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ch at Sainte-Adresse - Claude Monet
이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물론 우리 인간 모두는 언제고 주어진 삶을 다하고 사랑하는 혈육들이 병상을 지키든 아니든 그렇게 쓸쓸하게 홀로 외롭게 죽어 갈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들과 형제들 때로는 부모님, 이웃사촌, 벗들도 모두 뒤로하고 그렇게 이장희의 애련한 향수가 배어나는 통기타 시대의 곡 <불꺼진 창>이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노랫말의 풍성한 감성의 흐름처럼 희미한 기억 저편의 아련한 모든 젊은 날의 추억들과 지나온 삶의 골목 어귀에 남겨진 여운처럼 흘러갈 것이다.
사람이 일단의 세월을 살아가다 보면 살았다고 하여서 살았다고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철학가가 아니어도 익히 인식하게 된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친구나 동기가 있다면 불현듯이 생각하지도 못한 혈육의 죽음 앞에 넋을 잃고 혼절하는 경우나 억장이 무너지는 경우는 그리 심심치 않게 주변에서 목격하게 된다. 아들이 운전을 하고 가다가 실수로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반대하는 결혼의 우여곡절 끝에 한지 채 일년도 안 되어서 이혼을 하고 한강변에서 자살한 젊은이도 안타깝지만 주변에서 목격하게 되는 불행이다.
어떤 부귀영화도 명성도 권모술수로 얻은 권력도 죽음과 세월 앞에서는 한갓 보 잘 것 없는 허무 그 자체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우리 인간의 삶이 보편적으로 한 세기를 제대로 사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평균이 70 -80 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세월 안에서 얼마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황량한 인생의 언덕바지를 오르고 내리고 하는가.... 어느 누군가는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도 하고 반면 실패와 좌절과 절망 앞에서 신음을 하지 않던가. 그러기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대찬 용기와 자기 극복으로 때로는 절대 고독과 외로움 앞에서 자신을 과감하게 지켜나가는 침묵의 강과 깊은 자기성찰도 필요하며 때로는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과 진실과 참됨은 참됨으로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세기적인 가치관의 혼돈과 방황 속에서 한 시절을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살았던 지미 헨드릭스나 재니스 조플린 또한 우드스탁의 추억을 세월의 발 밑에 남기고 지미 헨드릭스의 경우 독일 여성인 부인을 뒤로하고 영국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였고 비틀즈의 잔 레논도 이제는 역사에 묻힌 세월이 아니던가. 그 당시 학부에서 젊음을 불태웠던 분들의 경우 이제 장년기에 들어가시거나 있지 않으신가.....세월의 무상함이 아닐까.........그 당시 열창을 하던 곡 중에 하나가 썸머 타임이 하나의 주 메뉴가 아니었을 까도 싶다.
그 어느 누구도 세상 사람 모두를 사랑할 수는 없다. 다만 어우러져 원만하게 보편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뿐 성장배경과 환경과 전공과 전문분야나 삶의 터전이 다르듯이 서로의 시각과 가치관도 다른 것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한다.
짧다면 참으로 짧은 인생 트럼펫 연주가 애절하게 들려주는 "Summertime"의 멜로디나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만이 아닌 인생 그 자체만으로도 때로는 쓸쓸한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인생일 것이다. 그 삶의 반대편에서는 그런 사실 앞에서 그 공간을 채우려고 열정과 에너지로 주어진 인생과 자신의 존재 그 여백을 채우려고 발버둥도 치고 투쟁 아닌 투쟁도 세월과 운명과 하는 것이리라.
따듯한 가슴.....말 한 마디.....배려와 눈빛과 음성은 영혼의 비타민이요 강장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누군가를 향한 하나의 그리움의 발로의 그 시발점인지도 모른다.......
어두운 적막과 차가운 공기가 거리를 배회하는 이 겨울밤 불꺼진 창들이 여기 저기에 보인다. 이제 내 영혼의 등불도 소등하고 불꺼진 창 너머로 발길을 옮겨야 하겠다.
인간 존재 자체가 고독이요 외로움으로 홀로 와서 홀로 떠나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이 삶의 진실이 아니던가? 그대 외로운가? 먼저 사랑을 베풀고 배려를 하여보시게나 순수한 동기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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