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그 사색의 오솔길을 산책하면서
더위가 조금 수그러드니 그래도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어 다행이다
싶은 하루 근무를 맞추고 퇴근하자마자 겨우 옷을 벗어 걸어 놓고
음악이 흐르는 오솔길을 이 깊은 밤 홀로 산책하고 있다. 정말 센스만은
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는 님… 브람스 이야기를 하자마자 퇴근 후 사이버
마실을 가보니 턱 하니 이 한 영혼을 위하여서 배려 깊은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이라도 하듯 귀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올려
놓으신 것이 아니던 가.
아……………………감동이여……………………
오래 전 불의 사고로 요절한 독보적이었던 프랑스가 배출한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Ginette Neveu의 연주와 Issay Alexandrovich Dovroven이
지휘한 런던 필하머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제는 구하기도 거의 불가능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귀한 분의 사이버 오솔길에서 홀로 조용히
자유를 만끽하며 하루 일과의 피곤을 뒤로하고 감상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음악이란 매개체 하나로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면서 함께 사색의 오솔길을
산책할 수 있씀이 어찌 잔잔한 일상의 눈부신 기쁨과 감동과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해가 갈수록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지 때론
지금처럼 위의 세 줄을 쓰면서도 몇 번을 지우고 쓰고 고치고를
하는지 모르겠다. 우선 가장 큰 어려움은 문장에 부사 형용사를 쓰면서
뒤바꾸거나 문장 자체를 뒤틀어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자판기를 두드리는 동안 손가락은 문장을 만들어 가면서 엉뚱한
문장을 만들어 가고 있어 때론 스스로 짜증이나 쓰는 것 조차 포기하고
싶어진다.
가장 어려운 것은 모국어를 일상으로 사용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는
핸디캡과 더불어 문장을 모국어로 써 내려가는 동안 영어 식으로 문장을
쓰고 있씀을 한참 쓰다가는 느끼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기를 ‘지금 뭐 하고 있지’ 이러고 사는 것이다. 눈만 뜨면
모국어를 하고 모국어로 일상을 살아가고 모국어로 하루를 마감하면
이런 문제는 결코 없으리라 생각한다. 눈만 뜨면 농담과 말 그리고
생활 모두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시작해 영어로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는 하루란 모국어를 의도하지 않더라고 표류하게 만든다
벌써 자고 나니 하루가 갔고 출근할 시간이 다가온다.
출근 전 그리움에 멀리 쉬카고로 형한테 전화를 하니 대화 도중에
형이 전화를 할 테니 끊으란다. 형은 언제나 그렇게 동생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 형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조금은 이 나이에도 설레인다.
3년 전 우리가 같이 산책하던 10월 세 번째 주의 노랑색으로 물들었던
숲과 빈들 그리고 찾아간 가을이 드리웠던 형을 낳아주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지를 이번에 가면 공항에서 곧 바로 찾아 가기로 하였다.
이유가 없다. 그러고 싶다. 형도 동생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셀레인다고 한다. 형에게 이 가을에는 말러 교향곡들과 바흐 음악들과
브람스 음악과 흘러간 잔잔한 음악들을 들려주고 싶다. 사람이 살아가며
밥이나 먹고 배설만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 가? 인생에는 그 이상의
알파와 오메가가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인지하는 바가 아니던가.
세월은 순식간에 저만치 표류하고 젊음도 인생도 저만치 표류한다.
그렇다면 인생을 알차고 꽉차게 충만하게 살아가고 안 하고는
살아가는 인생 각자의 몫이다. 어떤 가치관과 어떤 시각으로
각자 인생을 바라보고 추구하는 그 목표가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가 하는 것 또한 진지하게 우리 모두가 적어도 생각하여 할
부분이다. 인생을 그냥 진지한 생각 없이 살아가기에는 아깝다
아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젊음도 인생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
유한하기에 우리는 진부한 인생을 생각하고 추구하며 노력하며 스스로
교양을 쌓는 자아발견과 자아인식이 필요하다.
인생에 진부한 인연 하나 쌓아 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살아 볼만한 가치부여가 가능하다. 만들어서 보내준 음악 CD 하나에
감동하는 마음과 불현듯이 음악을 듣다가 만들어준 사람이 그리워
전화자동응답기에 메세지를 남기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대화는 충분하다.
구태여 입을 열어 나누는 이야기만이 대화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로 양보다는 질적인 진부한 우정이 필요하다.
내면을 함께 나누고 서로에게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는 진부함 존재의
의미 부여가 가능한 만남이 필요하다. 아니고서야 인생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온다. 가을 남자
브람스와 말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진부한 그들의 지성과
이지와 고뇌와 철학이 담긴 작품을 만나는 가을이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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