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가을과 겨울 시인의 메모에서

붓꽃 에스프리 2007. 11. 21. 07:33

독일 라이프찌히에 있는 성토마스 교회와 바흐 동상 

 

 

이제 가을이란 이름이 무색하도록 초겨울을 알리는 첫눈 소식이 간밤

여기저기 통신상에 눈꽃처럼 피어나 성큼 그리고 문득 불현듯이 겨울을

발 밑까지 난데없이 데리고 와 체감온도가 영하로 저만치 내려가 있어

마음조차 움츠러들고 시인의 메모처럼 영혼의 빈 공간에 쌓인 낙엽들이

부토가 되어 긴 동면의 시간으로 침잠하는 시간의 시작이다.

 

봄이오면 영혼의 裸木 위에 여기저기 아름다운 새싹들이 다시 돋아나듯

사색조차도 인생이란 창가에 새로운 서정으로 봉우리를 피워내는 날들을

위하여서 낮고 겸손한 정신들은 더욱 그 몸을 움츠려 낮추고 높이 있는

것들은 그 기개를 더 높이기 위한 상념과 사색의 결빙을 위한 연가를

오롯이 암송하며 눈부시고 예리하며 차가운 이성의 파란 하늘가에

자리하고 있는 영혼의 산정으로 오르는 계절이다.

 

간밤 유년의 은사님이셨던 우리 아버지가 그리워 서울로 수화기를 들었다.

전날 밤 첫눈이 왔다는데 오일 값은 다락같이 올라가 미국이고 한국이고

서민경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버지는 물론 막내동생의 안부도 궁금하였다. 늘 온화하신 우리 아버지

네 동생도 잘 있고 나도 잘 있다. 그런데 눈이 다시 오려는지 하늘이

잔뜩 흐렸다하신다.” “아버지, 여기는 안개가 잔뜩 끼어서 운전하기가

곤란하고 추워서 겨울 옷을 입고 있어요.”

 

잠시 그리움의 닻을 아버지란 이름의 항구에 내려놓았다.

밤이 깊어 창 밖 가로등 밑으로 안개가 뽀얗게 자리를 하고 있었다.

한잔의 적포도주와 잔잔한 음악과 더불어 삶과 일상의 뉘앙스가 그리운

깊어가는 시간과 강물처럼 흘러가는 덧없는 순간 그 영원에 서서

먼 남반부 초록빛 바다와 파란하늘의 정기를 머금고 초록빛 포도원에서 자란

호주산 와인을 열어 손에 들고 체리 핑크의 맘보와 더불어 순간

조정권 시인의 주옥 같은 시어의 집합체 <산정묘지>와 동인문학상과

대산문학상에 빛나는 4.19구 세대로 월남전 참전용사인 작가 이윤기

그분의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못한 그 꽃>을 만나본다.

작가는 아직도 전쟁의 상흔에 옛 전투 장을 찾아가 역사의 비극과

그 흔적을 되밟아가는 순례기와 어우러지는 밤의 에스프리 그 자체만으로도

잔잔한 이름 모를 그리움의 흔적이다.

 

이 아침 한 잔의 향내 가득한 한잔의 커피 위에 잔잔히 쇼팽의 장송곡과

역으로 서로 띠가 맞지 않는 체리 핑크의 맘보를 들어보는 맛이란 파블로

카잘스의 바흐 첼로 소나타와 더불어 충분히 행복을 가슴에 안겨주고도

남는다 하겠단. 간밤의 뽀얀 안개는 거치고 창밖에는 눈부신 햇살이

손짓을 하고 있다. 신나게 한번쯤 훌러에서 스텝을 밟아보고 싶은 뜨거운

느낌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린다. 인생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유한하기에 열정이란 삶의 에너지가 없이는 살아가기에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싶다.

 

간밤 잠시 볼일이 있어 서울에 나가 계신 60중반을 막 넘으신 노신사

한 분에게 전화를 드리니 첫눈이 와서 처음으로 밟아도 보았고 그 느낌을

가슴에 담아도 보았다 하신다. 소주도 한잔 하시고……

아니 갑자기 소년이 되셨나요………………”

, 그럼 다 늙은 노인네 티를 내고 가만이 있어야 옳겠니………

삶의 열정과 멋이 없으면 어찌 우리가 살아가니 그건 말이야

나이와 관계가 없는 일이다……야 그러지 마라야……….

아 그런데 지금 그렇게 좋아하시는 체리 핑크의 음악 맘보를 듣고

있지요. 들리세요…………한잔의 적포도주하고……………”

곧 돌아 갈 텐데 기다려라 나도 좀 돌아가 듣고 바닷가 해안도로

따라서 다시 가자꾸나 지금도 하늘은 잔뜩 흐려 눈이 또 온다는구나.”

