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가을 나드리

붓꽃 에스프리 2022. 10. 23. 02:33

휴가랍시고 뭉그적 거리고 게으름 피우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밤새우고 싶을 때 새우고 아침 식사는 일찍이 6시 반이나

7시에 맞추고 그리고 잠자리에 들고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다 보니 매일 복용하는 혈압약이 2개가 남았다. 결국

주치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혈압약이 떨어져 가는 데 방문 예약이 가능한지 물어보니 4월에 다녀가셨고 피검사도

다 정상이시고 특별한 당료 같은 병도 없으신데 내일은 워낙 바빠 힘든데 그럼 가시는 약국으로 3개월치 처방전을

컴퓨터로 보내드리겠노라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도 아침에는 잠을 자고 오후 2시가 넘어 먼저 월그린에 가서 독감 주사를 맞고 다음은 내가 사용하는 약국

Rite Aid를 가서 약을 찾아들고 오랜만에 내가 가는 마켓을 들렸다. 먼저 마켓 안에 있는 내가 거래하는 은행을 들렸다.

그런데 ATM 앞에서 스페인어권 남자 고객이 오랜 시간을 끌고 있다 몇 번을 시도하더니 나온 돈을 집어 들고 이러고

저러고 하더니 떠났다.

다음은 내가 평소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신용카드를 주로 사용하지만 그래도 만약을 위해 10만 원 정도는 현금이

있어야 하기에 카드를 넣으려고 하니 이게 웬일 ATM 기계가 카드 입력을 받아주지 않는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다시 시도해 보니 이게 웬일 다시 카드 입력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순간 왼 카드가 카드 입력하는 곳에서

튀어나왔다.

곧바로 옆에 은행원 창구 직원에게 먼저 고객이 잊고 갔다고 건네주었다. 그 후 다시 카드를 입력하려니 이번에도

안된다. 그런데 조작하니 이게 뭐야 100불짜리 한 장이 지불되어 ATM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다시 그 고객이 모르고

남겨 놓고 간 돈을 은행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 나서 카드 입력이 안되는 대신 카드를 카드 입력하는 아랫부분

평면에 대기만 하면 되기에 대니 입력 신호가 떴다 그리고 내 비밀번호를 물어와 20불 한 장을 받아들고 물러나

샤핑을 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것은 빵과 우유 그리고 생수가 전부였다. 위에 보이는 냉동 약병아리 2개에 5불 그 옆에 바게트 빵 하나에

2불 40 전, 2.8리터짜리 랙토스가 없는 저지방 우유 6불 50 전, 썰어 놓은 바게트 빵 봉지 하나에 2불 40 전 그리고

이태리식 로프 빵 5불 99 전 결국 6불, 우유는 지난 몇 년 사이에 2불 정도 올라갔다. 이것이 현재 물가다.

파리에서는 물가 상승에 살수 없다고 시민들이 열받아 정부 사무실 유리를 깨트리고 항의 데모를 하고 런던에서도

시민들이 물가 상승에 살기 힘들다고 항의 데모를 하고 전 유럽에서 난리도 아니다. 여기 미국은 강도들이 날뛰고

얼마 전에 한국인 상인을 총기 살해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었다. 물가는 오르고 임금은 오르지 않아 살기

힘들다고 전 세계 유럽부터 중동부터 남미 아르헨티나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곡창인 우크라이나에서

곡물 수출길이 막혀 곡물가가 오르고 경작도 30%밖에 못하여 난리다.

물가 상승의 원흉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다음은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그 인플레이션 잡겠다고 달러

가치를 올려버린 연방정부 은행과 바이든 행정부 하여 며칠 남은 11월 8일 선거 바이든의 인기는 정지 상태

내지는 하향 길어다. 한국 또한 주택경기가 악화되어 난리 그 와중에 경기부양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검찰을

시켜 민주당을 때려잡겠다고 하는 한국의 여당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서울시내 항의 집회 지금 전 세계가

난리도 아니다.

 

어저께 마켓을 가니 곧 핼러윈이 다가온다고 호박을 쌓아 놓고 있었다. 간밤에 유튜브서 본 <한국인의 밥상>에

나온 호박죽이 생각났다. 녹두로 만드는 음식을 소개하면서 녹두 시루떡, 녹두전, 청포묵 여러 가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어려서 작고 하신 우리 모친께서 손수 40 중반에 다 만들어 주셨던 음식이다. 떡이란 떡은 술떡부터 못

만드시는 떡이 없었고 음식 솜씨 뛰어나셨던 분이었다. 내가 어려서 국민학교 다닐 때 그렇게 좋아하던 하얀

백설기 콩떡과 호박죽이 그립다.

그중에 늙은 호박으로 만든 떡도 있었지만 콩국수와 더불어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지금도 나는

콩국수는 먹지 않는다. 더욱이 서양에서 평생을 사니 <한국인의 밥상>에 나오는 그 많은 한국 음식들 맛을 보거나

경험할 기회가 없다. 그저께 밤 새벽 2시 50분경 내 모바일 폰이 울렸다.

아니 이 시간에 나한테 전화를 할 사람이 없는 데 하고 열어보니 저 멀리 경상남도 서울남부 터미널에서 고속버스

타고 통영까지 가서 다시 버스 갈아 타고 거제도 고현 시내까지 가서 다시 마을버스 타고 반 시간은 가야 하는 거제도

건너 칠천도 라고 하는 작은 섬에서 사시는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님은 부산서 교사로 은퇴하시기 전 20년도 넘는 세월전에 펜팔을 찾고 계셨었다. 그렇게 우리는 펜팔로 시작하여

수없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갔다. 은퇴하시자마자 칠천도에 땅을 구입하시고 집을 짓고 부산서 귀촌을

하신 것이나 다름없으셨었다. 그 후 1년인지 2년인지 지나 나는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형님의 초청과 배려로 버스를

타고 난생처음 서울서 통영을 거쳐 거제도 고현을 거쳐 찾아갔다. 한글은 읽고 한국어는 할 수 있으니 문제없이 물어

물어 도착했다.

노인이 되신 형님 늙어가는 아우가 그립다고 자주 전화를 하신다. 경상도 형님 집에 가면 나도 모르게 경상도 사투리와

억양으로 한국말을 하게 된다. 그러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친구들이 웬 사투리를 하냐고 우스워 죽겠다고 한다. 옆에

형수 있다 바꿔주랴.... 하시기에 바꿔 달라고 하여 형수님과 잠시 미국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간 아들이 미국서 변호사인

정순 씨 안부를 물으니 모시고 살던 노모님 작고해 진해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가는 세월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싶었고

그리웠다.

언제 나올 거냐고 물으셔서 더도 틀도 말고 1년 반만 지나면 완전히 은퇴하고 뵈러 가겠노라고 했다. 형님도 형수님도

보고 싶으니 최근 모습이 담긴 사진을 좀 보내시라고 하여 로셀 결혼식에서 찍은 사진과 근무하면서 찍은 사진을

보내드렸다. 과연 우리가 앞으로 몇 번 더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고 그리움이 밀려왔다. 곧 70 된다고

하니 벌써 "니 그렇게 됐나" 하신다.

우리는 타인 그러나 혈육 한점 없는 한국에 혈육과 다름없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가족이다. 곁에서 같이 이웃하며

두 분에게 의지가 되어드리지 못함이 못내 가슴이 아프도록 아쉬울 뿐이다. 마음 깊은 곳에 진실한 인연은 이런 것이다.

이 아침 묵은지 꺼내 김치찌개 요리하고 김치 부침개 만들고 건강식 지중해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튀니지식 치킨 유기농

요리를 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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