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겨울의 초입에 서서

붓꽃 에스프리 2012. 12. 12. 03:04

 

아무리 아침 햇살이 눈부시고 따듯하다 하여도 겨울은 겨울이다.

큰집 실내는 그야말로 냉장고와 다름이 없어 목도리 두르고 잠바 입고 무릎에는

이제는 늙어 간다고 담요를 두르고 있다. 세월을 속일 수가 없다.

 

큰 아이는 오늘도 잠시 늦잠을 자고 얼람을 잘못 셋업 해놓아 지각 출근을 하였다.

일어나 큰 아이 점심 준비해 손에 들려 보내고 다시 누워 잠을 자고 있으니 작은 아이가

일어나는 소리가 난다. 같이 일어나 보니 아침 10시가 되어가는 시간 세면을 하고

내려오니 모닝 커피를 한잔 내려 내 테이블 앞에 놓고 아이는 티비를 시청하고 있다.

학교에 강의가 없어 대신 오늘은 오후 12시에 출근하는 아이의 스케쥴이다. 그때 같이

나는 외출하여 잠시 일을 보고 돌아 오면 되는 휴무날이다.

 

이 아침 눈부신 창밖의 겨울 햇살을 마주하며 이제는 영면한 20세기 클래식 무대

위에서 첼로를 평정하였던 로스트로포비치의 지휘로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트레티야코프의 연주와 더불어 만나는 시간을 이렇게

갖고 있다. 영혼의 양식으로 늘 내 일상에서 함께 호홉하는 클래식 산소와 같다.

 

베토벤, 멘델손, 차이콥스키, 브르흐,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는 달리

20세기의 현대적인 감각이 가미된 쇼스타코비치의 곡은 난해한 편으로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어찌 이렇게도 시간이 잘도 가는지 벌써 12월 중순을

향하여 가고 있다. 곧 이 한해도 다 가게 생겼다. 참 다사다난 하였던 한해였다.

 

인생의 모든 비극과 슬픔이 교차하였던 2012년 가을날을 영원히 기억할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셋은 굳세게 살아갈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강인한 정신에

강인한 생명력이니까. 한국인의 피를 혈관에 갖고 있는 우리는 어떤 시련과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쓰러질 수 없으며 패배자가 될 수 없다.

 

문득 이 아침 헨리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전직 독어 독문학을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셨던 교수로 은퇴하신 분으로 유일하게

그 세대에 유창한 영어로 만나면 대화를 나누시는 정갈하시며 깔끔하신 노신사 이신

그런 참 점잖은 어른이시다. 2주만에 만나니 휴가를 다녀왔니 하신다.

 

아니오,

두달 동안에 맘과 씨스터 진이 돌아 가셨어요. 그래서 상을 당하였지요 하였더니

오우 마이 갓, 푸어 씽 하시며 어쩌줄을 모르신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우리는

잘 이겨내고 앞으로 또 열심히 살게 될거야요 하였다. 그래 간다 다음에 보자

하시고 길을 나서셨다. 참 곱고 아름답게 늙어가시는 신앙심 깊은 헨리 할아버지

꼭 캐나다에 계신 우리 아버지 파파를 닮으셨다.

 

시금치 된장국을 깔끔하게 끓여서 어제 아이들의 앤티 써니네 집에서 갖고온

볶음밥을 데워 큰 아이는 출근하였으니 작은 아이와 함께 테이블을 같이 하고

맛나게 아침겸 점심으로 맞추었다. 제 입맛에 맞는지 작은 아이는 작은 그릇

두 그릇 시금치 된장국을 맞추고 출근길에 나섰다.

 

큰 아이는 저녁 6시나 되어야 들어 올것이고 작은 아이는 친구와 만나 저녁식사 하고

돌아 오겠다고 미리 통고를 하였다. 우리 셋 고아들 요즘 이러고 살아간다. 아이들도

서서히 적응하는 눈치다. 나 또한 일상을 전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 직장으로 돌아가

근무하고 전에는 손에서 놓았던 책들 독서하고 산소와 같은 클래식 호홉하며 주어진

일상과 삶을 묵묵히 굳굳이 살아가고 있다.

 

이 모두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 보다 더 외롭고 더 불행한 사람들은 이 지구촌에

너무나도 많으니까 불평과 원망 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환경에 지배를 당할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력을 갖고 살아가야 될 일이다 생각한다.

 

인생이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한 것은 원초적인 인간 존재의 근원이지 않은가.

홀로 태어나서 홀로 생을 마감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진실이다. 다만 먼저 가고

늦게 가는 것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Moscow 2006
Solist: Viktor Tretyakov
Conductor: Mstislav Rostropovich
State Symphony orchestra of Rus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