억센 이북 평안도 사투리 억양으로 한 마디 하신다.

 

년 말이 곧 다가오고 추수감사절도 코앞에 와 있다.

그러나 그 시간에도 병상에서 가난으로 사회의 저변에서 신음하고

고통 하는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오늘의 이 모든 시간과

갖고 살아가는 작은 축복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감사하는 생활을

깊이 사색하지 않을 수 없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기본적인 마음의 밭이 있어야 영혼을 일궈나가리라.

살아가노라면 외롭고 고독에 지친 이웃들이 우리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고독과 무관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우리 일상에 있을까……………

돈이 없으면 땀과 노력으로 노동을 신성하게 하면 될 것이요

배가 고프면 또한 두손과 두발로 열심히 일을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고독과 외로움과 소외는 누군가의 따듯한 영혼의 손길과

시선과 관심과 배려가 때에 따라서는 요구되는 일이다.

 

지난 1년을 어떻게 살아왔나 결산하고 뒤돌아보며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첫눈의 그 설레임도 잠시 이제는 긴 겨울의

동면으로 들어가는 시간 낙엽도 다 지고 발 밑에 바스락거리는 소리뿐

가난한 이웃들과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서는 더욱 더 낮은 정신으로

침잠하여야 한다면 높은 이상과 기개를 위하여서는 더욱더 높이 결빙을

위한 연가를 불러야 할 때이다. 흐르는 바흐의 첼로 소나타가 겨울이

발 밑에 다가왔씀을 한잔의 커피와 더불어 알려준다.

 

"어느 시인의 메모를 겨울의 초입에 내려놓습니다

 

"영혼의 빈 공간에 쌓인 낙엽들이 바스락 바스락 거릴 때입니다.
낮은 것들은 더욱 몸을 움츠리고

높이 있는 것들은 더 높아지기 위해 결빙의 노래를 암송하며

산정으로 오르고 있는 계절입니다.

올해들어 가장 낮은 기온을 수은주가 가리켰다고

보도된 것을 증명이라고 하려는 듯
바람이 차갑게 불고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화롯불 하나 피워놓고 갑니다."

 

 

산정묘지  2

-      조정권

 

나는 말을 하러 왔지만 침묵만 지르고 말았다.

山頂이여,

내가 新婦의 눈으로 찾아냈던 너의 첫 글자여.

거기서 나는 다시 태어나고 움트면서

너의 언어에 깃들고자 하였다.

씨앗들이 부풀은 흙을 발바닥에 익히면서

너의 언어와 생리를

낯선 이국어처럼 흡수하고자 하였다.

허나 그것들이 무슨 소용에 닿았단 말인가

그것들은 이미 내 귀를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하나의 씨앗이 품고 있는 조그마한 기쁨과

거기 예비되어 있던 주검.

내가 영혼의 귀로 듣던

나무 뿌리들의 은밀한 대화,

그것들도 이제 바람소리처럼 내 귀를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말해보라, 내가 출발해서 도착한 지점을.

해와 달과 그릇 그리고 지상의 열매와 같이

태초부터 원형을 지향해 온것들.

씨앗으로 출발한 한 알의 곡식조차

태초의 원형을 지향하지 않았는가.

태초의 원형으로 회귀하지 않았는가.

말해보라, 내가 도착해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지점을.

폭포를 거슬러 타고 오르며

상류의 출생지를 찾아가 필사적으로 알을 낳고 죽는

연어처럼

결국은 나로부터 출발하여

나로 다시 회귀하는 필생의 여정.

그렇다, 모든 도착점은 최초의 출발점.

어디가 빛으로 滿開하는 太虛空間인가.

저 아래 굽어보이는 도시여, 늙어버린 피부여.

삭발해 버린 땅

삭발해 버린 바위산의 空寂, 그 속에다 너의 언어를 解産하라.

내가 가진

이 만성 기력상실의 수문장의 팔뚝과

의지박약의 槍을 버리게 하라.

명령하라.

칠십먹은 주름살의 언어를 나의 언어에서 버리게 하라.

나와 나의 언어들을

자석처럼 몸을 붙이게 하라.

허나 지금은 쇳덩어리 같은 사방의 어둠.

밀려오는 쇳덩어리 같은 어둠.

壓殺되는 쇳덩어리와 쇳덩어리의 침묵.

한밤내 무력한 출혈.

누가 이 한밤중 쇳덩어리 속에 피와 신경을 통해놓을 것인가.

누가 이 한밤중 쇳속에 깃든 천근 침묵을 깨우며 應戰하겠는가.

누가 이 한밤중 땅속 깊은 鑛石의 혈관을 터뜨려

우리들의 어둠 속에다 낭자히 수혈해 놓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