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11월 그 저녁에> 에스프리

붓꽃 에스프리 2007. 11. 27. 07:47

 

Paul Gauguin

 

창밖에는 초겨울바람이 윙윙거리며 불어와 창문을 흔들고 스쳐 간지도

몇 날이 되었다. 잠시 쇼팽의 낙턴과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에서

백조>에 기대어 20세기 인상파 화단의 대가 클로드 모네의

설경 그림 속으로 마종기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손에 들고

산책을 나선다. 가다가 지치면 영혼의 오두막집 문을 열고 들어가 적포도주

한 잔 위에 맛나는 우아한 고급 빵이 아니어도 좋으니 싸구려 빵을 한입

입에 물어본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눈부신 태양과 비바람의 찬가를 들으며 오롯이

자신을 길러낸 자연의 섭리와 신성한 노동 위에 우리 식탁에 오르는

빵 하나의 의미를 가슴에 새겨보는 것과 그런 사색의 시간들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진실을 위한 모습 중에 하나가 아닐까 

 

빵 하나의 의미와 노동의 신성함 얼마나 소중한 일 인가

요즘처럼 지구온난화로 일기를 예측하기 힘든 세상에 비가 필요한데도

비는 오지 않고 이 겨울에도 가뭄으로 눈도 제대로 오지 않는다는

멀리 버어지니어 산골 오두막집의 소식들 하며 우리 지방도 가뭄과

화재로 인한 피해에 몸살을 앓고 있다.

 

비가 필요할 때 비가와야 곡식도 잘 자라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고

눈이 와야 겨우내 산골에 쌓였다가 봄이오면 녹아내려 작은 개울물도 이루고

강물로 흘러가 식수도 되어주고 논밭에 곡식의 목마름을 축여주고

고기들의 수영하는 놀이터도 되어주고 산과들에도 아름다운 들꽃들과

나물들을 자라게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올 한해도 중국대륙에도 이 광활한

북미대륙에도 각 지역마다 비나 눈이 제대로 오지를 않는 것은 물론이요

북극이고 남극이고 만년설만 녹아내려 빙하에 노르웨이 선적 유람선이

요 몇 일전 부딪쳐서 좌초하여 타이태닉호처럼 상황이 전개되어 승객들을

구조하는 일이 발생하였다는 뉴스만 들려온다.

 

지나친 문명의 이기와 발달로 인간들의 분별없는 자연파괴는 지구환경의

오염으로 황폐화 되어가고 있고 우리는 그 값을 이제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상기온과 각종질병으로 신음하고 한쪽에서는 아직도 기아로 신음하고

있는가 하면 조상 덕으로 넘치는 부와 방종으로 전세계 뉴스미디어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로 넘쳐나고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이 불균형의

연속이다. 앞으로도 지구와 인간의 문명이 존재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한은 방종과 방탕으로 타락하였던 도시 폼페이의 최후처럼 그런 시대의

방종도 있을 것이다.

 

늘 일상을 살아가면서 잔잔히 침묵 속에 늘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인연 하나 그가 불현듯이 가을을 상자에 가득 담아 갖고 어르신을

뵙겠다고 찾아 왔다. 지팡이도 손수 만들어다 드리고 일년 내내

뒤뜰에서 자란 대추를 눈부신 햇살에 말리고 감나무에서 감을 따 갖고

상자에 담아서 다시 가을을 전하고 바쁘다며 급히 따듯한 마음을 남기고

11월 끝자락에서 황망히 그렇게 뒷모습을 보여주고 그리움 한 자락

잔잔히 남기고 떠났다.

 

그가 떠나간 자리에는 브르흐가 작곡한 유대인들의 음악인 Kol Nidrei

Op. 47 Mischa Maisky의 연주로 흐른다. 이제는 말을 할 수 없는

아니 하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두고 침묵으로 조용히 있고 싶은

날들의 잔영들이 오우버랩 되어 울컥 이 음악에 담긴 추억과 더불어

눈물이 쏟아지려한다. 이제 곧 11월도 떠나가고 그 운명의 12월이

다가올 것이다.

