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오늘 따라 지난날의 흔적을 뒤져보고 싶어졌다.
아뿔사 낙서 1편이 저장해둔 훨더에 없는 것이었다.
순간 아찔했다.
열병을 앓던 시절에 썻던 낙서 가운데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인터넷과 하드 디스크를 다 뒤져도 찾을 길이 없었다.
속된 말로 미칠 것만 같았다.
잠시 마음을 가라 앉치고 기억을 더듬어 한국을 배우기 위해 지금은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서 정착하여 살고 있는 이름도 잊어버린
누군가의 도움으로 크리스마 선물로 받은 컴퓨러와 더불어 처음으로
인터넷을 하던 초창기에 몸을 담았던 옛글방을 찾아 나섰다.
간이 두근반 세근반 하는 순간 열어보니 깊고 깊은 골짜기에 옛모습
그대로 고히 간직되어 있었다.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른다.
오늘 따라 옛흔적 삶의 작은 편린들을 만나 보고 싶다.
귀향 1부
데이빗이 서해바다가 지척간에 바라다 보이는 새로 건설된 인천 영종도의
국제공항에 국적 기 대한항공 KAL 626편으로 양부와 같이 도착하였을 때는
아직도 시야에 활주로 조명등 밑으로 약간은 희미한 안개가 흐르는
새벽 4시였다.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의 줄기가 지나가는
목가적인 버지니아 산골동네 솔트 빌 이란 작은 동네 홈즈씨 가정으로
입양되기 전 까지의 본명인 한국이름은 이강섭 이였다. 본관이 전주 이씨로
효령대군 자손으로 한국에서는 내노라하는 이조 500년 왕조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양반가문의 자손 이였다.
데이빗의 양부인 홈즈씨 가정으로 말을 할 것 같으면 앵글로 색슨계로
전형적인 WASP로 6.25 한국동란에 두 형제가 참전하였다가 전사한 가정으로
그 지역의 이름 있는 명사로 미국적십자에서 근무하는 양아버지와 고등학교
교사를 지내는 양어머니를 둔 가정이다.
오늘은 바로 그 양부인 미스터 홈즈씨와 동행으로 입양된 지 33년 만에
꿈에도목메어 그리던 생모와 생부를 찾아서 귀국한 날 이였다.
데이빗이 입양하게된 연유는 젊어서 인물께나 있었던 생부의 바람잘 날 없는
바람기로 온 동네 여자들을 후리고 노름 빛으로 가산을 몽땅 탕진하고 6남매를
둔 대가족이 한국동란이 끝나고 너나 할 것 없이 살기 어려워 기울 빵을 먹고
양조장에 술지게미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국제구호기관에서 원조해준 강냉이
가루로 초등학교 급식 시간에 죽을 쑤어서 주면 한 국자 얻어먹고 살던
보릿고개 시절에 가난과 남편의 바람기를 견디다 못하고 집을 뛰쳐 나아간
생모는 그 후 소식이 끊기고 6남매와 견디다 못한 생부는 막내인 생후
1년이 된 데이빗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홀트 아동복지회에 맡기고
발길을 옮긴지가 어언 30년도 넘었다.
어스름하게 해가 지면 그리움에 고아원의 창가에 얼굴을 파묻고 들녘에서
어미 소를 잃고 음매 음매 애타게 울부짖는 새끼 송아지처럼 다른 영아들과
같이 울부짖다 지치면 엄마의 온기와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던 젓 무덤 같은
따스함은 없고 그저 횡덩그러하고 텅 빈 들판 같은 복지원 한구석 온돌방
바닥에 쓰려져서 미국구호기관에서 보내준 테디 베어 곰 인형을 부둥켜안고
잠을 자던 그런 외로움과 집을 나간 후 소식이 없는 엄마와 복지시설에 맡기고
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텅 빈 가슴을 고스란히 채우고 복지원 담장
너머에 사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살던 아이들에 대한 부러움으로 멍들어 버리고
복지원 대리모와 가끔씩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 아저씨들에 대한 아지랑이
같은 희미하고 아련한 그리움이 공항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격렬한 파도처럼
데이빗의 가슴 한 쪽에 생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밀려오는 것 이였다.
