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에로이카와 함께 하는 산책로의 서정

붓꽃 에스프리 2006. 11. 27. 05:40

  

 

하루의 일과로 피곤해 곤히 잠을 자고 있는데 무뢰한이 전화를 걸어 잠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깨우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지혜롭게 찾아보지는
않고 무조건 손에다 쥐 켜 달란다. 달려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을
꾹 누르고 전화 끊지 말고 찾아보라니 찾았단다. 너희들은 출근 후 죽었다
한 번 복창하라는 소리가 저 밑에서 올라온다.

퇴근 후 자동응답기를 바라보니 불이 깜빡인다.
누굴까 하고 열어보니 국제전화가 아니던 가. 우리 파파께서 어머니 날
보내드린 카드가 도착하였나 확인전화를 지난주 하는 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시기에 걱정을 하였더니 파파께 보내드린 편지와 함께
잘 받았다고 메시지를 남기셨다. 당연히 오늘은 다시 전화를 드려야
옳다. 손목은 좀 나아지셨는지도 알아볼 겸 동생도 이제는 곁에 없는
데 전화라도 자주하여 드려 함께 하는 마음이고 싶다, 그래야 덜
외로우시지 않겠는가?

내 아버지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하랴..
타인들이야 무슨 관심이 있을 일이며 관계를 할 일이던 가.
내 아버지 나에게나 소중한 분이시지 다른 이들에게 남의 부모요
타인이지 않은가 헌데 당연지사 내가 부모를 귀히 여기고 존경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그것이 윤리요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孝가 무너진 가정과 사회가 결코 잘 될 일은 없다.
즉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사회의 어두운 모습,
홀로 죽어가는 독거노인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더 나아가서 가정폭력의 한 단면으로 패륜적으로
자기를 낳고 기른 어머니를 구타하고 패고 아버지를 발길질 하고
극단의 예이지만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한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빛 앞에 서는 순간만큼 우리의 존재에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살아 있씀이 그 얼마나 큰 축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 하는 것은 사랑하는 인연들을 잃어본 사람은
누구나 체험하는 일이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과 우리들 자신과의
존재의 영원한 사실적이고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체험의 분리를 의미한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누군가 사랑하는 이의 손을 따듯하게
잡아보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하고 더욱이 애정 어린
감각적인 표현 따듯한 포옹 한 번 해볼 수도 없고 사랑한다는
그 말 한 마디 조차도 우린 건넬 그 대상이 없는 것이다.
이 얼마나 완벽한 허무이며 간과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벌써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에로이카/
Eroica”는 거의 54분 정도를 흘러갔고 쇼팽의 야상곡/Nocturne
9번은 영혼을 따듯하게 감싸주고 있다. 20번은 또 어떻고 훨씬
더 감성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참으로 마음을 편하게
영혼을 충만하게 안식시켜준다.

그런 측면에서 수많은 주옥 같은 곡들이 있씀에도 불구하고
쇼팽의 야상곡은 그 어느 곡 보다 도 우리 인간의 귀를
즐겁게 하여주고 피곤에 지쳐있어도 슬픔에 젖어 있어도
기쁨에 젖어 있어도 우리를 편하게 하여주는 좋은 안정제요
영혼의 양식이 아닐 수가 없다. 하나 더 받쳐준다면 느린
라르고로 흐르는 Matt Monro가 부르는 “Autumn Leaves”는
듣는 이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한 잔의 얼 그레이 차나 옅은
커피 한 잔 위에 환상이 될 수도 있다.

이어지는 곡으로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에 “백조/Swan”
이나 타이스 명상곡이나 슈만의 Traumerei로 하고 피곤하면
자장가 삼아 들으면서 수면에 빠지고 쇼팽의 야상곡은 대부분
모두 그가 귀족부인들에게 헌정한 곡들의 모음이다.

5월은 생각보다 엄청 분주한 달이 되고 말았다.
휴가를 가고 돌아오는 연속의 직원들 뒷감당은 물론 부하직원들
감독하랴 근무하랴 지시하랴 근무시간이 어찌 지나가는 지를
모른다. 격무 후 음악의 선율 위에 영혼을 안식시키지 않고는
다음 날의 근무를 위한 재충전은 어렵다.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화폭 위에 붓질도 하여야 하고 이렇게 낙서도 하여야
하고 때론 누군가를 위로도 하여주어야 하고 이것이 사는
것인가 보다.

어제는 한 영혼 여아 아이를 입양하여 잘 아름답게 양육시키고
있는 올곧고 누구보다 현명하며 지혜롭고 근면 검소한 벗으로부터
한국에서 메시지가 왔다.

 

지금부터 10월말까지 북미와 해외 출장이 포도송이처럼 주루룩이다.
언제 한국에 나오며 스케쥴이 확정되었느냐고 채근이다. 잘못하면
그 친구는 북미로 올 때에 나는 건너갈 입장이 될지도 모르는 스케쥴을
보여주고 있기에 알아서 맞출 테니 염려 말라 하였다. 살아 있는
백과사전 같은 사람 부지런 하기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다. 늘 잊지
않고 서로를 진심으로 기억하며 아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이기도 하다.

때로는 지독히 원색적이며 때로는 지독히 청아한 사람 도대체 한국에서
무슨 포도주를 만든다고 한국에서 가장 멋진 포도주 한 병을 만남의
기쁨으로 앵기겠다는 사람 그도 나도 서로 늘 바쁘게 사는 인생이니
한번쯤은 서로 그리움을 내려 놓고 서로의 그리움을 채워주고 돈독한
우정을 먼지도 털어내고 때 빼고 광낼 필요가 있지 않을 까 싶다.

한번쯤 세계일주를 배낭 메고 함께 하여보고 싶은 벗 그리고 가족들
온몸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평범 속에 비범을 낳는 사람이
있어 아름답다. 인생은 그래서 때론 한 편 감미롭다.

그리움을 아름답게 쌓아 올려주는 아름다운 인연 하나쯤 일상 속에서
갖고 살아가는 것도 생활의 활력소에 기쁨이요 작은 행복과 축복이다.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만남 아름답지 않은가?
에로이카로 끝을 맺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