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과 인왕산이 감싸 안은 고즈넉한 동네 '부암동' 한 바퀴, 주먹밥 & 우동, 스콘, 녹두전
|김영철의 부암동 한 바퀴🚶♀️ KBS 20200314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익선동 다다익선 한옥 길음 시작으로 인사동, 북촌으로 이어지는 한옥길을
돌아보며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ㅣ KBS 20180725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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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나는 위에 두 프로를 유튜브에서 보았다. 그저 지난날의 한국이 아련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기와지붕을 하고 있는 서울 부자들의 한옥 마을들 혜화동, 돈암동, 가회동, 성북동, 계동, 청운동 같은
동네의 모습들이 스쳐갔다. 지난 2월 말부터 시작된 이상 기온으로 3월 한 달 내내 흐리고 비 오고
눈 오고 그러다 바람 불고 그러다 잠시 아침나절 개였다가 오후부터 밤새도록 비가 내리고를 연속한
3월 한 달이다.
지난 이틀은 휴무였었지만 어저께 아침부터 시작된 교육은 오후 1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교육을 받고
근무처 건물을 나오니 오랜만에 청명한 날씨에 하늘은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푸르고 뭉게구름으로
가득한 그런 날씨였다. 고속도로를 진입하니 차가 밀리기 시작한 것이 반 시간만 늦었어도 나는 아마도
40분 거리를 한 시간은 족히 넘어야 집에 도착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날이 맑으니 절로 기분이
상쾌해지고 충만함을 느꼈다. 하여 마켓을 들렸다. 주차장이 붐빌 정도였다.
오랜만에 총각김치를 담가 볼까 하고 보니 가뭄 속에서 기른 것인지는 몰라도 무가 작고 억세 보였고
말이 아니었지만 지난번에 본 것보다는 났다 싶어 한단에 1불 49전을 하는 것을 3단을 샀다. 한단에
아기 손만 한 것 무 4개다. 한국을 방문하던 6년 전인가 본 풍성하고 야들 야들한 한국의 두툼한 총각무
한단이 떠올랐다. 이럴 때는 한국의 풍성한 채소 들이 그립다. 빵과 치즈와 버터와 육식을 주로 하는
서양에서 평생을 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배추가 워낙 나빠 이번만은 평생에 두 번째로 김치를 담그지 말고 그냥 작은 병 하나 사자하고 수십 년
된 김치 브랜드를 하나를 샀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 국순당 막걸리 한잔 마시고 사 온 김치병을 열어 맛을
보니 이게 뭐야 익은 것이 아닌 제대로 절여지지도 않은 배추를 양념을 버무려 병에 넣어 파는 것이었다.
순간 맛을 보고 내 손으로 담가 먹던 김치 맛을 생각하며 차라리 김치를 안 먹고살지 두 번 다시 사서 먹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자신에게 하고 말았다.
총각무를 다듬어 다섯 번을 세척하고 신안 바다 소금을 뿌려놓고 총각김치 담글 재료들을 갈아 놓고
찹쌀 풀 쑤어놓고 국순당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니 저녁 5시가 되었다.
일어나 소스를 만들어 놓고 버무리니 얼마 되지도 않았다. 사온 맛없는 배추 막김치도 내가 담근
총각 김치도 익으라고 밖에 내놓았다.
그리고 밤은 깊어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온화한 날씨라 창문 다 열어젖히고 총각김치
담근 소스 냄새 특히 마늘 냄새를 환기 시키기 위해 창문을 다 열어젖히고 쓰레기 분리수거해 다
내다 버리고 들어와 부엌을 정리하니 살 것 같았다. 피로감에 다 옆으로 밀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니 아침 8시가 되었다.
교육을 맞추고 퇴근하던 길목이 오랜만에 고풍스러운 건물과 함께 어우러져 오랜만에 기분이 업되는
느낌이었다. 역으로 오른쪽은 근무처의 앞 주차장 정경으로 긴긴 비와 흐림을 반복하던 3월 한 달이
기울어가는 23일이 되어서야 봄날의 더없는 청명한 하늘이다. 길가에 나뭇가지에도 연두색 새순이
돋아나고 이러다 4월 말이 되고 5월이 되면 보랏빛 자카란다 꽃이 피어나 보도 위에 보랏빛 작은 종
모양의 꽃비를 내리겠지 싶었다.