이번 방한을 주선하여주고 연락을 받고 나온 홀트 아동복지회의 직원으로
보이는 한 중년 여인이 들고 있는 푯말에 "환영, 데이빗 홈즈"라고 쓴
구절이 육안에 들어오는 순간 전류가 데이빗의 온몸을 타고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생후 두 살 때 에스코트의 손목을 잡고 비행기 트랩에 올라
입양되어 가던 그 날의 어린 데이빗의 가슴에 밀려오던 미지에 대한 공포와
불안과 초조와는 달리 자신을 낳아준 나라 모국의 땅을 30년 만에 밟는
감회는 남달랐다.
데이빗이 오늘 양부와 모국을 방문하기까지는 긴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였다.
데이빗이 백인이외는 피부가 다른 인종이라고는 누런 피부를 갖고 새우처럼
작고 옆으로 쭉 찢어진 눈매를 갖고 있는 자신밖에는 작은 산골 동네에는
없었다.
데이빗이 에스코트 손에 이끌려서 미국동부 테네시주와 버지니아주 국경
근처에 있는 작은 지방도시의 공항에 도착하여서 피부색깔도 다르고
파란 눈을 갖은 양부모와 시작한 미국 생활은 그야말로 겨울이면 산자락
밑에 있는 하얀 이층집 뒤 켠 산 속에서 눈보라와 더불어서 불어오는
살을 에이는 듯한 차가운 바람만큼이나 힘겨운 높낮이의 세월 이였다.
데이빗이 처음에 이 산골 동네에 도착하여서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도
못하던 이방의 언어인 영어를 알아듣고 의사전달을 하고 깨닫기까지는
실수의 연발 속에 거의 1년은 넘어서였다. 한국을 떠나면서 데이빗이
한국인이라는 징표를 품에 안고 온 것은 빛 바랜 작은 태극기와 태극선
부채뿐 이였다.
데이빗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불현듯이 어느 날 자신이
다른 백인 학생들과는 달리 생김새며 외모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였다.
학교를 들어가서 처음에는 산골 동네에서 같은 학교의 백인 학생들이 처음
보는 검은머리에 밤색 눈을 갖고 있는 동양 소년인 데이빗을 중국 놈이라는
영어의 비속어인 "췽크"라고 놀리며 때로는 이지매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분노해 달려가 발길질을 하고 죽기살기로 쥐어 패고 나면 화가
풀리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학교당국에서 양부모에게 통지서를 보내서
문제아로 상담을 받아야 하는 날들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부 사학의
명문 USC 대학 훗볼 팀에 들어가기까지 몇 번이고 있었던 아픈 기억 이였다.
중학교 다니던 시절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데이빗은 양부에게 묻는다.
"아빠, 나는 왜 아빠처럼 금발 머리에 파란 눈이 아니죠?"
양부는 순간 당황한 나머지 가슴에 이는 파문을 어쩌질 못하고 잠시 말을
얼버무리다 말고 그 날 저녁 잠자리에서 부인인 미쎄스 홈즈와 이 문제를
놓고 부모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을 하여야 하며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서 온 아들인 데이빗에게 말을 하여주어야 할지를 논의한다.
결과는 데이빗에게 입양에 대한 모듭 숨겨진 비밀을 솔직 담백하게 알려주기로
양부와 양어머니인 미쎄스 홈즈가 마음을 굳힌 시간은 캐나다 북부 북극해에서
매년 겨울이면 발원하는 제트기류를 타고 집 뒤 켠에 있는 자작나무 숲에서
밤이면 흐릿한 초승달 달빛 아래 어슬렁거리며 쨍하고 코닝 식기가 깨지는
듯한 날카로움으로 밤 공기를 가로지르며 크엉 크엉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등에 업고 계곡을 내려오는 세찬 바람이 데이빗의 침실 창문
밖에 매달아 놓은 집 모양으로 된 대나무 풍경(風磬) 얼굴을 간 지르며
찰랑 찰랑 세차게 부딪치는 소리만이 어두운 밤의 정적을 파문이 일듯
깨트리는 밤이 이슥하게 깊은 자정 무렵이였다. 집안의 모든 불은 소등이
되고 정적만이 집 주변을 감돌고 있을 뿐 이였다.
