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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 독백

붓꽃 독백 - <과연 오미크론은 델타 변이 보다 덜할까>

붓꽃 에스프리 2022. 1. 28. 07:34

 

한 주 근무를 맞추고 돌아온 어저께 샤워를 하고 어쩌다 데스크 탑 책상 앞에서

깜빡 잠이 들어 눈을 떠보니 5시간이 지난 후였다. 결국 침실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일어나니 저녁 시간이 되었다. 그저 어저께 오미크론

감염으로 옆 병동에서 아침나절 난리굿을 치다 결국 사망한 환자 소식이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때론 이제 갓 스물 넘긴 애송이 인턴 레지던트 아이들 처방을 잘못 기재하는 것이나

검사 주문 서류 작성을 잘못한 것을 발견하게 되면 수정하라고 일러줘야 하기도

하고 그 아이들 아버지 엄마들이 나 보다 나이가 적은 세대다. 귀한 누군가의 아들과

딸들 힘들게 공부해서 코로나 감염되면 큰일 날 일이기에 마스크 제대로 하라고

항상 경각심을 준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지 않으면 한 사람이 감염되어 퍼트리면

더 큰 문제가 충분히 될 수가 있는 일 이기도 하다.

그동안 많은 뉴스들과 전문가들은 오미크론 감염이 델타 변이 바이러스나 본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보다 덜 심하게 증상을 보여준다고 논평을 했었다. 그러나

어저께 올라온 뉴스에 의하면 오미크론으로 감염되어 사망한 숫자가 델타 변이

감염으로 사망한 숫자보다 더 높다고 한다.

이 뉴스를 보고 나니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현재 일본의 경우

하루 감염자가 어저께 6만 명이던 것이 오늘은 거의 7만 명에 가깝고 한국의

경우 어저께는 1만 3천 명인데 오늘은 1천5백 명이 증가한 14,514 명이다.

곧 이 증가한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감염이 얼마나

지금까지의 코로나 바이러스들과 달리 전파력이 강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코로나에 감염되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환자들은 현재 옆 병동에 여러 명이다.

지나온 코로나 3년 차를 뒤돌아 보면 결국 복합증에 전신 감염으로 사망할 것이다.

우리 같은 세대의 사람이 감염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은 대부분 사망한다.

특히나 비만하거나 심장에 이상이 있던지 신장 문제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여기까지 자판기를 두드리다 말고 나는 어저께 유튜브를 뒤적이며 이 프로

저 프로를 보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휴무 3일간 하는 일이란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유튜브 뒤적여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프로 <한국인의 밥상> 시청하다 섬에서 살아가는 어부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보여주는 프로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코로나 시국 3년 차가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만들었고 코로나가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우리 지구촌 사람들의 일상 자체를 모두 바꾸어 놓았다. 이제 정오가 넘어

자다 말고 소피를 보아야 하기에 일어나 다시 뭐 새로운 것이라도 올라왔나 하고

이메일 뒤적이다 정크 메일 모두 삭제했다. 모르는 스팸 이메일이나 발신처의

메일은 절대로 열지 말 것 그리고 그대로 삭제다.

유튜브 뒤적여 대한민국이 레바논을 원정 가서 1대 0으로 승리했다는 뉴스를

접하다 다시 코로나 보고서 월드오미터를 뒤적여 보니 어저께 6만 명이던 일본의

감염자가 오늘 이 순간은 9천 명이 늘어나 6만 9천 명이 넘는다.

 

고용자가 100명이 넘는 회사는 연방대법원에서 강제로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하게 우파

대법관이 많은 관계로 못하게 막았다. 하여 고용주의 권한이 되었다. 그럼에도 대기업에서는

의무적으로 백신 접종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고 기사가 올라왔다,

다음으로 공화당 트럼프가 지명하여 자리에 앉은 대법관이 많은 연방대법원 판결의

웃기는 코미디는 그런데 의료전문인력은 의무적으로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는 판결문이다.

 

현재 이 시간의 생생한 통계다.

지금 이 시간의 한국의 감염자 통계다.

한국도 어저께는 저 위에 처럼 13,004 명이다 오늘은 1천500 명이 증가하여

3 -4천 명 수준이 엊그제 같은 데 이러다가 2만 명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신문만 열면 누구누구가 코로나로 사망했다가 수두룩이다.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 하나 같이 백신 반대자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다.

