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하자마자 아이가 의도치 않은 은퇴 선물로 코로나란 복병을 주고 갔다. 아이가 다녀간
다음날부터 목이 마르고 간질거리더니 나는 그날부터 근육통부터 시작해 두통과 목이 아프고
끝없는 기침과 콧물에 시달려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은 물론 입맛은 달아나 식음을 거의 사흘
나흘을 전폐하다 싶이 했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죽는 것 별것 아닌데 여기서 조금 더해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들 정도였었다. 병원 병실에 눕기 직전이었다. 어저께서야 처음으로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를 조금 정리하고 죽도록 아파 손도 못 대어 상한 채소들 다 버리고 한국 오이 굵은
신안 바다 소금 아주 조금만 흩뿌려 삼베 주머니에 넣고 물을 꼬옥 짜내고 오이무침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은 일부 변한 호박 껍질 도 껍질 벗기는 필러로 벗겨내고 남은 부분만 썰어 올리브
오일과 파 새우젓 한 수저 넣고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어린 시절 여름날 아침 담장에서 호박
하나 따오라고 하시면 따다 드리면 요리하셔서 자식들을 먹이시던 그 호박볶음이 그리워
호박볶음을 만들었다.
아침이자 점심은 호밀로 만든 검은 빵과 아보카도 하나와 삶은 계란 두 개가 전부였었다.
결국 하루에 두 끼로 만족했다. 늙어가며 포만감을 느끼도록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가벼운 소식의 식사와 채식을 위주로 한 식단 이외 그토록 그리운 음식도 없는
것 같다. <한국인의 밥상>에 나오는 음식들 또는 우리 서양에 수없는 맛나는 음식들이 있다
한들 나의 건강을 생각하면 절제하고 금해야 되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라 식생활을 바꾸었다.
요즘은 하루에 두 끼만 먹고산다.
2022년 은퇴한 직장에 동료의 결혼식에서 코로나에 집단 감염 이후 처음으로 아이가 어데서
감염되었는지 처음에는 음성인데 양성으로 나왔다며 연락을 해준 날 나는 이미 죽도록 아파
식음을 전폐하고 투병하고 있었다. 끔찍한 경험 이었다. 만사가 귀찮고 앉아 있을 기력도 없어
침대에 누워 24시간을 고통 속에 있었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있을 수도 없어 일어나면 어지럽고
두통에 근육통에 끝없는 기침과 열에 시달려야만 했었다.
결국은 주치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감염이 되어 갈 수는 없으니 내가 가는 약방으로
처방전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해 결국 몇 시간 후 마스크를 쓰고 간신히 찾아 갖고
돌아와 항생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내고 나니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자판기를 두드리고 멈춘 지가 2주가 넘어가는 것 같다. 매일 운동 삼아 아침저녁으로
3마일씩 걷기를 하던 것을 코로나 병치레 후 멈추고 있다. 이제 회복이 되고 기력을 되찾고 있어
이번 주부터 다시 아침저녁 걷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아프고 나니 입맛을 회복하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우연히 유튜브를 브라우싱 하다 보니
<한국인의 밥상> 에서 녹두전이 나왔다. 식욕이 발동하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더운
여름날 집에 남은 녹두를 물에 하룻밤 불리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갈아놓고 귀찮아 또
하룻밤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이제는 늙어 특히나 한국 음식을 만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예전과 달리 무엇인가 요리하는 것이 귀찮게 느껴지고 힘겹게 느껴져 웬만하면 양식을 먹고 산다.
아침은 빵과 아보카도 우유, 계란과 채소 조금으로 끝나고 저녁은 현미밥에 두부 들어간 김치찌개나
나물 정도로 끝나고 식단에 육식은 없다. 그래 냉장고 정리할 겸 다 꺼내 버릴 것 분리수거해 바깥
쓰레기통에 넣고 병들은 다 세제로 닦아 냄새를 없애고 말리고 해서 정리하고 나니 냉장고 안이
널찍해 너무 좋았다.