마침 다음날은 주말인 토요일이라서 가족 모두가 집에 머무는 날 이였다.
학교 수없이 없는 느긋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데이빗이 잠옷차림에
배스 로브를 걸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아침 조간신문을 읽고 있는
양부 홈즈씨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 댓, 굿모닝....."
"오우....굿모닝 썬.."
"데이빗, 어젯밤에는 잘 잤니?"
"네, 아빠 .."
"어제는 학교에서 훗볼 경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몸이 좀 피곤하였어요."
순간 데이빗이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아침 식사준비를 하는 어머니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 맘, 굿모닝"
그때 양부인 미스터 홈즈가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한마디한다.
"여보, 우리 아침 식사합시다."
"아.....그러지요."
"데이빗, 어서 세수하고 오려무나....우리 아침식사 오랜만에 같이 하자꾸나."
"네, 어머니...."
고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아침 일찍 6시면 이미 출근 준비를 하여야 하고
적십자에서 근무하는 아버지는 아침 9시면 출근을 하고 데이빗은 아침
8시까지 등교하는 관계로 저녁식사래야 함께 하는 시간이 있을 까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데이빗이 아침 샤워 후 식탁이 놓여있는 부엌으로 내려오자 스크램블드 에그와
해쉬 브라운 감자 요리로 아침 식사는 시작이 되였다. 순간 갑자기 정적 속에
긴장이 흐르고 양부인 미스터 홈즈는 부인의 눈초리를 살피고 있었다.
부인인 미쎄즈 홈즈가 먼저 말문을 연다.
"데이빗!"
"네, 엄마.....저에게 오늘 아침에 무슨 할 말씀이 있으세요?"
"예야....네가 얼마 전에 엄마와 아빠에게 물었지 나는 왜 아빠 엄마처럼
눈이 파랗지 않냐고 그리고 머리가 금발이 아니냐고.."
"네, 엄마"
"엄마가 오늘은 너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단다."
순간 데이빗의 긴장한 눈빛은 노루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의아한
눈초리로 순간 엄마인 미쎄스 홈즈와 양부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데이빗, 지금부터 아빠와 엄마가 하는 말에 놀라지 않기로
약속을 하는 거다." "알았지....."
"네.........에, 뭔데요..."
"어서 말씀하세요.."
"예야, 네 방에 놓여있는 태극기하고 태극선 부채를 너는 알지?"
"네, 그게 어디서 낫는 지 아니?"
"아뇨.."
"그건 말이지 멀리 태평양 바다 건너 아주 작은 나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부르는 코리아에서 온 거란다."
순간 데이빗은 신기하다는 듯이 묻는다.
"맘, 어떻게 그게 여기까지 왔어요?"
"있지 그건 말이지......"
"네... "
"데이빗, 하나님이 아빠하고 엄마에게 너를 선물로 주었을 때
너와 함께 코리아에서 같이 온 것이란다."
"맘, 그게 무슨 소리여요?"
"그럼 엄마 아빠가 나를 낳지 않았단 말이에요?"
"그래...너는 엄마 아빠가 낳지를 않았단다."
"너를 낳아준 엄마와 아빠는 한국인이란다."
"그런데 너를 하나님이 엄마 아빠에게 귀한 선물로
너를 여기까지 보내주어서 우리는 가족이 된 것이란다."
"그래서 너는 엄마와 아빠와는 다른 까만 머리카락에
밤색 눈을 갖고 있는 것이란다."
"이제 이해가 가니..."
순간 데이빗의 눈가에서는 제방이 터진 봇물 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고 흐느낌에 어깨는 들썩이고 산밑에 하얀
페인트칠한 집안에서는 아침의 고요가 깨지고 오랜 숨겨진 비밀 아닌
비밀이 아침이슬 먹은 뒤뜰에 피어나는 들꽃이 만개 하는 것처럼
그 뚜껑이 열리는 순간 이였다.
