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새식구 진퇴양란

붓꽃 에스프리 2012. 12. 4. 03:58

 

 

 

           Pierre-Auguste Renoir - Head of a Dog,1870

 

 

간밤 큰 아이가 나가더니 어디를 갔는지 늦은 시간이 되어도 돌아 오지를 않아 기다리고

있는 데 작은 아이를 부른다. 문을 열고 보니 한살림 하고 왼 강아지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아이구야 이건 또 뭐야 애완동물이라면 질색을 하는 나인지라 기겁을 할 일이었다.

 

어느 목사님께서 한국으로 나가시고 기르던 개를 누군가에세 맡겼는데 홰이스북으로

우리 큰 아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개 이야기가 나와 결국 들고 오게된 사연이었다.

개 오줌 냄새와 털에는 질색을 하는 사람인지라 걱정이 태산인 나였다. 작은 아이가

특히나 난리도 아니었다. 그저 좋아 어쩔줄을 모른다.

 

다행스러운 일은 개가 자기 작은 우리에서 머물러 잠을 자고 사람이 자면 저도 제 작은

방석만한 우리에 들어가 차분하게 잠을 자는 것이다. 간밤 작은 아이가 하는 말이 엉클

우리도 고아인데 이 개도 고아네 하면서 고아들 끼리 같이 살아야지 뭐 하는 것이었다.

큰 아이는 생각보다 잔손이 많이 가니 그것이 싫은 눈치였고 그럼 도로 갖다 주랴 한다.

작은 아이가 반대를 하며 좀더 두고 보면 좋아 하게 될 것이라면서 말린다.

 

하루 밤 자고 아이들 둘 다 출근하고 학교 가고 나니 이 텅빈 큰집에 개와 나뿐 이렇게

서로 의지와 친구가 될 줄은 미쳐 몰랐다. 먼저 주인이 이름도 마음에 안드는 램보라고

불렀다기에 남성 개 이지만 그렇게 램보처럼 생기지도 안았는 데 부드러운 이름으로

하라니까 즉석에서 작은 아이가 두부의 영어 토프를 고쳐 토피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왼 강아지 이름이 두부니 두부처럼 생기지도 않았는 데 하니 부르기 쉬우니 토피라고

하잖다. 잠시 한달간 여행을 떠난 제 여자친구와 스맛폰으로 개를 보여주고 난리굿을

치고 있었고 카메라로 태평양 건너편의 여자 친구 아이도 같이 난리를 치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새 가족 하나가 늘었다.

비가 몇일 내리고 나니 뒤란에 호박이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도 모르고 잘 자라고 있다.

문득 우리 곁을 떠난 누나 진이 생각났다. 집안 구석 구석 어느 하나 누님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어 애잔함은 이루 형언을 할 길이 없다. 부엌 살림을 보면 더 하고

아직은 시작이지만 두 아이들이 굳굳이 살아가니 감사하게 생각한다.

 

불행을 통하여서 배운 것이 있다면 인간이란 조건이다.

인생 나이 육십 칠십을 먹고 넘기고도 처신을 제대로 못하고 아무리 온라인 이라지만

그동안은 인연을 노래하고 미사여구로 인생을 이야기 하던 사람들이 어느날 한 순간에

온다 간다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부터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한결 같은 모습으로 늘 묵묵히 인연을 귀히 여기고 만나 본일 평생에 없어도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는 인성이 착하고 아름답고 자신이 하는 모든 언행에

책임을 다 하는 사람들 부터 다양하다.

 

분명한 사실은 사람의 탈을 썻다고 다 사람이 아니란 사실이다.

허무한 인생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유아독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사실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더불어 살아가는 데도 예와 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매너와 에티켓이 있단 말이다.

설령 어떤 사정이 있어서 인연을 거기 까지로 하고 길을 떠난다 하여도 최소한의

예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인 인생이요 건전한 인간관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Claude Monet - Camille with a Small Dog,1866

 

 

온종일 집안에만 가친 강아지 줄을 매고 배설물 수집 봉지 하나들고 집 앞 잔디밭

깍으러 온 정원사를 만나려고 나가니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고속도로 위로

지나가는 다리 한 모퉁이에서 녀석은 실례를 하여 종이로 싸서 집어 비닐 봉지에

담아 갖고 돌아와 뒷마당 쓰레기통에 버리고 데리고 저멀리 동네를 한바퀴 돌고 오니

토피도 신명이 나는 모습이다.

 

마지막 달 12월 벌써 한해가 다 가고 있다. 이 가을에 사랑하는 모든 혈육을 떠나 보내고

계절은 쓸쓸히 비에 젖어 겨울 초입에 서있고 그리움도 비에 젓어 계절을 물들이고 있다.

토피 녀석은 테이블 밑 내 옆에서 잠을 자고 있다. 갑자기 개 애비가 되었다. 개 한 마리가

있다는 것이 참 많이 다르다. 식구가 늘어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개를 토프라고 부르고 싶다고 두 아이와 친구들이 난리를 친다.

개 이름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면 왜 우리가 그런 것에 매달려야 하나 싶다.

그런데 한국을 나간 목사 P가 홰이스북을 통하여 램보라고 불러달란다나 뭐라나 그럴려면

정이 들기전에 도루 갖다가 주고 우리가 따로 개를 구입하자고 아이에게 한 마디를 하고 말았다.

 

주었으면 그만이지 쓸데 없이 이미 건네준 것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사람 성격에 맞지 않는다.

선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싫으니 아이들에게 도루 갖다 주라고 말하였다. 내 밥 먹고 남한테

뭐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듣고 정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느냐고 도루 갖다 주라고 했다.

지지부지한 사람 우유부단한 사람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상대하고 싶지 않다. 짧은 인생 그럴

필요가 없다.

 

아이구야 개 한 마리 기르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싶다.

좋다 말았다........아이들은 그냥 두자고 하고 진퇴양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