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새우고 아침 9시가 되어서 저녁 7시 반에 일어난 오늘 지금은 밤 8시 45분
우연히 유튜브에서 아래 프로를 보게 되었다. 나를 눈물 쏟게 하고 말았다. 문득
밀려오는 파파 후레드를 향한 무한의 그리움에 잠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두봉 주교님은 프랑스 오를레앙 이란 도시에서 2차 대전중에 출생하셔서 프랑스
군대에서 1년간 복무하신 후 신학교에 진학하여 수학을 하는 동안에 두봉 신부님의
친구가 한국동란에서 전사하여 더 더욱이 한국으로 오고 싶으셨다고 한다.
신학교를 졸업 후 신부님은 26세의 나이에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되어 상지대학교, 다미안 병원을 문둥병 환자들을 위해 세우시고 박정희
정권 시절에 안동농민회에 참여하셔서 농민들을 위하여 헌신하시다 추방 명령을
받으셨다.
하여 바티칸에 가셔서 전 요한 바오로 교황 2세님과 선종하신 스테파노 김수환
추기경님과 원주 교구의 주교님과 함께 회담을 한 후 가난하고 헐벗은 농민들을
위하여서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교황청에서 결론이나 다시 안동으로 돌아와
지금 94세 되시는 날까지 한국에서 평생을 사셨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이 키가 작은 이유는 2차 대전 속에서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여 제대로
먹고살 수 없어서 성장하지 못해 키가 작다고 하시며 90세에 작고한 아버지께서
신부님께 32년간 매주 한 번씩 편지를 손수 손으로 써서 아들인 두봉 주교님께
보내주셨다고 한다. 가난한 환경에서 살았기에 한국으로 파견되었을 때 가난한 전후
한국의 농촌 환경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사연이 작고 하시던 그해 2월까지 평생 생일 카드를 보내주신 것처럼 그리고
편지를 아들인 나 하고 주고받으셨던 날들이 너무 똑같은 상황이란 공통점에
수많은 지나간 날들이 떠올라 뜨거운 눈물을 결국 쏟고 말았다.
내년이면 곧 만 70이 되는 나의 영혼 깊이 파파 후레드는 거하시고 계시며 내가
이 지상의 여정을 맞추고 떠나는 날까지 그리고 천상에서 파파를 다시 만나는
날까지 늘 매 순간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두봉 주교님 아버지의 깊은 아들에
대한 사랑에 그와 똑같은 입장에 계셨던 양부 파파 후레드가 나에게 주고 가신
인생의 많은 교훈과 한없는 참사랑을 뒤돌아 본다.
주교님의 말씀 중에 가장 감동적인 말 한마디는 아주 평범하게 보통 사람으로
살고 싶으시다는 멘트였다. 소탈하게 깔깔대며 웃으시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중독성이 강했다. 된장과 김치를 더 많이 먹고 평생을 한국에서 사셨다고 하시는
주교님의 말씀은 평생을 영어 하는 나라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이땅에
한 줌의 재로 뿌려지거나 묻히게 될 나 자신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국에서 한국말 하며 사시는 두봉 주교님 이나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미국에서 영어를 일상 언어로 살아가는 나자신과
피부색과 문화가 다른 곳에서 두 사람이 다 출생해 그 반대의 문화권에서
평생을 살아가며 그땅에 묻히게 된다는 결론은 똑 같다.
'붓꽃 독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꽃 독백 - <無題> (0) | 2022.02.03 |
---|---|
붓꽃 독백 - <베토벤 - 봄 소나타> 앞에서 (0) | 2022.02.03 |
붓꽃 독백 - <벌써 2월> (0) | 2022.02.02 |
붓꽃 독백 - <J.S.Bach - Sonatas & Partitas for Solo Violin> (0) | 2022.02.01 |
붓꽃 독백 - <갈수록 태산> (0) | 2022.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