양어머니와 양부는 다 같이 데이빗을 감싸안고 함께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위로의 말을 주고받는 이제는 차라리 속이 후련한
서로의 극적인 순간 이였다. 잠시 흐느낌이 흐르는 사이에 서로의 아픔을
위로라도 하듯이 응접실 캐빗넷 위에 놓여있는 FM 라디오 방송에서는
멜라니 사프카의 "쌔디스트 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데이빗도 양부와 양어머니인 미쎄스 홈즈도 잠시
마음을 진정한 후 응접실로 나와 데이빗을 중심으로 소파의 양옆에 나란히
앉아서 다시 먼저 양부가 말을 있는 다.
"데이빗, 이 세상에는 두 가지의 가족이 있단다."
"하나는 엄마 아빠가 낳아서 같이 함께 가족을 이루고 사는 가정하고 또
하나는 우리처럼 각기 다른 사람들이 사랑으로 뭉쳐서 만들어 가는 가정이
있단다" "엄마 아빠는 너를 진정한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로 생각한단다
그리고 하나님의 귀한 선물로 생각하고 있단다."
"누가 뭐라 든 너는 이 엄마 아빠의 아들이란다."
"알겠니........너무 슬퍼하지마라....언제고 네가 너를 낳아준 엄마 아빠를
찾고 싶다면 이 엄마 아빠는 너를 도와줄 것이란다. 염려하지 말고 열심히
학교생활하고 너의 꿈을 펼치기를 우린 너에게 바란다...알았니.."
"네, 엄마 아빠에게 감사드려요."
그후 고등학교에서 미식축구인 훗볼 선수로 활약하던 데이빗에게
전체장학금을 주는 조건으로 미국 서부의 관문인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USC 대학교 훗볼 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동부의 명문대로부터도
입학 허가서를 받은 데이빗은 학교 입학담당 카운슬러와 양부모 님과의
상의 끝에 좀더 진보적인 서부의 명문 대학 훗볼 팀에 들어가서 자신의
기량을 펼쳐보기로 하고 전공을 상담심리학으로 하고 그 해 8월말 학기초에
양부모 님과 같이 학교에 도착하여 짐을 기숙사에 풀고 대학교에서의
첫발 짝을 내디뎠다.
하루는 전공과목인 상담심리학 첫 시간에 퀘퀘한 냄새와 색 바랜 우유 빛
페인트칠이 된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살던 버지니아와는 달리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는 흑인, 아랍계 학생, 중남미 출신의 이민자
자녀들은 물론 금발의 백인 학생들과 동양인 학생들로 구성 되여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문화적인 차이에 마음 한구석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을 때
저만치 창가에 눈망울이 샛별처럼 초롱초롱한 긴 머리를 한 동양인 여학생이
강의 시작을 기다리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데이빗이 자라던 버지니아를
떠난 이후 자기 피부와 생김새가 같은 동양인 학생을 만나기는 처음 이였다.
" 하이, 마이 네임 이스 데이빗 홈즈."
"하우 아 유?"
"왓스 유어 네임?"
" 오우...하이..."
"마이 네임 이스 미쉘 킴..."
그 날 수없이 끝난 후 둘은 학교 구내 카페에서 데이빗의 제의로 커피 타임을
갖기로 하였다. 오후의 햇살이 창가에 길게 드리울 때쯤 불현듯이 미쉘의
심중을 회오리치게 하는 의구심이 솟구쳤다.
"아니...왜 데이빗은 성이 한국 이름인 김씨나 이씨 같은 것이 아니고
그것도 양키 이름인 홈즈이지........"
뜨거운 커피를 한잔씩 들고 홀짝 홀짝 마시는 동안에 둘 사이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추억의 실타래를
풀어내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미쉘이 먼저 자기 부모들은 60년대 말에
한국에서 유학생으로 건너와서 미국에 정착한 사람들이며 자기는
로스앤젤레스 근교 글렌데일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면서 그녀의 심중에 있는 데이빗에 대한 질문 표 하나가 표류하던
생각에 미쳐서 질문을 던졌다.
