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인간관계요 만남이리라 생각한다.
그리움이 차 올라서 더는 견딜 수가 없으면 촉촉한 목소리로 언제든지 자신의
아침 출근 시간 전에 전화를 하곤 하는 내 인생의 한쪽 갈비뼈 같은 친구 P가
만나자고 한 약속시간인 휴무날인 오늘 저녁 늦게 약속 장소로 그를 만나러 갔다.
늘 우리가 만나는 그 식당 그 창가에 있지 않고 그는 다른 테이블에 홀로
커피 머그를 앞에 놓고서 친구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 없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가가도 모르고 어깨를 툭 치니 그제서야 알아보았다.
배가 엄청 고프다며 J는 아파서 못나왔다며 어서 저녁식사를 하잔다.
반년이 다 되어 가는 세월 후에 만나는 서로이다 보니 친구의 얼굴이 전과는
달리 핼쑥하다 싶었다. 서로가 얼마나 그리운 모습이었던가. 순간 안타까웠다.
음식주문을 하고 테이블로 돌아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그동안의 무기력함으로
직장생활 이외에는 그 어떤 글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소중한 인연들에게조차
제대로 연락은 물론 인사도 못하고 그 안에서 허덕이던 세월을 이야기 하니 자신도
다람쥐 쳇바퀴 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전에는 몰랐는데
미국생활을 좀 더 길게 하여보니 한국의 부조리한 모습들이 시야의 사정거리에
들어와서 마음이 그곳에서 떠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서로가
비교가 되다보니 친구가 그러리라 생각한다.
한 사회가 합리적이고 법치주의라면 다른 한 사회는 비합리적이고 권력을
손아귀에 쥔 자의 잣대가 법 위에 올라 서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문화 차이가 주는 차이 점이나 인간관계의 설정이나 그 깊이나 모습자체가
요구하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그에게 이야기하였다.
한 사회가 형 동생과 누이 언니와 선후배로서 종속적인 인간관계를 우선으로
한다면 반대로 친구와 같이 우린 서로가 열 살도 약간 더 넘는 연령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도 이제는 성숙한 성인으로서 그리고 나란 본인 자신도 중년의
나이에 서로가 인생을 살만큼 살아오면서 그 성숙함으로 서로가 마주 앉아서
인격 대 인격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친구란 개념이 우선하는 수평적이고
독립적인 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적인 가치관으로 한 살 위라도 형이라고 부르는 문화라면 서구적인
가치관으로는 친구란 개념이 우선이다. 한 문화가 술과 가무로 그리고
형 동생이나 누이 언니란 호칭으로 관계를 설정하고 서로간에 마음의
장벽을 허문다면 반대로 서구문화는 분명한 가시거리와 합리성을
우선적으로 하는 관계의 설정 위에 출발이라고 바라본다.
오랜 기간 소식이 서로간에 없어도 특별한 날 서로가 전화를 주고받고
나누는 대화 속에 그리고 만남 속에 늘 잔잔한 만남은 존재하고 있다
하겠다. 뜨거움으로 서로를 좋아하고 하나의 문제로 토라져서 원수지간이
되는 그런 관계보다는 늘 잔잔히 흐르는 모습에 진정 어려울 때는 그
어려운 사람 곁에서 도움이 되는 경우 또한 인간이기에 정도의 차이뿐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더 진솔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경험상 미국
주류사회의 백인들이 우리네 한국인들보다는 훨씬 앞선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고 차가운 듯한 그들의 모습 안에는 우직한 변함 없는 잔잔함이
장점으로 있다고 바라보고 싶다.
우리네 습성은 얼른 뜨겁고 얼른 토라지고 그 열정이 금방 사그러지는
성급함이 앞서는 단점이 있는가 하면 한편 잔정 넘치는 긍정적인
면도 많고 그런 것들이 때로는 상대에게 지나친 간섭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서로 다른 문화 안에 장단점이 다 있다고 하겠다.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사이에 P 에게 전한 말은 군중 속에 고독이었다.
친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깊은
내면을 열어제치고 허심탄회한 인간적인 내면의 대화가 가능한 그런
대상이 더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사실이었다. 실질적으로 인간 존재
그 자체가 고독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외로우면 외롭다 하고 그리우면 그립다 하고 기쁘면 기쁘다하고 기대고
싶으면 기대고 싶다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필요하다는 고백 아닌
고백이었다.
양부모 여의고 자신의 인생에 더없이 소중한 친구 정신병으로 잃고서
수많은 만남 가운데 내 곁에 다가온 학창시절의 친구인 P와 처음 만나서
자동차로 함께 작열하는 눈부신 햇살 속에 달리던 그 바닷가 해안도로의
추억을 함께 회상하던 오늘 밤 요즘은 얼마나 글을 쓰느냐고 물어왔다.
도저히 무기력함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요즈음의 근황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해 10월 한 달 모국방문 동안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아름다운 손길들과 그 가슴저리고 눈물겨운 우정과 사랑과 배려를 회자
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한겨울 이미 아홉 명이나 되는 영혼들이
떠나간 빈자리를 말하면서 지금 말하는 이 순간도 영원이라 하였다.
두 번 다시 되돌 이 킬 수 없는 그 영원이란 만남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연이란 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절대적인 가치로서 소유가능한지를
이야기로서 주고받은 서로의 시간이었다. 많은 말이 오고가지 않아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그 잔정이 쌓여서 커다란 산을 이룬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과 우정의 표현도 각자가 다 그 모양이 다르다는 것과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느끼는 것 즉 절감하는 것은 산 자들 사이에
서로의 배려와 아껴주는 마음 씀씀이와 서로를 늘 마음 속에서 잊지
않고 기억하여주는 마음이 존재의 가치로서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이었다.
