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는 아버지와 마음의 격랑으로 참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아버지를 이해 못한 무지에서 한편 나온 소치라고도 생각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가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내뱉은 결과였었다.
아버지는 격노 하셨었다. 그리고 지나간 일은 다시 거론하지 않으시는 것을 아버지는
원칙으로 하신다. 그리고 어저께 근무를 하는 동안 쉬는 시간에 전화로 오늘의 스케쥴을
여쭤 보았다. 특별한 약속이나 볼일이 없으시다 하셨다. 하여 내일 즉 오늘 시간이
허락되신다면 퇴근길에 모시러 가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아침 일찍 출근하여 근무중에 아버지로 부터 점심 시간이 되기전에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약속 시간을 잊어 버리신 것이었다. 하여 아버지는 아직도 퇴근하려면 4시간
정도는 더 있어야 하는 시간에 이 아들이 올때를 기다리고 있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점심 시간이 지나고 퇴근시간 40분 정도 되는 시간에 직장으로 오셔서 기다리고
계시라고 말씀드리고 하루 근무를 정리 한후 아버지를 모시고 곧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단 옷을 갈아 입고 그대로 아버지와 나는 그대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늘 우리가
가는 산책길 바닷가로 향하였다.
아버지와 늘 둘이서 가는 우리의 사랑방 맥다널드 한곳이 있다. 보통 우리는 그곳에서
아침시간을 보낸다면 오늘은 저녁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함께 떠났다. 가는 동안 우리는
이런 저런 진지한 인간 생명의 생성과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북으로 북으로
올라 갔다. 어느덧 우리의 목적지 백다널드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아버지를 부축이고
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아이스 캐러멜 모카와 큰 사이즈 후렌취 후라이 각 각
두개씩 주문하여 아버지와 오랜만에 시간을 함께 하였다.
아버지와 함께 옆에 나란히 앉아서 모국이 있는 방향의 수평선을 바라보던 의자들 독립기념일날 어느
누군가 버린 것을 아까워 차에 싣고 다니면서 우리 두 부자가 앉는 의자들이다.
우리의 진지한 대화속에 격랑의 시간과 아펐던 시간은 다 묻혀 버렷다.
우리는 다시 차를 몰고 저녁 바닷가를 바라보면서 아버지와 늘 함께 둘이서 앉아서
마음을 잠시라도 쉬키는 곳으로 올라 갔다. 트렁크에서 의자 두개를 꺼내어 바다가
보이는 방향으로 놓고 앉아서 아버지와 함께 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가운 바닷 바람이 우리를 스쳐갔지만 그 한기 조차도 우리를 함몰 시킬 수는 없었다.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세상이 우리를 버린다 하여도 아들은 아버지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진정 아버지 생애 그 마지막
까지 지켜드리겠노라고.......아버지의 어떤 채찍도 기꺼이 받아드리고 사랑으로 아버지 모시고
굳굳이 살아갈테니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게 사시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묵묵히 듣고만 계셨었다.
가능하면 살아가면서 아버지 속을 썩이는 일은 하지 않겠노라고 또한 위로의 말씀도 드렸다.
아버지의 말씀 하나 하나가 새로운 직장근무에 큰 위로가 된다고 말씀드리니 진짜 그렇게
생각하니 하시면서 아들의 팔을 꼬옥 잡으셨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만 90세의 아버지.......
누가 몇살이냐고 묻거든 90세라고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막 박장대소를 하시면서 그럼 90세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하렴 물어 오셔서
그러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웃었다.
아버지와 함께 앉아서 하루 일과를 정리한 의자와 앉았던 자리...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시면서 코프르니쿠스가 말을 하기를 지구는 둥글다고 하였다고 말씀 하셨다.
만 90세의 우리 아버지 오늘 저녁 해넘어가는 바닷가에서 백사장에서 뛰어 노는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고 계신 모습이시다.
늘 여기에 앉아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아들 둘이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곳이다..
우리 두 부자가 늘 앉아 있는 바닷가 자리다.....
우리 두 父子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코페르니쿠스
이야기를 하였다. 해가 기울어 우리는 더 차가운 바람이 불어 오기전에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북상이 아닌 반대로 운전하고 올라 갔던 길을 뒤돌아 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저녁 바닷가를 차창으로 바라보시면서 우리가 늘 오지만 매번 올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고 말씀하시면서 행복해 하셨다. 아버지 손을 나의 오른손으로
꼬옥 잡아드리면서 내려오다 중간에서 쉬었다. 쓰레기 종이가 바닷가 흙 둔덕에
나뒹굴고 있었다.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빠, 잠깐 쉬고 계세요.