"데이빗, 너는 어떻게 성이 한국 이름이 아니고 미국사람 성인 홈즈이니?"
순간 움칫 데이빗의 눈빛이 어느 고산 빙벽에 얼어붙은 것처럼 놀란
표정 이였다.
"아.........그거...."
"미쉘, 나는 입양아야......."
"입양아........왜?"
"그건 나도 몰라....."
"나는 서울에 있는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자랐어....그리고 생후 두살때
버어지니아 홈즈씨 가정으로 입양 되였어........"
순간 미쉘은 괜한 질문을 하여서 남의 아픈 가슴을 다시 휘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함에 괜한 짓을 하였다는 자책감을 느꼈다.
다음주말 금요일에 미쉘이 강의가 끝나고 데이빗을 다시 두 번째 만날 때는
어느 입양아가 생부모를 40년 만에 만난 이야기가 실린 미주한국일보를
손에 들고 왔다.
"데이빗 이게 무슨 신문인줄 알아?"
한글을 모르는 데이빗에게는 그저 생소한 이상하게 생긴 글자에 불과한
종이 조각일 뿐 이였다. 순간 데이빗도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의구심이 비 오는 날에 천둥번개와 내리치는 벼락 같이 온몸을 타고 전류가
흐르듯이 스쳐갔다.
"미쉘, 그게 뭔데?"
"아........이거는 영어로는 "The Korea Times" 야......그리고 이것은
말이지 로즈 우드란 한국에서 입양된 여성이 생부모를 찾았다는 기사이고..."
그 날밤 데이빗에게는 여지껏 자신의 가슴 한 구석에 늘 얼굴도 모르는
자기 생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을 왜 버렸는지에 대한 분노와 슬픔
같은 것이 앙금처럼 풀어내지 못하는 실타래로 얼기설기 뒤엉켜 있었다.
그러나 같은 피부색과 얼굴 모양새를 갖고 있는 같은 반에 한국계 미국인인
미쉘을 만난 이후 그리고 그녀가 들고 온 미주한국일보의 가십난에 난
어느 입양아가 생부모를 찾았다는 기사를 알게된 이후 질그릇 옹기
항아리 속에 단무지를 담가놓고 그 위에 돌로 꾹꾹 눌러 놓은 것처럼
눌러온 그동안에 생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장마철 태풍에 출렁이는
격랑처럼 높은 파고를 타고 가슴 한 구석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그 높은
수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날들이 많아졌다.
연일 데이빗의 마음속에는 온통 의구심과 분노와 그리움이 함께 십자로
처럼 교차하는 희비의 쌍곡선 이였다. 왜 엄마 아빠는 나를 버렸지 하는
깊은 배신감과 분노로 예리한 칼끝에 선 듯한 데이빗의 기대치 않은
불청객이 된 고뇌는 차라리 쓰라린 아픔 그 자체였다. 아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산지대의 아직도 활동하는 곯은달걀 썩는 냄새 같은
유황냄새가 물씬 풍기는 지각활동 같았다.
그 다음주 뜻밖에도 데이빗은 한국문화원을 찾아갔다.
문화원 도서실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책을 대출 받고 초급한국어 반에 등록하고
매주 토요일 아침 9시에 있는 강의 시간에 가서 다른 미국인이나 외국인들과
함께 모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늘 가슴속에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불청객인 생부모에 대한 그리움에 종지부를 찍고 찾아서 만나보고 싶다는
허구가 아닌 간절함으로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첫 학기가 끝나고 두 번째 학기에 들어서 부활절 방학에 오랜만에 버어지니아
집으로 돌아간 데이빗은 이 문제에 대하여서 조심스럽게 양부모와 상의를
한 후에 쾌히 승낙을 받아 내었고 양부 홈즈씨는 일부러 한국에서 온 아들
데이빗을 위하여서 직장에서 휴가를 내어 월드컵이 개최되는 시기에
맞추어서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로 하고 실행에 옮긴 날이 바로 오늘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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