잠시 그가 소피를 보기 위하여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창 밖을 내다보며
스치는 상념은 나도 아버지란 존재의 그 손길이 그립고 때로는 그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싶을 때가 있고 한데 친구도 그렇겠지 그러니
양부모 다 잃고 살아가는 친구가 때론 얼마나 쓸쓸하고 힘이 들까 싶었다.
그가 돌아온 후 내게 서울에 유년의 은사님이시자 아버지이신 분이
사시고 계시다는 사실조차도 그 순간은 친구 앞에서 사치로 생각되어서
더없이 할말을 잃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도 나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인간이기에 충분히 내가 느끼는 인생의 그 쓸쓸함과 우수를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P, 나도 때로는 아버지가 계시다면 기대어보고 싶고 의지하여보고 싶고
한데 너도 그렇겠지......다만 성인이기에 이성으로 그 그리움과 마음을
절제하고 나이만큼 성숙한 처세를 하여야 하기에 하는 것뿐 너도 외롭겠지.
너에게 그 아버지 자리와 형 자리와 친구의 자리를 함께 지켜주고 싶어.
네가 외롭고 힘들 때 네 곁에서 위로가 되고 네가 아버지 품안이 그리워
기대이고 싶을 때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보듬어 주고 끌어 안아주고 싶고
우리 모두가 죽으면 그 순간부터 인간이기 전에 영혼이 떠난 물체란 존재
일뿐이지 그러기에 살아 있을 때 더 배려하고 보듬어주고 싶고 한 번이라도
더 따스하게 손잡아주고 싶고 하지. 죽어 묻히면 부패하고 썩고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니까. 죽음 이후는 또 다른 차원의 신앙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이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나 역시 친구를 잊어 본적이 없어.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벗이라고 생각하니까. 나 역시 어떤 환경의 변화에도
친구를 잊을 수가 없지. 결국은 순수하고 정감이 넘치기에 다들 친구를 아끼는
것이 아닐까.......근데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무엇인데.......친구하고 우리 같이 언제 시간이 나면 같이 긴 여행을 하고
싶어.............내 바램이거든...........친구 말대로 우린 서로가 많은 말이 오고가지
않아도 충분히 함께 하는 시간과 가슴으로 서로를 느끼고 그 우정에 변함이
없다 생각하고 믿어. 우린 영원한 친구이니까.............우리 언제 알래스카로
같이 여행을 하고 싶어. 허나 우선 우리 가까운데 하루고 이틀이고 같이
여행을 가까운 시일에 가고 싶은 데.....가서 와인도 한 잔 같이 마시면서
대화도 나누고.............워낙 우린 서로가 바쁘게 살다보니 아쉬워"
"그래 그럼 직장에 잠시 내가 휴무서를 내지.........그리고 금요일 날 떠나자.
바닷가로 가서 해안선도 산책하고 자깅도 하고 밤이 깊도록 속에 있는
못다 한 이야기 다 토해내고 그 날은 너에게 형이자 아버지 자리를 내가
지켜주지 그리고 친구로서 말이다. 우리 봄이 오면 부활절이 지나고 가던지...."
"이제 자리를 떠나자.....내일은 너도나도 출근하여야 하니까..
다음주 목요일에 다시 만나자. 몸살난 J하고 S에게 내가 전화하여서
위로하여줄게........."
잠시 후 자리를 떠나 밖으로 나오니 밤 공기는 차가워서 몸이 떨릴 정도였다.
그러나 서로간에 진솔함이 있기에 결코 밤 공기가 차갑지 않았다.
순간 기다리란다...........그가 생일 선물 미리 건넨다며 은박지로 포장이 된 것을
건넸다. 순간 옆에 세워진 그의 차안으로 손수 만들어서 듣고 있던 시디를 나는
건네주었다. 그리고 먼저 그 자리를 떠나오면서 어둔 밤을 헤치고 그를 뒤로하고
귀가하였다. 그의 진솔한 푸른 소나무 같은 그 우정은 절대로 물질로 가늠은 물론
환산할 수가 없는 귀하고도 소중한 인생 그 자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의
요소가 아닐 수가 없다.
서로가 상당히 다른 개성을 소지하고 있 것만 우리는 만나면 서로가 많은 말이
오고 가지 않아도 함께 하는 시간들이 충만하고 편안하고 안온함에 서로를
존경하고 배려하는 따스함이 있어서 좋다. 좋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서로를
생각하고 나누어주고 싶고 그리움을 가슴 한 켠에 늘 간직하고 살아가는
여백을 키워주는 늘 변함 없는 그 온유함과 애틋함이 있어서 소중하다.
이 밤 친구는 그 먼 거리를 잘 운전하고 해안도로를 따라서 집으로 돌아
갔으리라 지극히 높으신 분은 그의 순수함과 인간적인 모습을 긍율히
바라보시고 계시리라. 이 소중한 인생의 진솔한 벗 한 사람으로 수 없는
오고가는 인연이 없고 있다 한들 결코 내 인생은 외롭거나 쓸쓸하지만은 않다.
다만 충만하고 존재의 이유를 매일 매일 내 앞에 진솔한 화두로서 제시하여
줄 뿐 이다. 봄이 오면 친구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는 짧은 외출을
여정으로서 그의 바램대로 만들어 주고싶다. 인생의 진솔한 친구 그리고
만남과 그 인연은 詩語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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