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영혼 - 이성선
영혼이 깨끗한 사람은
눈동자가 따뜻하다.
늦은 별이 혼자 풀밭에 자듯
그의 발은 외롭지만
가슴은 보석으로
세상을 찬란히 껴안는다
저녁엔 아득히 말씀에 젖고
새벽엔 동터오는 언덕에
다시 서성이는 나무.
때로 무너지는 허공 앞에서
번뇌는 절망보다 깊지만
목소리는 숲 속에
천둥처럼 맑다.
찾으면 담 밑에 작은 꽃으로
곁에서 겸허하게 웃어주는
눈동자가 따뜻한 사람은
가장 단순한 사랑으로 깨어 있다.
North Carolina Charlotte 공항에서 두어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창가에 앉아 가을비 내리는 활주로를 바라보며 모리
교수님 그 자신의 절실한 생의 순간에 사랑하는 제자 미치와
엮어나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을씨년스러운 창 밖의 정경보단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숭고함에 가슴이 따듯하여짐을 느꼈다.
모리 교수님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여성백인 세 명이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점심으로 간식을 들며
몸이 부대한 중년의 여성이 자신의 건강문제에 대하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심장에 페이스 메이커를 하고
있었고 그녀들의 대화 내용 역시 자녀들 이야기들이었다.
그때 저 만치 공항에서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볼 수가 없는
왼 동양인 부부가 다가오는 것이 아니던가.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에 지성미가 있는 한 여성과 남편인 듯한 한쪽 다리가
짧아서 장애자로 높은 구두로 양다리의 높이를 조절한
인자한 모습의 중년인 그들이 저만치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순간 얼굴 생김새로 보아 직감이 한국인 부부이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인이든 손에 왼 한국어로 된 책이 들려
있었다. 순간의 묘한 감정이라니..........
드디어 탑승시간이 되어 개인전용 비행기 같은 작은 시골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하니 이번에도 거의 맨 뒤쪽
창가에 배정이 되었다. 가을비는 비행기 유리창문을 두드리고
있는 동안 비행기는 구름을 뚫고 이륙하여 아득한 하늘가를
나르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기내를 둘러보니 모두 승객이라곤 18명이 전부였고
한국인 부부는 어느 불교 스님이 쓴 책을 저만치 앞줄에
앉아서 열심히 읽고 있었다. 기내 방송을 하는 흑인 여성의
유머와 재치가 기내를 폭소의 도가니로 몰고 갈 때쯤
창 밖으로는 전형적인 미국 시골 가을 정경이 시야에
단풍져 들어오고 있었고 어느덧 비행기는 채 반시간도
되지 않아서 테네시주의 브리스톨 공항에 도착하였다.
소형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청사로 걸어 들어가니 보안
검색을 한 쪽에서는 삼엄하게 하고 있었고 출구를 나서니
지난 6년 동안 그토록 서로를 그리워하던 홈즈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던가. 홈즈 가족의 수장 60대 중반의
죠지 형님이 손을 흔들고 반가워 다가와 포옹으로 맞이
하며 인사를 나누는 동안 예의 한국인 부부는 저 만치서
걸어나오고 있었고 짐을 찾아서 공항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남편 되는 분이 우리 쪽을 바라보면서 미소로
답하면서 유유히 서로의 차있는 곳으로 멀어져 가는
순간이었다.동양인이 없는 이 시골에서 무엇을 할까
왜 그들의 뒷 모습이 그리도 쓸쓸해 보이던지.....
버어지나아의 가을은 맑고 청명하고 고향 캘리포어니어처럼
온화하고 따듯한 날씨에 가로수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있어 비가 내리고 우중충하던 샬롯 공항이나 차가운 가을
공기가 감돌던 쉬카고 오헤어 공항의 가을과는 또 다른
날씨였다. 50개의 나라가 합중국으로 연합된 모습이나
다름없는 대륙이니 어찌 기후가 변화무쌍하지 않으랴 싶었다.