<홍성 오일장 바다를 담고 보물을 품다 | 다큐멘터리 장날 | 대전 MBC>
오랜만에 눈부신 오후의 금빛 햇살이 부엌 창가에 들어와 포근하게 감싸 주는 이 봄날의 서정시
그리고 어린 시절 한국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한 유튜브에 올라온 홍성 5일장 사실 나는구글 지도를
통해 충청도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한국을 구경해 본 적이 없어 어떤 곳인지 이 나이 칠십이
되도록 전혀 모른다. 5일장에서 온몸으로 추운 바람과 고단함을 이기고 살아가는 한국의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을 생각하면 눈물겨울 정도다.
그들이 다 우리 세대이거나 우리 조금 위에 세대거나 우리 동생들 정도의 50년대 말 세대들과
창창한 삼십 어디 정도의 우리들 아들딸들의 세대다. 그 강인한 생명력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다.
전후 어려서 동네에 강냉이 튀기는 사람이 오면 그날은 그나마 있는 집에서는 강냉이를 튀기던 날
그날 만큼 즐겁고 행복한 날은 없었다.
가난한 옆집 어머니는 지금은 반세기 이상 사용하지 않은 모국어를 상실해 그 이름을 모르는 떡을
만들어 팔러 나가시곤 하셨었다. 이 순간 생각하니 울컥해지는 느낌에 목울대가 뜨겁고 눈물이 솟구친다.
우리 집 앞집에 살던 국민학교 동창 계숙이 아버지는 황해도서 피난을 나온 분이셨다. 삼강 아이스케키가
나오기 전 나무로 만든 통에서 지금 생각하면 셔벗을 만들어 팔러 다니셨었다. 그리고 목수 일을 하셨었다.
모두가 아스라한 사무치는 그리움 이다. 그런 계숙이는 어디선가 할머니가 되어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은퇴 후 한국을 가면 어릴 적 국민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 박상섭을 찾아 보고 싶다. 나는 그 아이를
지금까지 잊어본적이 없다.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운 존재다. 그 아이는 그 당시 의사이자 술고래 이셨던
외할아버지 집에서 머물며 나와 함께 학교를 다녔었다.
그 아이 아빠가 교사였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리고 상섭이는 후일 경기도 서부 어디에서 국민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 전부다. 그리고 이모는 이대를 그 당시 다녔었다. 어느 날 상섭이를 찾아가니
외할아버지가 술이 취하셔서 초저녁에 발가벗으시고 나오셔서 혼비백산을 한 기억이 난다.
나란 사람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라 요즘 외식비가 올라간 것은 알아도 얼마가 되는지는 모른다.
유튜브를 보니 부산 어디 식당에서 짜장면이 칠천 원 즉 7불 이었다. 탕수육 소가 2만 원 하여 미국에 있는
화교 중국집을 찾아보니 짜장면이 11불 탕수육이 20불이 넘나 그랬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리 아빠 헨리를 모시고 가던 중식당 그 집의 짜장면이 11불 탕수육이 20불이 되었다.
뭐 물가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되니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한다. 뭐든지 다 가격이 올라서 비싸다. 웬만큼
벌어서는 먹고 살기도 힘든 서민들 시대가 되었다. 한국 음식을 먹은 지가 며칠 인지도 기억조차 나지도
않는다. 어저께는 그리스 빵 먹고살았고 오늘은 호밀빵을 아침 으로 요기를 했다.
위에 올려놓은 쟁반 속에 9가지 반찬과 함께 하는 아주 소박하고 정갈한 한국 밥 한 끼 먹어보는 것은
이 서양에서 상상에 불과하다. 냉이 된장국 또는 무침, 달래 간장으로 따듯한 밥 한 공기 참기름 하고 비벼 먹고,
쑥 범벅이라고 하던가 하는 것 하고 따듯한 커피 한 잔이면 이 봄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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