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오늘 구교도든 신교도든 부활절이다. 그리고 우리 부활절은 내일이다.
이미 학교는 부활절 방학을 시작한 지가 1주 일이 넘었다.
우리 어려서 학부시절 부활절이면 늘 1주일 방학으로 아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아니면 일부 아이들은 탈선을 하는 날로 훌로리다 하얀 모래사장으로 달려가 광란의
밤을 보내곤 했었다. 지금도 그 점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하여 때론 의도치 않은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여 전국지 1면을 커버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이번에 긴 휴가 같은 휴무 4일은 휴식과 안식의 시간이 아니라 나에게는 고문과
같은 힘든 시간이었다. 낮잠을 한 번쯤은 자야 하는 데 7가구 다세대 주택에 각
유닛마다 전기공사를 화재보험 회사의 요구에 따라 실내 전기 패널 스위치
박스를 새로 리모델링을 해야 해서 감독하고 방문 열어줘야 하고 해서 마음 놓고
잠을 자거나 3개월치 약을 타러 갈 시간도 마땅치 않았다.
기술자 부자가 오는 시간이 들쓕날쑥이라 더더욱 그랬다.
어저께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닫아 발 뒤꿈치가 아파오고 몸에 무리한 것이
신호가 오고 있었다. 대체 내 나이가 몇 살인가 온종일 제대로 마음 놓고 쉬지도
못하고 사람을 기다려야 하고 감독해야 하고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물론 기술자
부자 두 사람도 힘든 일을 하였다. 세상 사는 것이 어데 그리 만만하며 남의 돈을
벌어 먹는다는 것이 그분들 입장에서 어데 쉬우며 우리 입장에서 남 일 시키는
일이 어데 그렇게 쉬우랴 다 이해 가능한 일이다.
여하튼 공사로 침실이 먼지투성이가 되고 할 일이 태산이었다.
창문 다 열어젓히고 통풍시키고 공사가 마무리되어 먼지 닦아 내고 필리핀 고향애
간 노엘네 집 열어주고 에이 죽기 아니면 살기 이때다 하고 이번에 두 번째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지난 십수 년 아니 20년 쌓인 책들을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보내기로
작정을 하고 정리를 하니 아마도 값으로 따지면 200-300만 원어치가 되는 100권도
넘는 한글로 된 책들을 모두 미련 없이 정리하기로 했다.
늙어가니 한글로 된 책 보다 영어로 된 내게 소중한 책 몇 권만 갖고 있고 싶어졌다.
내가 죽으면 그 누구도 보지 않을 한글로 된 책들 하고 생각하니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어졌다. 정리하고 버리는 데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였다. 발 뒤꿈치는 아프고
발가락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잠을 못 자 피곤하고 제대로 요리를 해서 끼니를
때운 것도 아니고 온종일 전기공사 감독에 매달리다 보니 피곤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래도 시간을 잠시 내어 약을 가지러 갔다.
지난 1년 세금보고하러 간다고 간 전기 기술자 부자는 온다는 시간 4시가 아닌
6시가 지나서야 겨우 도착했다. 내가 폭발하기 직전에 그들이 왔다. 마침 필리핀을
간 노엘 집에 동생이 와 있어 이번 전기 공사 마지막인 그 집을 들어가 공사를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거의 20번쯤 그 무거운 책들을 정리해 다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최근에 우리 다세대 주택에 이사 온 이란 출신 레자가
퇴근해 오고 있었다.
전기 기술자가 그의 주차 자리에 주차를 하여 그는 밖에 길거리에 주차하게 되었다.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먼저 정중하게 사과를 하니 아무 문제없으니 걱정 말란다.
그의 손에는 인도 북부에서 생산되는 불면 날아갈 바스마티 쌀 자루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이란 쌀을 미국에서는 구할 수 없어 가장 근접한 바스마티를 샀다며
한 자루 갖으라며 건네주는 레자의 배려를 정중히 거절했다. 우리 집에 작은 봉지
하나 있어서 그런다고 오해할까 봐 이야기를 했다.
미국 정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악마의 나라 이란이지 그들의 본심과 원초적인
그들은 한없이 선하고 순수하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시각이요 의견이다. 이방인을
보면 먼저 친절과 정으로 순수하게 대접하는 그 마음은 이란이나 한국의 시골
나이 든 사람들의 마음이나 매한가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밴 고흐의 그림을 벽에
달고 있는 레자 정갈하고 깔끔하기 그지없다. 전기 공사로 잠시 기술자들을 위에
그의 방문을 열어주고 본모습에 나는 참 괜찮은 젊은이구나 했다.