일단 시골길을 달려가다 그전에 가끔 들리던 Abingdon에
있는 식당을 들어가 저녁식사를 마친 후 옛 근무지 작은
산골 동네 남북전쟁당시 남부군의 수도였던 Saltville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첫날 밤 우리는 죠지
부쉬와 잔 케리의 대선전을 바라보며 누구를 찍어줘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홈즈 가족들은 부쉬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자신으로서는 이번처럼 후보자를 놓고
누구를 찍어야 할지를 몰라 난감한 적이 일찍이 없었다.
그동안 자식처럼 사랑하던 푸들 한 마리가 죽어 화장되어
귀한 골동품 유리함에 담겨져 응접실 장식장 안에 놓여
있었다. 그뿐이랴 온갖 골동품 자기와 보석들과 시계들을
전형적인 백인들 취미대로 수집하여 놓고 있었고 때론
시골장터에 가서 심미안으로 단 몇 푼에 18세기의 미국
골동품들을 수집하여서 e-bay에서 경매를 하여 짭짤한
재미를 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하늘을 향하여서 쭉쭉 곧게 뻗은 나무 한 그루에 시가
300불을 홋가 하는 수목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숲과 산등성이는
홈즈의 대가족들이 지켜온 자신들이 땅이요 고향이다.
숲 속에 그늘진 나무 밑에서는 산삼이 자라고 있었고
작은 개울이 흘러간다. 가장 아름다운 단풍이 이미 지고
裸木과 남은 가을을 담고 있는 산장과 그 주변경관이
길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처럼 그 부모님들이 사용하시던
고가구인 침실에 놓인 침대에서 첫 밤을 보내고 이층
양지바른 창가에 위치한 욕실과 화장실을 개인용으로
배려를 받고 백포도주로 첫 밤을 맞이하며 그동안 밀렸던
그리움의 회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머무는 동안 시골 장터의 골동품이나 한국 같으면 처치
곤란으로 밤에 몰래 동네 어귀 어느 공터쯤에 내다버릴
그런 물건들 아니 쓰레기들만 어마 어마하게 큰 창고에
모아 놓고 점포를 수 십개 열어 일반소비자에게 귀하게
수집 품으로 때로는 경제적인 용도로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모아 놓은 곳을 구경 다니기도 하면서
미국 속에 보편적인 백인들의 검소하고 알뜰한 당신의
살림살이를 구경도 하고 많이 보고 느끼고 또 생활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산간지역으로 고립된 지역이라서 이곳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아직도 초창기 건국시대 청교도들의 영국식
영어발음이 사투리에 남아 있는 곳이어서 얼핏 런던이나
영국 어드메쯤 있는 곳으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은어 또한 이방지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한 두개가 아닌 곳 이튿날 저녁은 아주 초창기 식민지
풍의 냄새가 짙은 "Town Hall Grill"이란 식당에서
훌 코스로 저녁을 하게 되었다. 아주 아늑하고 고풍스런
곳 건국초기 시대의 복장을 하고 서브를 하는 웨이터와
웨이츠레스 매니저 저 만치에는 이름도 모르는 하원의원이
앉아 있다고 죠지 형님이 말을 건네주신다.
커피에 넣는 크림이 한 방울만 테이블 위에 떨어져도
정중하게 다가와서 닦아주는 곳 이제는 너무 오랜만에
다니러 오지말고 자주 좀 방문을 하라고 권유하는
홈즈 가족의 수장 죠지 형님 다음에 언제 오면 4 - 5 시간을
고속도로로 가야하는 Richmond에 있는 더 멋진 식당을
가서 우아하고 고풍스런 분위기를 즐기러 외출하자고 한다.
깔끔하고 정갈한 분들 이곳으로 이사와서 남은 인생
살고 싶지 않느냐고 하신다. 100% 백인들만 사는 동네
아침을 먹으러 가던 식당 주인의 자녀들이 우리
동네 근처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근무한다나 하면서
너스레를 떨며 서부에서는 꿈에도 생각도 못하는
전형적인 미국 시골 아주머니의 제대로 된 아침을
만들어 주던 후한 인심 그리고 음식 맛 영어바다
속에서 살고 자고 일어나고 마시고 먹고 때론 홀로
산 속의 가을이 깊이 내린 숲 속의 길을 산책하기도
하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떠나기 전날 밤 자신들이
운영하는 골동품 가계에서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말하라는 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잔잔한
우화의 강을 함께 흐르는 귀한 시간과 만남 이외는
그 어느 것도 없었다. 무슨 욕심을 부리랴 싶었다.