묵은지 물에 세척하고 물을 꼬옥 짜내 잘게 썰고 자연나라 표 물고사리는 삼베 주머니에 넣어 물
꼬옥 짜고 잘게 썰고 대파 썰어 넣고 찹쌀 좀 조금 넣고 한바탕 녹두전을 부치는 데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힘들어 잠시 쉬었다 또 미루고 못하게 될까 보아 용기를 내어 마추 맞추고 모든 용기 닦고
싱크대 정리하고 나니 두세 시간이 흘러갔다. 식탁 위에는 세척한 병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유튜브에서 요즘 즐겨 시청하는 것은 탈북민들의 채널에서 북한 실상과 그들이 어떻게 죽음의
사선을 넘어왔나 하는 에피소드와 한일톱탠쇼(한국식 발음)/한일 탑텐 쇼우를 우연히 발견해
일본 가수 마츠자키 시게루(松崎しげる) - 사랑의 메모리(愛のメモリー)를 만나게 되었다. 요즘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 가수의 이곡과 루팡 3세의 테마(ルパン三世のテーマ)곡과 <My Way>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가사 하나하나를 찾아보았다. 댓글도 별별 댓글들이 많았다. 반일부터 일본 가수의 엔 가풍의
감성과 음악성을 있는 사실 그대로 긍정과 부정을 하는 것부터 그러나 절대다수가 이 가수가
74세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갖고 있는 음악성과 열정과 순수하게 가슴에서 우러나와 불러주는
멋스러움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저께는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작은 배추 덩어리 하나, 무, 당근, 마늘 몇 조각과 생강 작은 것
하나 양파 자르고 살짝 칼칼한 맛이 나게 하기 위해 작은 고추 두 개 하고 썰어 넣고 소금물을 너무
짜지 않게 타서 넣어서 실온에 오늘까지 이틀 반을 넘기고 나니 발효가 되어 개스가 뽀글뽀글
올라오고 있었다.
맛을 보니 새콤하게 맛이 들어 기대만큼 시원하고 살짝 칼칼하고 완전 동치미 맛 같아서 이 더운
여름날 더없이 마음이 흡족했다. 짠 음식을 먹으면 안 되기에 물을 타서 넣고 살짝 덜 짜게 희석시켜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 찹쌀 풀 쑤고 배 마늘 생강 양파 갈아 갈아 국물 내어 물과 섞어 익히는
물김치 레시피는 이번에 생략했다. 그럼에도 아주 간단히 소금물만으로도 발효되어 뽀얗고 맛난
물김치가 만들어졌다.
함께 같이 근무했던 지난날들이 그립다는 이야기에 언제고 환영하니 시간 나면 자기 집에 놀라오라는
이야기였다. 너무 더워 여름이란 꼼짝하기 힘들고 시원한 가을이 되면 방문하던지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참 무던하고 괜찮은 사람 자기가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 미래에 대한
확고한 계획이 있어 오십이 넘어서도 전문과정 대학원 공부를 하는 친구다.
그러고 나서 오늘 아침에는 전 직장에 린으로 부터 안부 텍스트가 왔다. 그녀도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간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하여 신문을 보니 요즘 코로나가 다시 퍼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몸조심
하라고 했다. 그리고 조만간 직장으로 방문하겠노라 했고 8월 중순 지나 은퇴 기념으로 점심을 모두에게
대접할 테니 만나자고 했다.
서로는 서로를 그리워할 수 있음도 감사한 일로 생각한다. 브렛도 내가 무척이나 아끼고 좋아하던
직장동료이자 친구였었다. 그들도 나도 서로 싫으나 좋으나 함께 근무했던 지나간 순간들이 그립다.
은퇴해서 특별히 바뀐 것은 없다. 다만 출근할 걱정이나 내가 무엇을 하던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내 건강을 지키고 하루하루 평안하게 내가 지금 서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매주 즐겨 시청하는 프로는 티비 조선에서 매주 수요일 방영하는 프로 <아빠 하고 나 하고>를 빼놓을
수 없다. 오늘은 코로나로 아파서 미쳐 다 못 본 한국 영화 <범죄 도시 4>를 마주 맞출까 싶다.
The road is long
With many a winding turn
That leads us to who knows where, who knows where
But I'm strong
Strong enough to carry him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 So on we go
His welfare is of my concern
No burden is he to bear
We'll get there
… For I know
He would not encumber me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 If I'm laden at all
I'm laden with sadness
That everyone's heart
Isn't filled with the gladness
Of love for one another
… It's a long, long road
From which there is no return
While we're on the way to there
Why not share?
… And the load
Doesn't weigh me down at all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 He's my brother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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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들으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떠난 후 71세인 지금도 지나간 모든 날들이
스쳐가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Even though I am 71 years old and have lost all of my loved ones, listening to this song
makes my eyes warm as I recall all of the days that have pa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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