공사를 하기 전 미국의 경우 미리 몇 주 전에 사는 거주자들에게 몇 월 며칠부터
공사를 하니 양해해달라는 공지를 내보낸다. 이점은 한국도 같지 않을까 싶다.
책을 정리해 다 버리고 나니 공간이 훤했다. 샤워를 하고 세탁을 시작하기를
밤 10시 45분 건조하고 나니 이슥한 밤 12시가 넘었다. 세탁물 다 개어서
제자리에 넣고 너무 피곤해 나는 그 길로 침대로 직행했다. 그리고 기상한 시간은
오늘 아침 11시가 되었다.
지금은 오후 4시 15분 일어나 한일은 강원도 양구산 시래기를 하루 물에 담갔다
어저께는 쌀뜨물로 함께 오래 두고 끓이고 이 아침에는 물을 꼭 짜서 썰어 들기름
참기름 마늘 간장 넣고 볶다 물 좀 부어 다시 은근히 조리고 그 맛 소고기가 이렇게
맛나면 집안 살림 거덜 나리라 생각할 정도로 맛났다. 건강한 그리운 우리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그 맛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생을 마감하고 떠난 빈자리 그 어느 곳
에서도 나는 모국의 정서를 찾을 길이 없었다.
빵과 숩 파스타 스파게티만 먹고살 수밖에 없는 정황 하여 내손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온라인으로 맺어진 인연들에게 물어보고 하여 시작하게 된 한국 음식으로의
여정 생각하면 뜨거운 눈물이 먼저 앞을 가린다. 한국음식의 정서를 찾아 나서고
싶었다. 그러기를 거의 20년 이제는 각종 김치, 된장찌개, 김치찌개, 잡채 뭐든지
레시피만 있으면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하늘에 계신 어머니 맘이 만들어 주셨던 코다리 무조림과 샐러드 같았던
아삭아삭하고 맛난 생채는 그 맛을 낼 수 없다. 그것은 어머니 맘의 손맛 이리라.
가장 그 맛이 그립다. 밤새도록 정리해 버린 책들 침실이 새로워졌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5월 휴가를 하게 되면 버려야 할 옷들을 다 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제는 남은 날들이 살아온 날 보다 작기에
최소한 간단히 정리하고 살고 싶다.
사후 산자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바깥 주변도 다 청소하고 집안도 다 치우고 진공청소기 돌리고 하니 살 것만 같다.
정리된 이 느낌 너저분한 것이 아주 싫다. 소박하나 정리된 깔끔한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싶다. 설거지 제때 안 하고 처쌓아놓는 것 나는 제일 싫어한다. 그때그때
말끔하게 접시 닦아 정리하고 사는 것이 바라는 바다. 냉장고도 냉동실도 요즘은
정리해 간단히 살아가는 것이 나 스스로 거는 체면 술이다,
레자가 말을 하기를 노란 냄비를 한국 마켓에서 샀는 데 구멍이 났다고 한다.
아 그거 라면 끓이는 옛날식 양은 냄비야 쌀밥을 지으려면 두꺼운 냄비가 필요해
하고 말았다. 이란 쌀은 하얀 눈 같이 생긴 긴 모습으로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다.
책을 다 버리고 잠시 마켓을 갔다. 한국산 된장찌개를 짓는다는 작은 쇠인지
사기인지 싶은 꽤 큰 것을 세금 포함 20불 좀 넘는 것과 종가집 김치 사발라면을
세일해 레자를 생각하고 사 갖고 돌아왔다.
6개의 종가집 사발라면 3개는 레자를 주고 3개는 내가 먹고 하는 마음이었다.
새로 산 튼튼한 돌솥밥 같은 것과 함께 김치 라면 3개를 레자에게 주었다. 한사코
펄펄 뛰는 레자 마음에서 우러 나서 주고 싶어 주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으라고
했다. 너는 내 이웃 이잖니 했다. 그러니 내가 주려고 한 바스마티 쌀 한 자루는
그럼 왜 안 받았냐고 묻기에 집에 있어서 그랬다고 했다.
언젠가 나를 놀라게 해 주겠다 고 해서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세탁을 맞추고 나니 거의 새벽 1시 뒤도 안 돌아보고 나는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이번 주 첫 근무 이번은 오늘내일 근무하고 이틀 쉬고 이틀 근무하고
하루 쉬고 4일 근무하고 그리고 그리고 하다 나는 5월 중순 올해 2차 휴가 14일에
들어간다. 김치찌개 요리해놓고 강원도 양구 시래기 볶아 놓고 지난번에 담근
총각김치 정리해 그릇에 담아 놓고 익은 배추김치 썰어 담아 놓고 정리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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