떠나는 날 아침, 이층으로 불러 올리더니 어느 할머니가
선물로 만들어준 귀한 것이라면서 누비이불을 돌아가는
길에 고향 캘리포어니어로 갖고 가야 한다는 엄명에 비닐
봉지에 담아서 아래층 응접실에 내려놓고 이번에는 잡다한
보석반지들이 가득한 보석함을 열어 보이더니 온갖 각기
다른 다이어몬드부터 에메럴드 루비 등등으로 만든 것과 골동품
손목시계를 내보이면서 일반 무채색의 다이어몬드와 쵸코렛 색이
나는 다이어몬드로 만든 반지를 꺼내주며 손가락에 끼어보란다.
보기가 괜찮다면서 마음 담아 선물로 주고 싶으니
집에 가는 길에 끼고 가란다. 아니 내가 이런
다이어몬드 반지가 뭐에 필요하냐고 반문을 하니
그래도 주는 정이니 남은 날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갈 정을 생각하여서 받으라고 강권을 하다
싶이 하여서 감사하게 받고 귀하게 간직 하겠노라며
짐을 챙겨 산길을 내려와 반시간 정도를 달려
마지막으로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아침으로 식사를 하고
공항에 도착하니 햇살이 밝았다.
이별의 아쉬움에 더 있다 출구를 나가라고 잡고
또 잡고 드디어 떠나 시간 공항 보안 검색 대에서
캐나다 몬트리얼에 있는 언니 네를 다녀오면서
직장에 브리지다가 선물로 사다준 캐나다 국기의
단풍잎이 새겨진 손톱깍기가 걸리고 말았다.
수화물에 다시 집어넣던지 아니면 자비로
우편으로 집으로 부치고 가던지 아니면 포기하던지
하란다. 기꺼이 포기하겠노라고 선언 후에 검색대를
빠져나와 비행기에 오르는 동안 홈즈 가족은
비행기 이륙을 보고서야 떠나겠다 한다.
이륙을 하는 동안 저 멀리 이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다보고 있는 많은 이들이 육안으로 아련하게
들어왔다. 샬롯에서 비행기 기다리기를 몇 시간
드디어 어둠이 내린 이륙 후 후반 부분을
향하여서 모리의 이야기를 읽어 가는 동안
Forgiveness/용서란 부분에서 어두운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지나온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의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던 먼저 가신
낳아주신 아버지를 아련하게 회상하면서
비행기 뒷좌석 두 번째 줄 창가에 앉아서
흐느껴 울고 또 울 수밖에 없었던 시간은
모리 교수님이 내게 가르쳐준 하나의
인생에 교훈이었다. 그 아버지를 이젠
진정 용서란 어휘 안에 부여안고 진정한
사랑으로 남은 자신의 인생에 함께 더불어서
살아가는 길만이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평생에 모리 교수님이 가르치시던
미국 동부의 명문 브랜다이스 대학 그 학부
그분 밑에서 공부하는 아름다운 추억이나
영광은 없었을 지라도 사랑방을 통하여서
인생여정에 지성적인 해후의 한 단원을
열어주시고 깊은 인생의 지혜와 삶을
관조하는 계기와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 "Tuesdays with Morrie"를 귀한
선물로 건네주신 뭉치 형님과 그동안
부족하기 그지없는 잡기에 불과한 부족한 자의
글을 읽어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로서 이 글을 맺고 싶다..........
살아가는 동안 회의와 허무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자신은 모리 교수님을
찾아갈 것 같다. 제자이자 아들 보다
더 아들다웠던 미치와 그에게 진실한
인간적인 감동과 숭고한 사랑의 고백이
담긴 아버지 자리에서 생의 지혜를 읊으며
내 인생에 다시 자식을 갖게 된다면
너 같은 아들을 갖고 싶다고 미치에게
눈물어린 고백을 하시던 아름다운 지성
모리 교수님을 추억하는 낮 모르는
이방인의 넋두리를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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