 

추억은 아름다워야 한다면 때론 추억은 잔인한 아픔과 슬픔이기도 하며

상처를 치유 받는 날이 세월이란 강물의 흐름과 더불어 언젠가는 오리라.

우리들 주변에는 행복한 이웃들도 있다면 슬픔과 아픔의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얼마나 많은지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에 한 사람으로 제네바 국제 음악경연대회의 심사위원이었던

Alfred Cortot가 새로운 음악의 시인 Liszt라고 추앙하던 이태리가 배출한

수도자로서 연주자였던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의 연주로 들어보는

 “La Campanella” 창밖에 눈부신 햇살과 더불어 가슴을 파고든다.

 

거리마다 피어나는 크리스마스 장식들 언제 또 이만큼 세월이 흘렀나

싶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살다가 병고와 생활고에 자살하였다는

들려오는 슬픈 소식들 그 바람이 뭔 바람인지 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말초신경의 자극적인 유혹들에 팽을 당하고 조강지처와 자식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은 인생 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본인이 아니니 어찌

남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을 하리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성경책

위에 손을 얹어놓고 선서를 한 그 마음의 순수는 어데 갔는가 이다.

아니면 주례사 앞에서 서약한 그 마음의 정결함은 어데 가 실종되고

정도를 벗어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가 이다.

 

이제는 용서와 화해가 부재된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네가 나를 배신하였으니 이제 맛 좀 보아라 하는 시대에 산다.

직장 동료인 그녀의 남편도 가정은 둘째고 친구와 죽자살자 어우러져

술마시고 제 어머니뿐 이고 마누라와 자식은 안중에도 없다며 이를 간다.

그래 너 45세까지만 내가 자식들 보고 참는다 두고 보자는 식으로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 우둔한 남자들이란 때론 나중을 생각못하는듯 하다.

 

그녀가 예전처럼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자식들 생각하여서 모든 것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시대의 여성이 아님을 망각하고 때론 이와 같이

절제를 내팽개치고 세속에 젖어 살아가는 꼴이란 가관이다 못해

무아지경이다. 나중에 마누라인 부인으로부터 보기 좋게 내팽개쳐지는 날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따듯한 밥 한 숫가락이라도 얻어먹고 등 따습게

살아야 한다면 가정을 하늘처럼 지켜야  함을 순간이라도 망각을 하여선

아닌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젊음도 영원하지

않은 것 또한 망각하고 있다.

 

배신은 배신과 복수의 칼을 세우게 만드는 것이 인간의 속성임을

왜 모르는가 신문지상에 회자되듯이 바람을 피우고도 당당히 큰소리를

치는 이 시대의 여성들과 남성들 이라면 한번쯤 진지하게 인생이란 것과

가정이란 의미의 진실을 심도 깊게 생각할 여지가 있지 않을 까 그리고

그 진실된 모습에 자신을 비춰보며 자아성찰을 하여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결혼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양심으로 한  영혼의 서약을 배신하는

행위만큼 가장 비인간적이고 가장 무지하고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이며

악의적인 것이 있을까자신에게 최소한 양심적이고 윤리와 도덕의 잣대를

당당히 댈 수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11월도 몇일 남아 있지도 않다.

 

 

11월 그 저녁에 – 양희은 

 

누구를 부르듯 바람이 불어오면
나홀로 조용히 노래를 불러본다
잊어버린 먼 친구들을
찾고 싶은 먼 얘기들을
내 작은 노래를 불러본다

꿈꾸듯 아득히 구름은 흘러가고
떠나간 친구의 노래가 들려온다
산다는 것이 뭐냐하던
사랑이 모든 것이냐던
누가 내게 대답해주려나
인생.. 참 어려운 노래여라

비가 내릴 듯 젖은 바람 불어오면
지나간 날들의 내 모습 떠오른다
되돌아 갈 수 없는 시절
되묻지 못할 너의 얘기
말없이 웃어야 했던 날들

서러워 우는 듯 나직이 비 내리고
쓸쓸한 미소가 입가에 스쳐간다
나의 어제가 그랬듯이
나의 오늘이 이렇듯이
혼자서 걸어가야만 하는
인생.. 참 외로운 여행이어라

 

츨처 - 안단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