대서특필된 하나는 또 동부 보스턴의 하바드 의대 부속병원에서 심장이식 첫 번째

명단에 있던 31세의 백인 남성 환자가 백신 거부를 하여서 병원 측에서 그의 이식

수술을 거부했다는 기사다. 병원 측의 이야기로는 이식 수술에 있어서는 수술후

성공률을 높이고 환자 생명 보호 차원에서 다양한 예방백신을 의무적으로 접종해야

된다고 한다.

그러나 31세 환자의 논리는 백신 개발 하나 하려면 최소 몇 년이 걸리는 것을 최단기

기간에 개발해 시장에 내놓은 코로나 백신을 절대로 접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럼 결국 그는 사망하는 것 이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화이자 다음으로 모더나도 오미크론 특수화된 백신을 임상실험 중이다.

결국은 앞으로 4차를 맞아야 하는 것인지 예의 주시하고 있는 중이다.

위의 도표가 보여주듯이 코로나 백신 접종이 정치화가 되어서 민주당의 경우

64% 백신 접종을 믿는가 하면 역으로 트럼프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공화당의

경우 34%만 코로나 백신 접종을 믿는다고 한다.

유명 연예인들도 백신 찬반으로 갈라져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닐 영은 백신 접종

반대를 한 라디오 톡쇼의 호스트 때문에 음악 스트림 사이트 Spotify 에서 그의

노래를 중단시켰고 역으로 에릭 클랩튼은 아스트라 제네카 맞고 후유증에 시달려

백신 접종을 의무화 하는 콘서트에서는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국의 최대 의료산업체 카이저 의사들이 코로나 백신 접종을 3번이나 거절해

40 중반으로 3남매의 엄마이던 백인 여성이 크리스마스 전에 코로나로 사망했다며

병원 당국을 고소를 해서 신문기사로 올라오고 가지각색이다. 진실이야 관계자만

아는 일로 생각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들 중에 그 병원 시스템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부스터까지 하였다. 같은 재단이 병원을 수없는 미 전국 각지에

세워 운영하고 있다.

같은 운영체계 아래에서 같은 규정에 의해 모든 것은 시행된다. 하여 과연 코로나로

사랑하는 부인과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들의 주장이 과연 옳은 지는 관계자들만 아는

사실이지만 같은 운영체제에서 백신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접종한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시각이다.

미국 백인들 흑인들 히스패닉들 툭하면 고소다. 그중에서도 특히 흑백이 제일 심하다.

일부러 고소 거리를 찾고 일부러 말썽 피우고 의료진들이 마치 지들한테 빛이라도

진 것처럼 개지랄 떨고 온갖 악행을 다하는 악질들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툭하면

그리고 제 마음에 안 들면 고소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인간들이다. 그래 미국이란

사회에서 변호사란 존재는 선과 악의 상징이다. 한국도 발전하여 선진국에 진입하며

같은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편집자 앞으로 의료진 한 사람이 편지를 보냈다고 하여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를 읽다 보니 내용은 간단했다. 백신 반대자들이 코로나

감염되면 왜 병원은 찾아 오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백신을 반대하면 감염되면

그대로 용기 있게 살다 집에서 죽던지 살던지 해야 말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코로나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백신 접종을 반대하면서 죽는 것은 싫어 병원을

찾아온다는 것이 말이 되냐며 백신 접종 반대자들 치료를 거부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백신 접종을 반대하고 주변에 접종한 사람들에게 까지

피해를 주어 2차 3차 부스터까지 맞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 원인 제공자들 절대다수가 백신 반대자들이요 접종하지

않은 인간들이다.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터지면 이런 글을 미국의 주요 일간지 편집자 앞으로 편지를

보냈겠나 싶었다. 그들로 하여금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의료진은 탈진

상태에 빠지고 의료 붕괴 직전에 이르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백신 반대자들이

그중에 가장 첫 번째 원인 제공자로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고로 코로나에 감염되어

사망한다 한들 연민을 느끼게 되지 않는다. 백신 반대자들에 대한 진료거부와 치료

거부를 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