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그대로 모든 것을 옆으로 재쳐놓고 잠에 들었다.
참 기분이 그렇고 그런 날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인연에 대한 상념들 성공회
신부인 그를 만나 문학과 인생을 나누고 논하던 그 옛날 그가 멀리 태평양을 건너와 회의에
참석하고 귀국길에 만나 그와 함께 끝없는 평원의 들판을 가로 질러 가던 해질녘의 들길
끝내 그는 돌아가 배신을 때리고 내등에 칼을 꽂고 말았다.
자중하지 않으면 대한 성공회에 서신을 보내겠다는 한마디로 그는 사과를 하고 멀어져 갔다.
윤동주의 <벨헤는 밤>을 함께 읽던 사람 운동권의 신부로 자기와 같은 좌파적인 가치관과
시각을 갖고 있지 않고 만나보니 순전히 버터 냄새나는 미국놈 이라며 돌아가 비수를 내등에
꽂고 말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나는 다른 인연을 만나 또 다른 인생길을 함께
걸어왔다. 오늘 그야말로 정말 몇년만에 화방을 갔다. 화폭에 베이스를 칠하는 데 사용하는
대붓을 샀다. 그리고 스케치 하는 데 사용하는 고무 지우개를 하나 샀다.
그 사이에 화방주인도 늙어 버려 세월을 실감하기에 충분하였다.
갖은 재주를 다 갖고 있는 것처럼 하던 유명한 파슨 미대를 그 당시 보냈던 딸은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개인사업으로 웨딩 샵을 한다고 하며 작은 딸은 병원에 근무한다고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떻게 지냈느냐며 정말 오랫만이라며 반가워했다. 그런데 나오려는 순간
저 멀리 반대편 문으로 누가 들어오고 있었다. 순간 주인 여자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데
그녀가 박장대소를 하며 차마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나를 쳐다보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래전 끝 마무리 좋지 않게 하고 서로 헤어졌던 선생님이 들어왔던 것이었다.
그가 다가와 인사를 하니 이쪽에서도 모르는 척을 할 수는 없었다.
옛선생님이 다가와 아직도 그림을 그리느냐고 물어 왔다. 정황과 환경상 지난 몇년 붓을
놓고 있었다고 하였다. 자기 사무실과 스튜디오가 옛날 그대로 이니 한번 들리라면서
내가 한권의 책을 주고 싶다며 같이 자기와 가자고 하여 그의 사무실을 갔다.
그의 작품들로 가득하였다. 추상부터 사실주의부터 애니메이션 까지 말하는 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치도 변한 것이 없었다. 뒤로 빼는 듯 하면서 결국은 자기 자랑인 것
그러려니 하고 사무실을 나와 그와 함께 화방 주차장 까지 걸어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에 녹음해 건네준 수많은 곡들을 음대교수로 재직중인 딸이 오래전 카네기홀에서
졸업연주후 들려 들고 갔다고 하면서 음악을 전공하여 박사학위 까지 받은 딸도 곡의
선택을 놀라워 하였다며 예전처럼 시도 쓰고 시같은 그림도 그리고 재능을 썩히지 말라고
하며 또 말을 반복하였다. 가을날 은행잎 지던날의 그림은 어디 있냐고 하여서 현재
한국에 있다고 하였다.
다시 붓을 들라고 몇번을 강조하였고 시를 쓰라고 또 강조를 하였지만 시는
더 이상 모국어에 한계를 느껴 예전처럼 쓸 능력이 없고 손을 모두 내려 놓았다고
하였다. 언제고 들려 달라고 하였다. 언젠가 다시 좋은 음악을 들고 찾아 오겠다 하고
자리를 떠나왔다. 책방을 들려 5권의 책을 구입하여 그 자리에서 소포를 부치도록
포장을 하여 달라고 하여 그대로 우체국으로 가서 부치고 돌아 오면서 들린 곳이
화방이었다. 과연 세월이 이렇게 흐른후 내가 나를 다시 표현 가능할지 모르겠다.
좀 쉬었다가 이어서 쓰리라
모두가 떠나간 자리 위에 남겨진 것........................
나는 그 사이에 아이들과 길고 추운 겨울과 봄을 지나왔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갖은 고통을 다 겪으면서 때론 모욕적인 것도 참고 교육 과정을 맞추었다.
그리고 새로운 길에 들어서 결코 쉽지만은 않은 신참 생활을 실수도 저질러 가며 하고 있다.
적응기간이 쉽지 않지만 3개월 수습기간동안 기어코 해내리라 각오를 다진다. 그리고 나를
다시 찾아 나설 것이다.
그길이 얼마나 고독하고 외롭고 처절한 길이던가.
붓을 다시 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주 너무나도 간절하다.
내 모든 사랑을 떠나보내고 여기 나 영혼의 황무지에 홀로 서있다.
나를 다시 찾는 것이다. 그리고 처절한 몸부림을 화폭에 옮기는 일이다.
내 영혼을 단 한번 만이라도 으스러지도록 안아주고 싶다.
피투성이가 된 내 상처받은 영혼들을...........................
아 그립다.
내 모든 사랑들이
내 영혼아 내가 너의 그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을 아주 아주 따듯하게 안아주리라.
기다려라............기다려 너를 내 화폭위에 담으리라......
내 영혼 너를 사랑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를 외면하고 야멸차게 너를 짓밟더라도,,,
너는 질경이처럼 살아 남을 것이다.
바로 너니까.
사랑하는 내 영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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