아무래도 제가 저 쓰레기를 줏어서 들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아니면 우리의 바다는 저런 공해물질로 오염되기에 우리가 지켜야 해요.'
'그래 알았다. 갔다 오너라. 기디라마...' 하셨다.
모두 줏어서 버려진 쓰레기 가운데 있던 봉지에 다 담아 차안으로 들고와
내려놓고 우리는 다시 남으로 남으로 운전을 하며 내려오는 도중에 반대편
방향에서 큰 사고가 난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하얀 승용차가 옆으로 뒤집어져
있는 큰 사고가 나 반대편 방향의 고속도로는 통행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빠, 저기 보세요. 큰 사고가 났어요.
오우 마이 갓 ......'
' 예야 큰 사고구나......저기를 좀 봐라.....저기도 큰 사고가 났나 보다.
고속도로를 완전히 막았잖니.....'
'아빠, 먼저 사고로 길이 막혀서 통행이 불가능해 다른 길로 디투어 시키는
것이라 그래요. 저기 보세요.'
'예야, 우리는 얼마나 천만다행이니 반대로 가서 교통체증도 심하지 않고
모두가 완벽하구나. 출구 A에서 내려서 우리 오늘은 추어탕을 먹으러 가자'
'예야, 너는 추어탕이 무엇인지 아니?'
'네 아빠 알아요.
미꾸라지가 징그러워서 저는 그런 음식이라면 질색이었는데 오래전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어느분의 대접으로 먹어보니 음 생각보다 아주 좋았어요.
그래 지금은 즐기는 편이야요.'
'아 그래 ........내가 추어탕을 좋아 하는 이유는 그 씨레기 있지 않니
그런 것이 들어가 있어서 좋아 한단다. 난 그 씨레기가 그렇게 좋더구나.
기름기 많고 그런 음식을 나는 싫어해.'
'음........아빠, 저도 그 씨레기 좋아 해요. 정월 대보름날 씨레기 나물
호박꼬재기 나물등..............음.........맛나요.'
A에서 내려서 기억이 가물거리는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우측으로 돌아
갔다가 다시 돌아와 A에서 좌회전을 하니 바로 추어탕 집이 있었다.
"예야, 바로 저기다. 찾았다.'
'여하튼 아빠는 기억력이 참 좋으세요.
특히나 가보신 길을 기억하시는 데는 남달리 잘아세요.
'예야 아빠 소피좀 보고 올테니 추어탕 두그릇을 시켜 놓커라.'
'네 아빠 염려마시고 다녀 오세요.'
그리고 추어탕이 나와 우리 두 부자는 해저무는 저녁바닷가에서 쏘였던
찬바람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뜨거운 추어탕으로 시원하게 몸을 뎁혔다.
밤이 조금 늦은 시각이었다.
'아빠 오늘은 첫급료 받은 기념으로 제가 저녁을 사드리는 것이니 우리
누가 내는가 하는 문제로 싸우기 없기야요. 대신 다음에 바람을 쏘이러
맥다널드에 가면 아빠가 내세요. 그러면 공평하죠.'
'그래 알았다.'
내일의 근무를 위하여서 서둘러 아버지를 모셔다 드려야 해 길을 나섰다.
아버지 거처 주차장에 도착하니 그냥 가거라 하셨지만 늙으신 아버지
문앞 까지 모셔다 드리고 가야 도리라고 생각이 되어 아버지 팔을 늘
그렇듯이 부축여드리며 문 앞 까지 에스코트 해드리니 문을 여시면서
'예야, 오늘 감사하다.
조심해서 잘 가거라.' 하시면서 잘 가라고 인사를 하시기에 늙으신
아버지 따듯하게 굿나잇 허그를 해드리고 아버지 손 인사를 받으면서
곧바로 돌아와 세탁을 하고 다리미질을 맞추고 이제 자려고 한다.
다시 새벽 같이 일어나 근무를 나가야 하고 다시 한주를 시작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참사랑은 인내를 요구하고 배려와 깊은 이해와 진실된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을 요구하며 달면 삼키고 쓰면 밷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개인적인 가치관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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