위에 순수를 발견하고
만날 수 있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그 영혼 앞에 따스한 영혼의 독백이란 이름의
손길을 내려 놓아 작은 위로와 사랑이 되어드리고 싶다.
그리고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일생동안 더불어 살아온 예술의 향기를
작지만 함께 하고 싶다. 사람은 어느 사회계층이던 유유상종이다. 취미가 같거나
성격이 비슷하거나 서로가 좋아하는 뭔가 있는 사람들 끼리 소통하게 되어 있고
살아가게 되어 있다. 이점에는 인간사회에 누구라도 예외란 없다.
붓꽃의 작은 오솔길을 발그림자도 없이
또는 소리도 없이 오고 가시는 극소수의 분들은 한결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떤 고난과 시련과 역경도 뼈를 깍는 절제와 근면과 노력으로 살아 오셨거나
자기발전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는 분들이며 또한 빵만으로는 인간이 살 수 없다란
명제를 앞에 두고 살아가시는 분들이다. 즉 소속된 개 개인의 사회계층이 무엇이
되었든 적어도 사색을 하며 살아가는 분들이며 내면의 충만을 물질주의 폐해속에서
깊이 추구하며 성찰하며 살아가고자 하시는 지극히 소박하고 질박한 영혼들이다.
장문의 비공개 글 또는 이메일로 보잘 것 없는 이 공간의 순기능을 이해와 사랑으로
바라보아 주시고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의 손길을 소중히 간직하고 언제나 처럼
순수하고 단아한 있는 그 모습 그대로의 독백을 담아내기 위하여 묵묵히 함께 오르고
내리면서 우화의 강을 흐를 것을 말씀드립니다.
모든 사랑의 손길 위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순수와 소박한 아름다운 영혼의 에스프리 향기를 사랑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7월 한달은 블로그 활동이 좀 늦춰지리란 생각입니다.
마무리 되지 않은 일상이 있어 느림보 걸음으로 걷겠습니다.
묵묵히 기다림도 아끼는 마음이요 배려임을 가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르트르 영혼 앞에서 극소수의 여라분들을 진심으로 아낌니다.
아시죠....
이 한 단어 어휘 영혼의 양식이요 생명수가 되는 <사랑/Love>
부디 행복하신 한분 한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들어 갈 수록 간단하게 정리하고 살아가기 아시지요.
그럼 행복한 7월 초여름 한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단비가 내려 얼마나 감사한지요.
어둠이 거치다 못해 아침해가 저만치 떳습니다.
사색과 자판기 두들기가 자그마치 4시간이나 넘었습니다.
밤 3시부터 지금 이 순간 아침 8시 까지 진정으로 여러분들을 아끼는 마음
그 하나의 생각만으로 밤을 새워 이 부질없는 독백을 맞춥니다.
이 한 글을 올리려면 적어도 다섯 여섯번의 수정을 하여야 가능하다.
한글 어순이 영어식으로 써져서 다시 읽기를 반복하며 어감이 이상한 곳은
어순을 정리하고 삭제하고를 반복하여야 하기 때문이지요. 영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단점이다.
모두에게 사랑으로........붓꽃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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